노종면의 걱정 "이걸로 언론이 자극 받을까?"
YTN 해직기자 '공정방송을 위한 국토순례' 광주 동행 취재기
▲ 정유신 기자가 순례중 땀을 닦고 있다. ⓒ 강승원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총 438.6km의 행군을 시작한 YTN 해직기자 5명도 마찬가지다. 취재차 타고 '휙휙' 지나쳤던 현장을 제대로 보자는 의미로 걷기를 택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 작게는 YTN 해직기자들의 고민, 나아가 언론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고민, 해고노동자들의 고민을 공감하고 공유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한 현장, 알아야 할 현장, 왜곡된 현장을 향해 고된 걸음을 떼고 있다.
공정방송을 위한 국토순례(관련기사) 5일째인 15일 오후 3시 11분, 순례단이 광주역에 도착했다. 논현동·내곡동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양재동 현대차 노동자 투쟁현장, 평택 쌍용차 공장, 천안 유성기업, 온양 삼성전자 공장 등을 거쳐 광주에 왔다.
이날은 순례단에게 조금 특별한 날이다. 서울에서 YTN 동료 기자들이 순례단과 함께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늘 6명(권석재·노종면·우장균·정유신·조승호 해직기자, 하성준 YTN 노동조합 사무국장)이서 걷다가 이날은 YTN 노동조합원 14명이 합류했다. 이들은 5·18국립묘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공정방송 순례단'이 터널을 지나고 있다. ⓒ 강승원
노종면 기자는 광주를 찾은 것을 두고 "노동 현장이나 재해 현장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80년대 광주는 미디어의 왜곡과 모욕을 당한 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실이 바로잡히고 명예가 회복된 현재에도 이상한 이야기를 해대는 자들의 공격을 받아야 하는 광주는 미디어 피폭지"라고 말했다.
"역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심각한 일이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는 이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현장을 왜곡하는 기성언론 믿지 못하겠다. 광주가 바탕이 된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민주주의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라고 느끼며 이 걸음이 언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자극제가 되길 기대한다."
▲ YTN 해직기자 5명이 '공정방송으르 위한 국토순례' 5일째에 광주를 찾아 광주역에서 5·18 국립묘지까지 걸었다. ⓒ 강승원
더딘 변화 속 희망 찾는다
이날 나와 동행취재에 함께한 강승원 <전대신문> 기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걸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허무할 것 같다."
회사 밖에서 5년을 보낸 순례단원 정유신 기자도 우려하는 바다. 정 기자는 "28일 우리가 서울로 복귀해도 세상은 그대로겠지만 우리에게는 '끝까지 함께가자'는 동료가 있을 것"이라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종면 기자는 "이것으로 언론은 자극을 받을까? 이 걸음이 끝나는 시점에 '우리가 잘했다' 할 수 있을까? 만약 아니라면 지나온 사람들에게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했다.
그래도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그들의 희망이다. 지나가는 순례단을 보고 가게에서 뛰어나와 격려해주는 시민,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잔뜩 전해주는 시민, 직접 재배한 감자와 토마토를 가져다준 시민, 행여 다치지는 않을까 약을 챙겨주는 시민, 더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시민, 함께 걷는 시민…. "공정방송을 꿈꾸며 걷겠다"는 해직기자들을 관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민들은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희망일 것이다.
▲ '공정방송 국토순례단' 5·18 국립묘지 참배 모습. ⓒ 강승원
가족 같은 동료애
"우리를 버린 조직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바로 '동료'다."
선후배가 어울려 걸으며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 그 풍경이 국토순례 중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서로 운동화가 같다고 얼마주고 샀냐며 구매 가격을 묻는 소소한 이야기부터 언론자유에 관한 다소 묵직한 이야기까지, 그들의 이야기 소재는 다양하다.
순례단은 "동료 선후배들의 얼굴을 보니 힘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 조승호 순례단장은 "그동안 1시간에 3km 속도에도 힘들어했다면 오늘은 1시간에 4km 속도에도 가뿐이 걸어왔다"며 "순례단원들이 동료들의 응원에 힘입어 걷는 내내 생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순례단을 격려하기 위해 동참한 14명의 YTN 노동조합원 모두 자원해서 온 동료들이다. 순례 일정 중 토요일은 YTN 동료기자들이 순례단의 걸음에 합류하는 날이다. 현재도 순례 2주차 주말 일정인 밀양 도보에 참여할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이날 함께 걸었던 김종욱 YTN 노조위원장은 "약 3주간의 일정을 온전히 함께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며 "미안한 마음에 지난 11일부터 출퇴근을 걸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약 7km, 왕복 14km를 걸으며 멀리서나마 순례단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과 함께 광주에 온 기자도 있었다. 아빠를 따라온 아들 성수영 군(10)은 힘들다며 업어달라고 아빠를 보채기도 했지만 큰 사고 없이 순례단을 따라다녔다. 아빠 손을 잡다가도 금세 아빠 어깨에 매달리기도 하면서 기자들과 똑같이 10km를 걸었다. 성아무개 기자는 "나를 위한 일이 곧 가족을 위한 일이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의 일을 함께 하면서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보여주기 위해 아들을 회사 행사에 자주 데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 아빠를 따라온 아들이 아빠 등에 업혀 가고 있다. ⓒ 강승원
걷는 자리자리 모두 공정사회 되길
순례단은 오후 6시 35분께 5·18국립묘지에 도착했다. YTN 기자들은 묵념 후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다. 묘역까지 걸어온 시간에 비하면 그 곳에 머무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내내 광주묘역을 향해 걸어왔기 때문에 목적지에 머무른 짧은 순간이 더 값졌다.
기자는 순례단과 함께 걸으며 땀도 함께 흘렸다. 그래서 간절히 바랄 수 있었다. 그들이 흘려온 땀의 흔적 자리자리 마다 공정사회가 실현되기를. 걸었던 자들의 땀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걸음이 복직으로 이어지기를.
하성준 YTN 노조 사무국장은 "공정보도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존재가 잊히거나 언론자유에 대한 갈망이 무감각해질까봐 불안하다"며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이 조합원들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참배 후 '518'번 버스를 타고 광주역 부근으로 돌아갔다. 16~17일 순례단은 또다른 '미디어 피폭지' 제주 4·3유적지와 강정마을을 걷는다.
▲ 5·18 국립묘지를 떠나기전 '공정방송 국토순례단'이 '미디어 피폭지' 플랜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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