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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문은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현장] 쌍차해고자와 연대 시민들... 경찰이 앉고 서는 곳까지 지정?

등록|2013.06.16 15:54 수정|2013.06.16 15:56
대한문은 경팔과 중구청 사유지?

ⓒ 이명옥


남대문 경찰서 경비 과장은 쌍용자동차(이하 쌍차) 해고자들이 밥을 먹는 것, 잠자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앉아 있는 곳과 서는 장소까지 통제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쌍용차 해고자 관계자들을 만나러 왔거나 미사를 드리러 온 시민들에게 앉거나 서는 자리를 지정해 주는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국민이 길에 마음대로 서 있지도 앉지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는지요?

지난 15일 대한문 앞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별난 꼴을 겪었습니다. 최헌국 목사님과 쌍차 해고자들을 만나러 갔다가 길에 서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여경 다섯 명이 둘러서더니 다른 곳으로 나가라는 겁니다. 앞에 무전기를 두 명의 여경이 있었으니 모두 일곱 명이더군요. 길에서 경찰 대 여섯 명이 갑자기 둥그렇게 둘러싸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나가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내가 범죄자입니까? 피켓을 들었나요? 구호를 외쳤나요? 설사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쳤더라도 경찰이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아닌 듯합니다. 가만히 서서 책을 읽고 있는 데 나가라니요.

나가라고 지시한 여경에게 "소속과 이름을 대라, 내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서 있고 싶으면 서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경찰과 의경들의 얼굴이 한명 한명 얼굴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고, 증거를 남겨서 반드시 이름을 알아내겠다고 했더니 가더군요. 살다가 별 꼴을 다 당하고 삽니다.

길에 서 있다고 배로 밀침을 당한 시민천주교 신자인 저 여성분은 길에 서 있었다고 경찰이 들러싸고 밀어냈다. ⓒ 이명옥


또, 한 중년 여성이 장미꽃을 사 들고 대한문 앞으로 왔습니다. 목동에 산다는 그녀는 천주교 신자로 매일 미사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최헌국 목사님이 혼자 삼일 째 단식기도 중인 것이 마음에 걸려 편안한 신을 신고 오셨다며 옆에 가만히 서 계시더군요. 저도 성함도 모르는 그 분 곁에 앉아서 가져 간 시집을 읽었습니다. 잠시 후 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가 우리말보다 더 유창한 벙커 교회 청년이 음료수를 사가지고 대한문에 왔습니다. 그 청년도 잠시 길에 서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경찰들이 와서 빙 들러 싸고  "여기 서 있으면 안 된다"며 그 분들을 옆으로 앞으로 밀쳐 내기 시작했지요. 옆에 서 있던 저도 밀려 경찰들에게 둘러 쌓이고 말았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최성영 경비 과장에게 쫒아가 따졌더니 집시법에 의하면 그는 "동일한 목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서 있으면 집회가 되기 때문에 옆에 서 있어선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럼 동일한 제복을 입고 우리보다 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무더기로 서 있는 경찰도 집회를 하고 있는 것이니 집시법에 위반 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들은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랍니다. 집시법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며 동영상을 찍었더니 저를 보고 "쌍차냐, 아니면 강정이냐, 선생님은 이리로 나왔으니 설명을 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점심 무렵에 쌍차 해고자들에게 밥을 해다 주는 '밥 셔틀'이 왔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나무 그늘이며 꽃밭을 빙자한 바리케이트를 엄수하느라 자리를 다 차지해서 몇 명은 밥 먹을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경찰들 앞에 신문지 서너 장 펴놓고 밥을 먹는데, 경찰이 달려들더니 "여기서 밥을 먹으면 안 된다"며 국을 엎어 버렸습니다.

배우 맹봉학씨배우 맹봉학씨가 최성영 남대문 경찰서 경비과장에게 시민의 자유를 멋대로 재한하는 법적 근거를 묻자 최성영 경비 과장이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다. ⓒ 이명옥


평소 경찰과 부딪친 일이 없다던 신영철씨가 무척 화가 나서 최성영 과장에게 큰소리로 따졌습니다. 배우 맹봉학씨도 "밥을 먹어서는 안 되는 법적 근거를 대라"고 하자 법적 근거나 제제할 근거는 없지만 "시민들 보기에 좋지 않고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사실 경찰만 없으면 거기서 시민들이 누워 잠을 자든, 춤을 추든, 밥을 먹든 통행에 방해 될 일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법적 근거를 댈 수 없고, 시민을 제제할 이유도 없는데... 무조건 화단 앞은 안 되니 경찰이  정해주는 곳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우기더군요.

그것 말고도 한 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대한문 앞 환풍구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방송을 하면서 경찰은 닭장차를 대놓고 최헌국 목사님과 쌍용차 해고자들을 만나러 온 사람들마다 채증을 하고 있더군요. 거기 올라가 자기들 사진을 찍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죠.

경찰이 사진을 찍는 유제선 쌍차해고자를 끌어내고 있다.결국 경찰은 유제선씨를 밀쳐 버렸다. ⓒ 이명옥


유제선씨와 인터넷 생중계 팀, 뉴스, 다큐를 찍는 감독이 환풍구가 있는 곳에 올라가 함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달려들어 쌍용차 해고자인 유제선씨만 잡아 내리려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유씨를 밀어서 사람들이 잡지 않았으면 떨어져 크게 다칠 뻔 했습니다. 

최성영 경비 과장에게 못 올라가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환풍구 공기가 좋지 않아서라고 하더군요. 변명치곤 궁색했는지 쓰레기를 그 위에 버려서 라고도 말하더군요. 쌍차 해고자들은 쓰레기 봉투를 사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우리가 치우고 공기 나빠도 상관없으니 간섭 말라"고 하니 "알았다"고 하더군요.

쌍용차 해고자인 고동민씨는 시민이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데 경찰이 도로교통법 방해라며 끌어내려 해서 "소속과 이름을 물었더니 그냥 가 버렸다"고 하더군요.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시원한 대한문 나무 그늘에 앉아 독서 번개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재미있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본 지나가던 시민도 "도대체 경찰이 뭐하는 거냐, 이런 시간에 도주범을 잡고 치안을 위해 동네 한 바퀴 더 돌아라. 대한민국의 현실이 부끄럽다"고 말하더군요.

남대문 경찰서 최성영 경비과장기사에 사진을 실겠다고 하니 멋있게 찍어 달라는데 제가 기계치라 서요. ⓒ 이명옥


대한문 최헌국 목사님께 인사를 하고 싶거나 쌍용자 해고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분들은 "저 시민인데요, 저는 어디 서 있어야 할까요, 어디에 앉을까요?"라고 반드시 먼저 물어보세요. 꼭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준비해 소속과 이름 확실한 신분을 확인해 녹취 하시고 동영상 찍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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