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구수한 '뽕짝' 가락이 그립습니다
구속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에게 보내는 편지
▲ '정리해고·비정규직없는 세상을 위한 발걸음 희망뚜벅이' 출정식이 2012년 1월 30일 오전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열렸다. 출정식에 참석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 ⓒ 권우성
"자야~ 밥 묵었나?"
김정우 지부장님이 나를 보면 항시 건네는 첫 인사셨죠. 조막손에 눈깔사탕 하나를 공짜로 쥐어줄 것 같은 맘씨 좋은 이웃집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전화기를 타고 넘어오던 목소리로나 거리에서 만났을 때나 어김없이 건네시던 이 한마디가 울컥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 따뜻했어요. 이렇게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가 가장 가까이에서 서울시청 광장을 앞마당 삼아 아래윗마을 이웃사촌으로 지낸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네요.
한 번쯤 지부장님께 써보고 싶던 편지글을, 지부장님은 손에 쥐어보지도 못할 이런 때에 쓰게 됩니다. 남은 조합원들에게 위로를 보태겠다는 것도, 지부장님이 떠나 있는 자리를 힘있게 채우며 싸우겠다는 결의도 아닙니다. 그저 지부장님을 만난 첫 기억부터 함께 싸워왔던 시간들을 글로 남기는 이 작은 일이 지부장님을 자유롭게 뵐 수 있는 시간까지 제게는 작은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쑥스러운 이 편지를 시작하며 첫 만남부터 떠올려 보았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지부장님을 처음 뵌 것은 그 뜨겁던 여름, 2009년 77일간의 평택공장 옥쇄파업이 끝난 직후, 연대투쟁 하러 간 건설노조 동양레미콘분회의 집회에서였어요. 연대사를 부탁하는 분에게, 그때는 지부장에 당선되기 전이던 지부장님이 "난 그냥 평조합원입니다"라며 한사코 발언을 마다하던 그 모습이 첫 만남의 기억이었죠. 이런 별스럽지 않은 일이 왜 기억에 남았을까요?
"마누라 안고 싶다"던 멋진 중년남, 바로 지부장님이었습니다
▲ '소통불가 새누리당 규탄 및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이 2012년 11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린 가운데, 단식 중인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참여하였다. ⓒ 조재현
사실 그날 그런 지부장님을 보며 속으로 '에이 뭐 저래. 그 영웅적 투쟁을 했던 동지가 그깟 발언을 저리도 거부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실망스러웠거든요. 그런 짧은 만남 얼마 후 성균관대에서, 옥쇄파업 77일간의 기록을 담은 태준식 감독의 다큐 <당신과 나의 전쟁>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초대를 받아 갔는데, 2007년부터 노동조합 인정과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싸워온 제 처지에 대한 설움이었는지, 참 많이도 울었죠.
그런 중에도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에 남았던 한 장면. 투쟁이 끝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 묻는 카메라를 향해 "우리 마누라 한번 찐하게 안고 싶다"며 너무도 해맑게 웃던 멋진 그 중년의 남자가 바로 지부장님이셨습니다. 첫 인상과는 너무도 다른 기억이죠?
이후 2011년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 천막농성을 시작한 쌍용차지부 조합원들과 저희가 연대투쟁을 하게 되면서 당시 쌍용차지부 구로정비지회 지회장으로 김정우 지부장님을 다시 뵙게 되었죠.
2011년 8월엔 상경한 한진중공업지회와 여러 투쟁사업장의 조합원들이 상급단체 어디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우리만의 동지애로 광화문 KT 앞에서 했던 노숙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침낭 하나도 깔지 못하는 노숙 장소에서도 밤마다 아우뻘 동지들과 밤을 새우며, 구성지게 '뽕짝'을 불러 분위기를 띄워주시던 지부장님.
또 2012년 1월부터 시작한 서울과 수도권 투쟁사업장을 순회한 '희망 뚜벅이'와 그 힘을 모아 혹한의 겨울 추위를 마다않고 서울시청 광장을 점령한 '희망 광장'을 함께하며 만난 지부장님은 이 힘든 싸움의 현장이 힘겹고 서럽지만은 않은 듯이 언제나 즐겁고 밝은 기운을 주시는 분이었죠.
그 '살인 미소'를 잃지 않으며 공동투쟁들을 함께한 이후, 작년 4월 쌍용차지부 동지들은 동료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품고 서울 도심 한복판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리셨습니다. 숱한 탄압에 맞선 끈질긴 투쟁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해결의 고리를 찾아보고자 2012년 10월에는 50대 중반의 지부장님이 '단식투쟁'을 선택하기도 하셨죠.
"우리가 죽는다 해도 꿈쩍이나 하겠어? 하다 하다 이것밖에 없으니 하는 거지. 제발 우리 주변이라도 싸우는 우리들과 함께 해보자고, 굶기라도 해보는 거지."
'기죽지 말고 꿋꿋하게'... 천막에서 만날 날 기다립니다
▲ 쌍용차범대위 "김정우 지부장 구속은 범죄이다"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해고노동자 임시 분향소 철거 작업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과 해고노동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구속된 김 지부장의 석방과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저도 단식을 그런 마음으로 결단했기에 지부장님께 그만두라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죠. 단식 천막에 들를 때마다 얼굴 보는 것으로 말 대신 안부를 확인하고, 제게 뜨뜻한 곳에서 한숨 자라고 침낭 한 자리를 내어주시는 것을 마다않고 따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단식하시는 분 옆에서 어쩌면 그렇게 편안히 잘 수 있냐" 하고 물으면 "뜨끈하고 얼마나 좋은데"라며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웃곤 했죠. 이제야 하는 말인데, 정말 뜨뜻하고 편하고 좋긴 했어요.
그렇지만 놀라리만치 꿋꿋하게 잘 견디시던 지부장님도 하얀 상복을 입은 모습이 눈물 나게 서러울 만큼 눈에 띄게 말라가셨죠. 그렇게 힘겹게 버텨주시다 43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 가시고…. 짧은 복식 기간 후에 다시 싸움의 현장으로 나오신 지부장님은 좀처럼 예전의 기력을 찾지 못하시더군요. 그런 몸으로, 지난 6월 10일 대한문 앞에 천막을 치기는커녕 깔판 한 장 깔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연행되고 구속까지 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이 쌍용차지부 동지들의 투쟁을 짓밟아버리려는 자본과 정권의 각본임을 알기에 더욱 분노합니다. 면회 간 유치장 유리 너머에서, 지부장님의 구속으로 인해 조합원이 위축되고 투쟁의 기세가 약해질까봐 오히려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이구 지부장님, 이런 일에 기세가 떨어지고 위축될 동지들과 이제껏 싸워오셨어요? 지부장님이나 기죽지 말고 꿋꿋하게 버텨주세요."
김 지부장님, 아니 정우 형님~. 새벽녘에도 안주 한 아름 안고 들어와 잠을 깨우시며 술 한잔 하자던 그 모습으로, 힘내라고 어깨를 안아주시며 신청한 노래를 구수하게 불러주시던 그 모습으로, "자야~ 잘 있었나?"라고 그 살인미소를 날리며 건강하게 나타나실 거죠? 좁고 누추하지만 웃음과 희망과 동지라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기에 우리에겐 어느 호화주택보다도 좋았던 천막에서 하루 빨리 함께하기를 빌어봅니다. 그날을 앞당기는 것도 물론 밖에 있는 우리의 몫이라는 것도 잊지 않겠습니다. 정우 형님~, 사랑합니다. 파이팅!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지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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