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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시위대 어디로... 브라질의 '딜레마'

버스요금 인상철회에도 시위 확산... 분노 구체화·조직화 숙제

등록|2013.06.21 14:20 수정|2013.07.12 14:46
"많은 시민들이 더 나은 브라질을 만들기 위해 싸워줘서 자랑스럽다."

1992년 이후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발언이다. 시위대를 "약탈자들"이라고 깎아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안토니오 파트리오타 브라질 외무장관은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터키와 다르다"며 "브라질에서는 터키가 지난 몇 주간 겪었던 방식의 폭력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저기에서 폭력사건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시위는 대체로 평화로웠다"며 "우리는 시위대가 계속해서 평화로운 방식으로 시위하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위는 민주적 과정의 일부"라면서 "브라질은 더 강해졌다"고 이번 시위를 평가했다.  

부유하고 교육 잘 받은 중산층, 거리로 나서다 

브라질 역시 터키와 마찬가지로 이미 민주화된 나라다. <로이터>는 "브라질은 다양한, 주로 왼쪽에 있는 정당을 가진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라며 "이 나라의 현재 지도자들은 1970년대, 1980년대 군사정부에 저항하면서 경험을 쌓아왔고, 호세프 대통령 그 자신이 게릴라였다"고 전했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반대하면서 시작된 시위는 지난 17일 전국적으로 25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이슈 역시 정부의 부정부패, 높은 세금, 낮은 공공서비스 질, 불안에 치안에 대한 분노가 더해지면서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여기에 내년 브라질 월드컵,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대한 투자규모를 보면서 "우리는 축구보다 교육·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시민들의 외침은 커졌다.  

지난 18일 호세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시위대의 메시지가 전해졌다"면서 "정부는 사회혁신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19일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는 요금 인상을 철회했다. 페르난도 아다지 상파울루 시장은 이를 "커다란 희생"이라고 표현하면서 "우리는 대신 다른 부분에서 투자를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부분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몇몇 지자체는 한 발 더 나아가 요금을 인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CNN은 전했다.

거리는 축제 분위기가 됐다. 시민들은 노래하고, 드럼을 두드렸다. 시위의 한 참가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카니발 같다"며 "길거리를 따라 가면, 사람들이 사무실 불을 껐다 켰다하거나 창문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지지를 보내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시위의 특징은 지난 10년간 급속히 증가한 중산층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현지 여론조사기관인 다탸폴랴(Datafolha)가 17일 시위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시위대는 브라질 평균 인구에 비해 대학학위를 3배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는 "이번 시위는 평균의 브라질인보다 부유하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난 (정부에 대한) 시끄러운 불만족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통신은 "최근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심지어 칠레에서도 볼 수 있었던 정치적 저항의 전통을 갖고 있지 못한 브라질에서 이러한 참신함은 중요했다"며 "대중을 통제하는 데 미숙한 경찰이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쓴 것은 충격의 강도를 높였고, 더 많은 동조자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많은 이슈 내세우면 어떤 것도 달성하기 어려워"

'요금 인상 철회'라는 작은 승리를 얻어낸 이번 시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20일, AP에 따르면 전국 80개 도시에서 100만 명이 넘는 '화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숫자다.

터키의 시위의 이슈가 더 이상 '나무'가 아닌 것처럼, 브라질 시위의 이슈 역시 이제는 '버스 요금'이 아니다. 브라질 시민들은 '정부 부정부패 척결'과 '더 나은 공공서비스'등 사회구조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은 이날 방일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20일 최소 5곳의 도시에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이 방생했다. 가장 큰 충돌이 일어난 곳은 약 30만 명의 시위대가 모인 리우데자네이루다. AP 통신에 따르면, 경찰은 얼굴을 티셔츠로 막은 청년들에게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쐈다.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는 경찰이 수백 명의 시위대가 외교부에 진입하려는 것을 막았다. 시위대는 도시 중심부에 있는 다른 정부 기관 건물도 공격했다. 상파울루·살바도르·포르투알레그레·벨렘 등에서도 충돌이 발생했다. 살바도르에서는 경찰이 쏜 최루가스와 고무탄에 한 여성이 발에 부상을 입었다. 상파울루에서는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는 차량에 치여 1명이 사망자가 발생했다.

살바도르 캄포 그랜드 광장에는 5000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25살의 학생 이탈로 산토스는 시위대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세금·전기·공공서비스를 위해 많은 돈을 낸다. 그 돈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브라질 시민들이 이번 시위를 통해 변화에 대한 희망을 얻었다는 것은 분명 큰 의미다. 이제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열기가 얼마나 계속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AP는 "시위대의 불만이 널리 퍼져있지만, 이 불만을 정부에 대한 논리적인 요구로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만을 '구체화' '조직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브라질 시위대는 딜레마에 빠졌다. 시위가 버스 요금과 같은 하나의 이슈에 좁게 접근하면 그 이슈가 해결됐을 때 열기를 잃게 된다. 반면, 너무 많은 이슈를 끌어안으려고 하면 어떠한 목적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AP는 지난해 미국에서 일어난 '오쿠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street)' 시위를 예로 들면서 "월스트리트의 부패에 대한 분노를 '집중된 정치적 힘'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집트 시위대는 무바라크를 축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 단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 55% "호세프 정권 잘한다"... 폭력사태·경제상황 악화 변수

시민들의 분노를 구체화·조직화할 수 있는 지도세력이 없다는 것도 숙제다. 통신은 "독재에서 벗어난 지 30년밖에 안 된 브라질에는 자연스럽게 시위대의 리더가 될 수 있는 힘있는 전국적 시민 그룹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번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끈 '프리 페어 무브먼트(Free Fare Movement)는 2006년부터 대중교통요금 무상화 운동을 벌인 단체다. 이들이 시위대에서 나오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모두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벨루 오리존치 대학 정치과학 교수인 레오나르도 애브리처는 사회운동을 '양파'에 비유했다.

"양파의 중심에는, 잘 조직되고 정치화된 그룹이 있어요. 이것을 둘러싸고 외부에 수많은 층이 있다. 이 외부의 층은 운동이 요구를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의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빠르게 사라집니다."

<로이터>는 이번 브라질 시위가 "유럽, 아랍에서 일어났던 경제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시위와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시위와 대안사회운동이 기존 사회질서를 흔들 만큼 컸던 다른 나라와 달리 브라질은 청년실업 혹은 전반적인 실업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브라질은 취업률이 높고 임금도 오르고 있다. 문제는 연 물가상승률 6.5%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다.

그럼에도 호세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난 19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55%가 '좋다, 매우 좋다'라고 답했다. '나쁘다, 매우 나쁘다'는 13%였다. 룰라-호세프 노동자당이 지난 10년간 일군 경제성장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는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저소득층은 교통요금 문제가 관련돼있음에도 시위에 거의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터키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위 현장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게 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경제상황 악화 역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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