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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오른 보육교사들은 지금...

양심 고백,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해고... 보육교사들, 권익위에 보호조치 신청

등록|2013.06.24 17:32 수정|2013.06.24 17:32

▲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어린이집 원장이 만든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을 방해받은 대구광역시 A민간어린이집, 강원도 평창군 B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자신들이 받은 탄압사례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기태


▲ 어린이집 원장들이 내부고발 보육교사들의 재취업을 봉쇄하기 위해 만든 보육교사 블랙리스트에 오른 한 보육교사가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블랙리스트'라고 적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와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가 마련한 '보육교사 블랙리스트-취업방해 등 탄압사례'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이기태


바나나 1개를 어린이집 원아 10명에게 나눠 먹인 어린이집 원장, 15인승 차에 55명을 태워 단체견학을 떠나게 한 어린이집 원장, 국가보조금을 부당으로 수급하고 공금도 횡령한 어린이집 원장 그리고 이들을 고발한 보육교사들. 바로 대구광역시 A민간어린이집에 근무했던 보육교사 5명, 강원도 평창군 B국공립어린이집에 근무했던 보육교사 4명의 이야기다.

양심을 거역할 수 없었던 이 어린이집 교사들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이들은 어린이집 내 비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원장에 의해 해고되거나 어린이집을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해당 어린이집 원장에 의해 작성된 보육교사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도 방해받고 있는 상태다.

생계에 위협을 느낀 보육교사 4명(대구 1명, 평창 3명)은 24일 오전 상경해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 공익신고자 불이익조치에 대한 보호조치를 신청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와 공공운수노조·연맹 보육협의회가 이들의 보호조치 신청을 도왔다. 보육교사들은 권익위에 보호조치 신청을 하기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이 받았던 탄압사례를 공개했다.

바나나 1개로 원아 10명 먹여... 15인승 차량에 55명 태우고 단체견학

▲ 바나나 1개를 원아 10명에게 나눠 먹이고, 단체견학을 갈 때 15인승 차에 55명을 태우는 등 비상식적인 행위를 한 대구광역시 A민간어린이집 원장이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먹으라고 제공한 음식재료. A민간어린이집 원장은 자신의 딸이 나흘 전 소풍가느라 김밥을 싸고 남은 재료를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한 데 담아 교사들에게 김밥을 싸 먹으라며 제공했다. 또한 열악한 보육·노동환경에 대해 교사들이 항의한 후 퇴사하자 이들을 고소하고, 이들의 인적사항을 담은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해 지역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발송했다. ⓒ 공공운수노조·연맹 보육협의회


대구광역시 A민간어린이집 교사 5명은 바나나 1개를 원아 10명에게 나눠 먹이고, 단체견학을 갈 때 15인승 차에 55명의 아이를 태우는 등 어린이집 측의 열악한 보육·노동환경에 대해 항의하며 지난해 4월 집단 퇴사했다.

그러자 해당어린이집 원장 C씨는 보름 후 이 보육교사들을 단체행동과 업무방해로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 고소했다. 이어 7월에는 '교사채용 시 주의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이 교사들의 이름, 생년월일, 교사이력 등이 담긴 문건을 작성한 뒤 보육통합정보시스템 업무연락망을 통해 대구어린이집연합회 민간어린이집분과위원회 소속 원장들에게 발송했다.

하지만 법원이 고소 건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판결을 내리자, 원장 C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A어린이집 보육교사 D씨는 "어린이집을 증설한다고 아이들을 보육해야 하는 시간에 보육교사들에게 위층 공사장 청소를 시키는 등 원장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했고, 보육환경 또한 열악했다"며 "제 시간에 퇴근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한 번은 6시 반에 퇴근하려 하니 원장이 '일이 안 끝났는데 어떻게 퇴근하느냐?'며 밀린 일도 없었는데 퇴근을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퇴근시간은 없다. 이곳에 왔으면 이곳 법을 따르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보육교사 5명이 어린이집을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는 평가인증 준비 중 당한 부당대우 때문이었다고 보육교사 D씨는 전했다.

"지난해 4월 그날따라 몸이 아프기도 하고 해서 일찍 퇴근하고 싶었는데 원장이 무조건 평가인증을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냉장고에 김밥재료가 있으니 교사들과 싸서 먹으라고 해 냉장고를 열어보니 쓰레기종량제 봉투 안에 나흘 전 자기 딸에게 싸주고 남은 김밥재료가 한데 뒤섞여 담겨 있었다. 교사로서 인격적인 모독을 당하고 '나는 교사가 아니다' 싶은 마음에 그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게 됐다."

보육교사 5명 모두 현재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불합리한 조건 속에서 대구시내 민간어린이집에 재취업한 이가 한 명, 민간어린이집보다 처우가 열악한 대구시내 가정어린이집에 취업한 이가 두 명이다. 대구시내에서 취업하지 못하고 타 지역인 경북 영천으로 옮겨 민간어린이집에 취업한 이도 한 명 있다. 나머지 한 명은 아기를 임신한 상태로 현재 일을 쉬고 있다.

내부고발 후 집단 해고 당해... 원장은 타 어린이집서 근무

▲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내부 고발을 당한 어린이집 원장이 만든 보육교사 블랙리스트로 인해 취업 방해를 당한 보육교사들이 자신들이 받은 탄압사례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기태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국공립어린이집인 B어린이집 보욕교사 4명은 어린이집 측의 국가보조금 부당수급, 공금횡령 문제를 보건복지부에 공익 신고했다는 이유로 집단으로 해고된 경우다. 공익 신고 후 해당 군청의 조사로 원장이 교체됐으나, 새로 부임한 원장은 4명의 교사들을 집단으로 해고했다. 반면 해당 어린이집을 5년 정도 운영했던 B어린이집 전 원장은 현재 춘천시에 있는 한 법인어린이집으로 옮겨 원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B어린이집에서 근무했던 교사 E씨는 "보조금 횡령에 대한 교사들의 민원이 접수되자, 군청에서 나와 어린이집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후 해당 교사들에게 한 달 짜리 근로계약을 하라고 했고, 그걸 하지 않는 한 당장 나가라고 했다"며 "아이를 책임지고 보육해야 하는 교사로서 책임감을 갖고 한 달 계약을 하고 근무를 계속 했는데, 그 시기에 새로운 원장이 와서 해당 교사들을 모두 부당해고 했다, 현재 노동청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낸 상태"라고 말했다.

같은 어린이집에서 근무했던 보육교사 F씨는 B어린이집 전 원장과 그의 남편이 보육교사들을 비인격적으로 대우했다고 사례를 털어놨다.

"설 명절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혀 예절교육을 진행하면서 원장과 어린이집 차량기사를 하고 있는 원장 남편이 상석에 앉아 아이들에게 반별로 절을 받았다. 아이들의 절이 끝난 후 돌아가려는 보육교사들을 붙잡고는 보육교사들에게도 절을 강요했다."

보육교사 F씨는 "B어린이집은 공금횡령도 큰 문제이지만 보육교사를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근무환경이 더 큰 문제였다"며 "나이도 38살 밖에 되지 않은 원장과 남편이 갑을 관계에 의해 보육교사들에게 절을 강요한 뒤, 절을 한 교사에게 1000원을 줬다"고 털어놨다.

이어 보육교사 F씨는 "모욕감을 느껴 항의하는 교사에게 원장 남편이 반말로 '상사에게 절을 하는 게 그렇게 억울하느냐'며 주먹을 쥐며 때리려고 하는 걸 동료교사와 아이들이 같이 목격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는 "복직을 원한다"고 호소했다.

현재 평창 B어린이집의 경우, 어린이집 내부 비리를 고발한 보육교사 4명 외에도 이들 교사를 도왔던 학부모도 전 원장에게 고소를 당한 상황이다.

공익신고 봉쇄하는 어린이집 블랙리스트 실태조사 시급

▲ 24일 오전 내부고발 보육교사들의 재취업을 봉쇄하기 위해 어린이집 원장이 만든 보육교사 블랙리스트에 오른 보육교사들이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신청을 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민원접수처로 들어서고 있다. ⓒ 이기태


공공운수노조·연맹 보육협의회 김호연 강원지회장은 "시장화 돼 있는 어린이집 속에서 보육시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돼 있지 않아, 현장 관리 감독을 하는 공무원이 갔을 경우에도 내부고발이나 공익제보 없이는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 제보한 교사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유포되고 현장에서 해고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김 지회장은 "평창 건의 경우 공익 제보를 한 이 교사들은 원래대로 일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군청이 나서서 교사들에게 한 달짜리 근로계약서를 강요해 한 달 새 교사들이 해고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각 지자체 공무원과 어린이집 원장 간 유착관계가 심한 상황에서는 블랙리스트나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익 제보하는 현장교사들은 점점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공익신고자 등에게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 국민권익위는 보호조치를 신청 받으면 불이익 조치를 한 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해야 하며, 30일 이내에 보호조치 결정 여부를 정해야 한다. 신분상실에 해당하는 조치를 행한 어린이집 원장 등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등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이날 보호조치 신청인들은 ▲불이익조치에 관여한 자들에 대해 권익위가 고발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 ▲블랙리스트가 이미 배포돼 돌이킬 수 없다면 해당 지자체에 국공립어린이집 채용 등을 권유하는 등의 실질적인 원상회복 조치를 취할 것 ▲공익신고를 봉쇄하는 범죄행위인 어린이집 블랙리스트에 대한 실태조사를 전국적인 차원에서 실시할 것 등도 요구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육아전문지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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