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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남북정상회담회의록' 뜯어봤더니...

'NLL포기' 한 적 없고, '기본합의'에 근거해 대응

등록|2013.06.26 10:58 수정|2013.06.26 10:58

▲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지난 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 5분 국가원수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남북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통과하고 있다. ⓒ 국가기록원대통령기념관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저의 이번 걸음이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고, 고통을 넘어서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그런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잘 다녀오겠습니다."

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 5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면서 한 말입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금단의 벽은 허물어진 것이 아니라 더 강고해졌습니다.

노무현이 연 "평화와 번영의 길", MB와 박 대통령이 팽개쳐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바람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2월 28일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기념 국제학술회의'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첫째, 서로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남북 간, 그리고 북한이 국제사회와 합의한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선언' '10·4 선언' 등 기존의 약속들은 기본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MB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4일 기밀해제를 통해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제공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이하 회의록)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회의록 전문 공개를 주도한 남재준 국정원장은 25일 오전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출석해 "국정원의 명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연질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무현이 연 "평화와 번영의 길"을 MB와 박 대통령이 팽개쳐 버렸습니다.

이번 공개로 박근혜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은 거의 물건너 갔습니다. 남북정상회담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 정상회담을 할 때 상대국이 얼마나 대한민국 대통령와 정부를 신뢰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회의록 전문보니 "NLL포기" 발언은 없어

회의록 전문을 보면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은 두 차례 걸쳐 4시간 6분 회담했습니다. 통역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8시간 회담과 같습니다. 온힘을 다해 두 정상이 회담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남북관계만 아니라 외교사에 길이 남을 부끄러운 업적으로 기록될 일을 '당당하게'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그리고 지난 20일 국정원이 만든 발췌본을 본 새누리당 의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 "김정일과 대화가 아니라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고 맹비난 했습니다. 발췌본을 본 이들이 한 발언이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말 NLL를 포기한 것처럼 믿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4일 발췌본 전문과 25일 회의록 전문이 공개되자 노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는 발언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회의록 전문을 보도한 <조선일보>는 이날 자 사설에서 "2007년 정상회담 대한민국 대통령이 있었나"라며 "그 남북 정상회담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고립무원의 처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 진정한 '대한민국 대통령'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는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며 아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자격도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2007년 10월, 노무현은 '서해협력지대' 이미 말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백 번 양보해 노 전 대통령이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 동안에 NLL문제는 다 치유가 된다"고 한 말이 새누리당이 그토록 주장했던 'NLL포기' 비슷한 의미라고 해도 이 발언 내용은 이미 2007년 10월 공개된 내용입니다.

▲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국민보고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 ⓒ 노무현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대표단 환영식에서 '대국민 보고'를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보고를 통해 회담과정과 성과, 북핵 문제, 한반도 평화체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남북경협, 화해와 통일 문제, 후속조치와 합의이행 등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짜깁기' 의혹을 피하기 위해 <노무현사료관> 주제별 어록 '2007 남북정상회담'에 나오는 '서해평화지대가 남북정상 공동선언의 핵심' 글 전문을 싣습니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분쟁문제들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기로 그렇게 합의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 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저는 서해 해상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 군사적 대결의 관점이 아니라 경제협력의 관점으로서 이 서해 문제를 우리가 풀어 나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서해에서 공동어로구역과 해상평화공원, 그리고 해주공단 개발과 이를 개성공단·인천항과 이렇게 연결하고, 한강 하구의 공동 이용을 묶어서 포괄적으로 대결 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해서 경제적 협력을 해 나가는, 이런 포괄적인 해결 방안으로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방안을 제의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김정일 위원장은 국방위원회 참모들과 상의한 다음에 우리 제안을 원칙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상선언에 포함되게 됐습니다. - <노무현사료관> '서해평화지대가 남북정상 공동선언의 핵심'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같은 달 11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당·원내대표 초청 간담회을 가집니다. 이 자리에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 문성현 민주노동당대표, 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비서실장 등이 배석했습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노무현 "NLL은 '기본합의'에 근거해 대응"... 국정원은 발췌본에서 이 발언 빼

휴전선은 쌍방이 합의한 선인데, 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입니다. 그 선이 처음에는 우리 해군의 작전 금지선이었습니다. 이걸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들을 오도하는 것입니다. 국민들을 오도하면 여간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사실관계를 오도하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는 것은 나중에 바로잡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고려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문제는 남북 기본합의서에 근거해서 대응해 나간다는 것이 우리 기본입장입니다. -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당·원내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 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당·원내대표 초청 간담회 ⓒ 노무현재단


특히 노 전 대통령은 "NLL은 '남북 기본합의서'에 근거해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24일 공개된 회의록 전문에도 이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 말하자면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큰 틀의 뭔가 우리가 지혜를 한번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노 전 대통령이 말한 옛날 기본합의서는 지난 1992년 9월 남북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부속합의서 제3장 제10조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회의록 전문에는 노 전 대통령이 '옛날 기본합의서'라고 말한 것을 공개했지만 8쪽 짜리 발췌본에는 이 발언이 없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 'NLL포기' 아니라 김 위원장이 '사실상' NLL 인정

왜 국정원은 발췌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은 기본합의서에 근거해 대응할 것이라고 한 것을 빼버렸을까요? 이는 노 대통령이 NLL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분명히 전달한 것입니다. 이같이 중요한 사실을 발췌본에서는 빼버린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이 회담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라며 "우리 군대는 지금까지 주장해온 군사경계선에서 남측이(의) 북방한계선까지 물러선다"고 밝혔습니다.

<연합뉴스>는 25일 '盧, NLL "옛날 '기본합의' 연장선상서 협의"' 제목 기사에서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언급이 사실상 NLL을 인정하면서 NLL 이남 지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조성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데도
노무현 대통령 보고 'NLL포기'했다고 거품 물었던 이들야말로 초등학교 1학년 독해력도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집권당 국회의원에게 대한민국 최고 신문이라고 자랑하는지, 뻔뻔함의 극치입니다.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보고? 알고보니 김계관이 보고한 것

지난 20일 국정원으로부터 회의록 전문과 발췌록을 열람한 새누리당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회의록에는 "대화가 아니고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회의록 전문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김계관 당시 외무상에게 10·3 공동성명 합의 경과를 보고하라고 말합니다. 김 위원장 명령을 받은 김 외무상은 아주 상세하게 보고합니다. 노 대통령도 10월 4일 대국보고와 11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당·원내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미 정상회담이 6자회담의 진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북측의 성의 있는 노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회담 도중에 김정일 위원장은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회담장에 들어오도록 해서 10월 3일의 공동성명의 합의결과를 직접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소상한 보고를 저희가 받았습니다. 저는 6자회담의 진행이 아무런 장애없이 잘 풀려갈 것으로, 따라서 핵문제는 잘 풀릴 것으로 확신합니다. - 10월 4일 대국민보고회

핵 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표현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미흡하다고 평가한 것 같습니다. 핵 폐기 과정에 대해 저는 이미 기정사실로 보고, 이미 이행단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 문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상회담시 서두에 그쪽에서 우리는 핵을 가질 의지가 없다면서 6자회담 대표(김계관)를 불러서 과정을 설명까지 해 주는 데, 핵 폐기를 확인하는 부분을 한 줄 더 넣자는 것을 가지고 옥신각신 긴 시간 논의하는 것이 회담 전략상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9·19선언에 명확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 10월 11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당·원내대표 초청 간담회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국정원과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이 김계관 외무상을 불러 6자회담 진행과정을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기밀인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입니다.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자신 발언이 과장됐다면 "사퇴"하겠다고 했습니다. 사퇴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오전 한 번만 아니라 오후까지 두 번 회담을 하자고 끊임없이 제안합니다. 결국 김 위원장은 "2시 반 시작해서 4시 끝나면… (김양건 부장에게) 내 회의도 저녁시간으로 다 돌려라. 오늘 외무성 사람들 몽땅 모여서 방향을 얘기하려는데… 노 대통령님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해서 2시 반에 하는 걸로…'라며 오후 회담을 받아들입니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에게 노 대통령이 '애걸'한 것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아닙니다. 남북정상이 7년 만에 만났는 데 한 번 만나고 왔으면 국민 누가 잘했다고 하겠습니까?

노무현, 탁월한 선견지명을 가진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남북관계를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평화 정착, 두 번째는 경제 협력의 확대, 세 번째로는 통일과 화해라는 세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회담에서 내가 김정일 위원장과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남북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고 책임자들이 협의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는 큰 테두리를 그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져야할 철학입니다. 누가 이것을 비판합니까? 이를 실현하게 위해 "남북기본합의서에 근거"하면서 "서해평화지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NLL를 포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철도·도로 개통, 금강산 관광특구 확대 등을 우선 추진", "이산가족 문제는 지금 해결", "남북관계 회복을 통해 자주성 확립" 등등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4시간 6분 동안 두 정상이 회담을 통해 합의한 것이 '10.4선언'입니다.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를 맡았던 검사에게 '색깔론'을 폈던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 서해북방한계선(NLL) 발언을 거론하며 "북한의 독제자에게 우리 영토와 자존심을 송두리째 갖다바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당 이철우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유치원생도 NLL(서해 북방한계선)이 없어지는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의원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회의록을 읽으면 읽을수록 노무현 대통령은 NLL를 포기하지 않았고, 탁월한 선견지명을 가진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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