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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살았다는 호곡엔 줄배만 남아...

[르포] 자전거를 타고 만난 섬진강 길 구석구석

등록|2013.06.27 09:02 수정|2013.06.27 09:02

▲ 물, 자전거, 자동차, 기차가 함께 달리는 섬진강변 모습 . 오른쪽 산자락 밑에 기차가 달리고 바로 아래에는 자동차, 내가 서있는 곳은 자전거 도로이며 제일 낮은 곳은 섬진강 차지다. ⓒ 오문수


전북 남동부와 전남 북동부를 흐르는 섬진강은 길이 212.3㎞, 유역면적은 4896.5㎢에 이른다. 전북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에서 발원해 진안과 임실, 남원, 곡성을 거쳐 압록 근처에서 보성강과 합류한 후 광양만으로 흘러들어간다.

소백산맥 줄기를 따라 강 양안으로 펼쳐진 멋진 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가 만들어내는 섬진강변은 드라이브에 최적이다.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자전거하이킹을 하면 삶이 더없이 행복해진다.

지난 22일(토) 고향에 들렀다가 섬진강 자건거길을 따라 자전거여행을 나섰다. 자전거가 없어 곡성기차마을 종착역이 있는 가정역 인근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 대여소를 찾았다.

가게에서 마실 물 두 병을 사고 수건을 자전거에 단단히 매단 후 곡성섬진강천문대가 있는 다리를 건넜다. 하지가 바로 엊그제인데 성급한 아이들은 벌써 섬진강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하고 있다. 누가 이들을 말릴 수 있으랴! 넘치는 에너지는 젊음의 특권이다.

▲ 기차마을이 끝나는 가정역에서 건너편으로 가는 출렁다리 야경 ⓒ 오문수


▲ 기차마을 종착역인 송정리에는 캠핑장과 래프팅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즐거운 한 때를 가질 수 있다 ⓒ 오문수


도로 아래 새로 생긴 자전거도로 옆 나무그늘 아래에서는 돗자리를 편 여행객들이 굽는 삼겹살 요리 냄새가 진동한다. 시멘트로 된 잠수교를 따라 천천히 강 건너편으로 간다. 잠수교다리 끝 무렵에 가니 은어 낚시꾼이 물속에서 은어를 잡고 있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만큼 고기가 많지는 않은지, 신통치 않다.

가정리를 떠나 두가리로 가는 길 주변에는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족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직장 동료인 듯한 그들의 깔깔거림을 뒤로 하고 두가리에 도착했다. 중학교 다닐 적 이곳에서 통학하던 예쁜 여학생이 생각난다. 그녀도 지금쯤 많이 늙었겠지!

구례쪽 산 아래에 승마체험장이 보인다. 승마는 고급스포츠로 비싸다는데 여기까지 와서 말을 타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멋진 한옥이 보인다. 그런데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한옥이 아니라 대감들이나 살았던 위엄을 갖고 있다. 때마침 손님과 이야기하는 한 아주머니의 우아한 모습에 주인이라는 느낌이 들어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 신인수씨가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 2012년 대한민국 한옥건축 대상을 탔다는 신인수씨의 집. 아름다운 섬진강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펜션으로도 쓰인다. ⓒ 오문수


"이 한옥이 작년에 대한민국 한옥건축대상을 받았어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 고향에 내려와 사업을 하던 중 찻집을 운영하기 위해 이곳에 한옥을 지었어요. 원래부터 한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어릴적 제가 자라던 옥과의 모습과 비슷한 향기가 나서요. 여름에는 친구들과 수영도 하고 낚시질을 하며 다슬기를 잡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던 향수가 저를 불렀죠. 누가 그러데요. 한옥을 지으면 한옥에 묻힌다고. 한옥은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는 묻히지 않고 즐길 참입니다."

셋이 얘기하던 중 다실에서 차를 마시던 아주머니 네 명이 나오며 신씨에게 한마디 한다.

"아니! 곡성에도 이렇게 예쁜 집이 있었나요?"

뭐가 그리 좋은지를 묻자, "가장 좋은 건 공기죠 뭐. 길을 잘못 들어 이곳에 왔는데 나도 이곳에 이런 집을 짓고 싶네요"라고 신씨가 대답한다.

마천목 장군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도깨비살

대화를 끝내고 상류 쪽으로 백여 미터 올라가니 자전거를 타고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가파른 고갯길이 나온다. 이곳이 말로만 들었던 '뺑덕어멈고개'인가 보다. 얼마나 올라가기가 힘들었으면 뺑덕어멈일까 실소하며 조금 더 가니 머리에 뿔난 도깨비가 길가에 서 있다.

이곳은 마천목 장군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어느 날 마천목 장군의 부모님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그는 섬진강을 가로질러 어살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세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강물 속에 푸른 빛을 띤 돌 하나가 눈에 띄었다.
 

▲ 마천목 장군의 도깨비살 전설이 서린 동상 ⓒ 오문수


예쁘고 귀한 돌이라는 생각에 집으로 가져와 잠이 들었다. 장군이 잠을 자는데 꿈 속에 도깨비들이 나타나 "대감님께서 주워온 돌은 우리의 대장입니다"며 돌려줄 것을 간청해 돌려줬다. 이에 도깨비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어살을 막아줘 고기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때마침 2인승 자전거를 타고 앞서가는 부부를 만났다. 대전에서 왔고 4대강을 자전거로 여행했다는 남편은 "복장을 안 갖췄기 때문에 사진촬영은 곤란하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한강부터 낙동강, 영산강, 금강의 4대강을 자전거로 여행했지만 섬진강이 최고입니다. 강이 아기자기하고 자연 그대로이며 인위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그들과 헤어진 후 백여 미터쯤 달리다 옛날 생각이 나 실소를 했다. 중학교 시절 나무하러 다닐 때 이곳 산 중턱에 커다란 동굴이 보였다. 이른바 '굴바우'다. 지금이야 나무가 우거져 안 보이지만 저 속엔 뭔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다녔다.

<황금박쥐> 동화에 빠져 호기심에 가득차 있었던 나는 100미터에 달하는 밧줄을 가지고 친구와 동굴 탐험에 나섰다. 그 속에는 해적이나 산적이 보물을 숨겨놔 횡재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굴 앞 커다란 나무에 밧줄을 매고 플래시를 비추며 들어간 동굴은 채 십미터도 못 가 막장이 나왔다.

자전거는 시멘트로 잘 포장된 길을 신나게 달린다. 강가 바위에는 해오라기가 물속을 호시탐탐 노려본다. 갑자기 꿩이 놀라 달아난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까치 서너 마리가 빙글빙글 돈다. 한창 사랑을 나누는 그들을 방해했나 보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곡엔 줄배만 손님을 기다리고...

▲ 호곡에 가려면 줄배를 타야만 한다. 마을 주민이 떠나버린 강가에 빈배만 하품을 한다 ⓒ 오문수


드디어 호곡이다. 이곳은 옛날에 호랑이가 살아 범실이라고도 불렀다. 일제강점기 금광이 있었던 침곡에서 호곡마을로 가려면 섬진강을 가로질러 잡아맨 줄을 잡고 강을 건너는 줄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다 떠난 마을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줄배만 하품을 한다. 

1㎞쯤 달려 도착한 곳은 고달. 어릴 적 일이다. 강을 두고 맞은편에 살던 우리 동네 아이들과 고달리에 사는 아이들은 백중이면 강을 사이에 둔 채 투석전을 벌였다. 특별히 원한 맺힌 것도 없는데 전통이기도 하고 지지 않겠다는 객기였다. 고달리 살던 친구들도 읍내로 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절친한 친구가 됐다.

남북한도 그렇다. 만나지 않으면 서로 객기를 부리고 적으로 여기지만 만나서 정을 나누면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자존심만 내세운 채 서로를 불신하며 못 만나게 하는 사람들은 반통일 세력이다.

기름진 옥답이 있었던 곳에 설치된 쓰레기 처리장에 유감

▲ 비옥한 옥토위에 쓰레기장이라니! ⓒ 오문수


목동에서 읍내로 가는 다리를 건너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아! 이럴 수가! 들판 한 가운데 쓰레기 처리장이 있다. 이곳은 섬진강이 쓸고온 고운 퇴적물이 쌓여 이루어진 그야말로 옥토다. 농사가 너무나 잘 됐고 4~5미터를 파도 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옥답이다. 이런 곳에 쓰레기 처리장을 두다니! 이곳은 아니다. 지자체에서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내 고향 오지리를 거쳐 강변을 따라 내려간다. 저 멀리 고달로 가는 잠수교 위에서 낚시질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가니 한 노인이 20여 마리의 피라미를 잡았다.

▲ 고달로 가는 잠수교에서 할아버지가 피라미를 잡고 있다. 예전만 못 하다고 한다 ⓒ 오문수


"고기 많이 잡았어요?"
"조금 잡았어. 옛날만큼 고기가 많지 않아. 옛날에는 은어가 많아서 압록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은어를 잡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 가뭄이라 물이 작기도 하지만 남원과 곡성읍에서 내려오는 물들이 옛날처럼 깨끗하지 않아."

내 어린 시절,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수영을 해도 눈만 충혈된 채 눈병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은어, 쏘가리, 피라미, 잉어, 붕어, 메기, 가물치, 동자개 등이 넘쳐날 정도로 많았던 마음 속 고향의 강.

물속 모래 위에 서 있으면 발밑을 간질이는 것이 있었다. 발끝에 힘을 주고 앉은 자세로 발밑을 파면 팔뚝만한 모래무지가 잡혔다. 그런데 물 색깔을 보니 옛날처럼 맑지가 않다. 친구들과 하루 종일 뛰놀며 물새알을 줍던 옛날 강물이 아니라 서글퍼진다.

▲ 섬진강 유역에 생긴 습지. 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 오문수


500미터를 더 가니 오른쪽에 시멘트 전봇대를 생산하던 삼원기업이 나타난다. 군 제대 후 학비가 없어 이곳에서 1년 동안 일해 대학에 진학했다. 감개가 무량하다. 용접 배우던 초기 엄청 눈이 아파 고생했고, 추운 겨울밤 휘몰아치는 강바람을 맞으며 야근하며 용접했던 곳이다. 이 공장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섬진강 은모래를 원료로 한다.

아까부터 먹구름으로 캄캄해진 하늘에서 비가 후두둑 내린다. 비도 내리고 자전거를 반납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 됐다. 속도를 내서 달리는데 기차마을에서 출발한 기차가 소리를 내며 나와 함께 달린다.

천천히 달리는 옛날 기차! 내가 이기나 기차가 이기나 시합해보자며 페달을 밟는다. 그런데 달리는 건 나뿐만 아니다. 강물도, 나도, 자동차도 기차도 함께 달린다. 야! 달려라!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멋진 추억을 향해!

출발지로 되돌아 왔다. 식당과 자전거 대여점을 하는 구름다리 가든 주인 홍성수씨는 귀촌을 했다. 종로에서 살다 귀촌한 지 4년 됐는데, 행복하단다. 그에게 귀촌한 이유를 들어봤다.

▲ 4년전 종로에서 귀촌한 홍성수씨가 가게 주변에 자란 풀을 베고 있다. 섬진강가에서 사는 게 행복하다고 한다 ⓒ 오문수


"50대 초반부터 전원생활을 꿈꾸며 전국을 돌아다니다 이곳을 선택했어요. 도시사람이 농사짓는다며 귀농한다고 하는 것은 농민들을 모독하는 거죠. 알아본 바에 의하면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제 것만 어렵고 남의 것은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식구들은 처음에 90% 반대했어요. 지금은 50%는 좋다고 해요. 돈이 많아도, 서울대를 나와도 꼭 행복한 것은 아니에요. 여기 사는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홍씨 부인은 곡성으로 이사 올 당시에는 3시간밖에 못 잤고 우울증에 걸렸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식당 경영이 두려웠고 아는 사람도 없는 것에 적응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이제 좋은 이웃도 생기고, 서울 있었으면 매일 병원에 다닐 텐데 병원을 안 다니니 좋아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행복을 본다.

3시간여 동안 20여 킬로미터를 달리며 환상 속 동화 나라를 달리다 현실로 돌아간다. 갑자기 배낭여행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유럽 배낭여행할 때 라인강을 달리는 유람선을 타고 로렐라이 전설이 있는 현장을 방문했다. 노래로 유명해진 로렐라이 상을 바라보며 느꼈던 심정이 떠올랐다.

"애걔!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네. 곡성 섬진강은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데!
덧붙이는 글 다음블로그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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