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편안한 곳
[신선생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딩 ⑭] 따또파니에서 포카라까지
인생과 여행의 공통점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젯밤까지도 오늘 일행들과 고레파니(2850m)에 올라 푼힐 전망대(3200m)에서 일출을 본 후 그들은 ABC(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4130m)로, 저는 포카라(620m)로 하산하여 트레킹을 마무리 할 생각이었습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어젯밤,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물 소리가 저를 심란하게 하였습니다. 밤새 몸을 뒤척이다 불현듯이 트레킹을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참고 있던 몸도 으슬으슬 떨려오며 한기가 느껴집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기에 몸이 마음의 변화를 읽은 것 같습니다.
아침, 일행들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 통보에 그들은 당황한 것 같습니다. 한참을 말을 잊지 못하다가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러자'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헤어짐도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여행이겠지요. 그들은 예정대로 ABC로 가고 저는 버스를 이용하여 포카라로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따또파니(1200m) 마을 외곽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동력장치만 갖춘 지프차와 소형 버스가 주차하고 있습니다. 가이드 '도르지'가 서둘러 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트레커에 대한 배려겠지요. 히말라야의 버스는 사람만 타는 것이 아니라 닭이나 염소도 함께합니다. 포터 '치링'은 버스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해 지붕 위에 앉아 있습니다.
'롤러코스트'를 타고
따또파니를 출발한 버스는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칼리간다키 강을 따라 내려갑니다. 좌측은 낭떠러지이며 우측은 절벽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버스는 곡예 하듯 기어(?)갑니다.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입니다. 좁은 좌석에 오그리고 앉은 저는 두려움에 눈을 감습니다. 버스는 산굽이를 돌고 협곡을 지나 베니(817m)에 도착하였습니다.
베니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칼리간다키 강 계곡을 따라 좀솜으로 가는 버스와 카트만두와 포카라로 가는 버스의 종점이자 출발점입니다.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 때문에 무척 혼잡합니다. 두 시간을 기다린 후에 포카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는 해발 1500m, 노우단다('단다'는 고개란 말의 네팔어)를 넘어 포카라(620m)로 향했습니다.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차장은 달리는 버스에서 지붕과 차 안을 오르내리며 차비를 받고 짐을 정리합니다.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버스 안과 밖을 오가는 모습은 예술입니다. 승객들의 어떤 요구에도 불평 없이 웃는 모습으로 일하는 그는 히말라야를 닮은 것 같습니다.
버스 안과 지붕 모두 사람과 짐승으로 가득 채웠지만 마음씨 착한 기사는 도로에서 사람들이 손을 들기만 하면 정차합니다.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공간인데도 차장은 공간을 확보하여 승객과 짐을 싣습니다. 한 번 버스를 놓치면 언제 올지 모르기에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이 보기 아름답습니다.
여행자의 천국 '포카라'
따또파니를 출발한 지 아홉 시간이 지나서 여행자의 천국인 포카라(620m)에 도착하였습니다. 포카라는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아열대 기후로 연중 온화하며 안나푸르나의 빼어난 경치와 페와 호수의 아름다움으로 사철 푸르름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더구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시는 분들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구요.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가이드와 포터를 섭외하고 트레킹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입한 후 안나푸르나 라운딩, 좀솜 트레킹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ABC(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로 떠나갑니다. 트레킹이 끝나면 다시 이곳으로 회귀하여 휴식과 액티비티로 트레킹을 마무리합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보름간 함께 고생한 가이드 '도르지'와 포터 '치링'과 작별하였습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사히 트레킹을 끝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보름 동안 넉넉한 마음과 배려로 일관하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제가 입고 있던 바람막이 재킷과 장갑을 선물하였습니다.
'도르지'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것이, '치링'은 산업연수생으로 우리나라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네팔의 주요 수입원은 원조, 용병(해외 노동자 포함) 그리고 관광이라고 합니다.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네팔에서 두 젊은이의 선택은 최선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꿈이 실현되기를 기원해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김치찌개와 소주를 주문하였습니다. 음식을 먹고 있으니 산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을 두고 먼저 떠난 것이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그들도 지금 고레파니(2800m)에서 저를 생각하고 있을까요? 히말라야에서는 자신의 선택대로 행동하는 것이기에 현재 자기가 있는 곳이 최선의 선택이라 자위해봅니다.
20여일 만에 집에 전화
이른 저녁을 끝내고 집에 처음으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20여 일 만입니다. 애틋한 마음과는 달리 마음에 있는 말이 표현되지 않습니다. 한참을 더듬대다 상투적인 안부만 주고받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부부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집사람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저녁 무렵 페와 호수를 걸었습니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호수 위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호수에 잔물결이 일자 호수와 안나푸르나가 흔들리며 제 마음속에 각인됩니다. 보름간을 걸어 안나푸르나 산군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저와 인연을 맺은 산이기에 더 정감이 갑니다.
포카라에서 다섯 밤을 보낼 것입니다. 눈만 뜨면 매일 걷었던 생활이 까마득한 옛날같이 느껴집니다. 아침을 깨우는 당나귀의 워낭소리도,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도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힘들면 경치 좋은 호숫가에서 쉬면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편안한 곳이 '포카라'입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어젯밤,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물 소리가 저를 심란하게 하였습니다. 밤새 몸을 뒤척이다 불현듯이 트레킹을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참고 있던 몸도 으슬으슬 떨려오며 한기가 느껴집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기에 몸이 마음의 변화를 읽은 것 같습니다.
아침, 일행들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 통보에 그들은 당황한 것 같습니다. 한참을 말을 잊지 못하다가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러자'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헤어짐도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여행이겠지요. 그들은 예정대로 ABC로 가고 저는 버스를 이용하여 포카라로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버스 정류장따또파니 버스 정류장 모습 ⓒ 신한범
따또파니(1200m) 마을 외곽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동력장치만 갖춘 지프차와 소형 버스가 주차하고 있습니다. 가이드 '도르지'가 서둘러 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트레커에 대한 배려겠지요. 히말라야의 버스는 사람만 타는 것이 아니라 닭이나 염소도 함께합니다. 포터 '치링'은 버스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해 지붕 위에 앉아 있습니다.
'롤러코스트'를 타고
따또파니를 출발한 버스는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칼리간다키 강을 따라 내려갑니다. 좌측은 낭떠러지이며 우측은 절벽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버스는 곡예 하듯 기어(?)갑니다.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입니다. 좁은 좌석에 오그리고 앉은 저는 두려움에 눈을 감습니다. 버스는 산굽이를 돌고 협곡을 지나 베니(817m)에 도착하였습니다.
▲ 베니 모습교통의 요지 베니 모습 ⓒ 신한범
베니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칼리간다키 강 계곡을 따라 좀솜으로 가는 버스와 카트만두와 포카라로 가는 버스의 종점이자 출발점입니다.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 때문에 무척 혼잡합니다. 두 시간을 기다린 후에 포카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는 해발 1500m, 노우단다('단다'는 고개란 말의 네팔어)를 넘어 포카라(620m)로 향했습니다.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차장은 달리는 버스에서 지붕과 차 안을 오르내리며 차비를 받고 짐을 정리합니다.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버스 안과 밖을 오가는 모습은 예술입니다. 승객들의 어떤 요구에도 불평 없이 웃는 모습으로 일하는 그는 히말라야를 닮은 것 같습니다.
▲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노우단다에서 본 모습 ⓒ 신한범
버스 안과 지붕 모두 사람과 짐승으로 가득 채웠지만 마음씨 착한 기사는 도로에서 사람들이 손을 들기만 하면 정차합니다.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공간인데도 차장은 공간을 확보하여 승객과 짐을 싣습니다. 한 번 버스를 놓치면 언제 올지 모르기에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이 보기 아름답습니다.
여행자의 천국 '포카라'
따또파니를 출발한 지 아홉 시간이 지나서 여행자의 천국인 포카라(620m)에 도착하였습니다. 포카라는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아열대 기후로 연중 온화하며 안나푸르나의 빼어난 경치와 페와 호수의 아름다움으로 사철 푸르름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더구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시는 분들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구요.
▲ 포카라와 페와 호수사랑곳에서 본 모습 ⓒ 신한범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가이드와 포터를 섭외하고 트레킹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입한 후 안나푸르나 라운딩, 좀솜 트레킹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ABC(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로 떠나갑니다. 트레킹이 끝나면 다시 이곳으로 회귀하여 휴식과 액티비티로 트레킹을 마무리합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보름간 함께 고생한 가이드 '도르지'와 포터 '치링'과 작별하였습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사히 트레킹을 끝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보름 동안 넉넉한 마음과 배려로 일관하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제가 입고 있던 바람막이 재킷과 장갑을 선물하였습니다.
▲ '도르지'와 '치링'배려심이 강한 가이드와 포터 ⓒ 신한범
'도르지'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것이, '치링'은 산업연수생으로 우리나라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네팔의 주요 수입원은 원조, 용병(해외 노동자 포함) 그리고 관광이라고 합니다.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네팔에서 두 젊은이의 선택은 최선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꿈이 실현되기를 기원해봅니다.
▲ 낮술포카라의 한국 음식점 ⓒ 신한범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김치찌개와 소주를 주문하였습니다. 음식을 먹고 있으니 산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을 두고 먼저 떠난 것이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그들도 지금 고레파니(2800m)에서 저를 생각하고 있을까요? 히말라야에서는 자신의 선택대로 행동하는 것이기에 현재 자기가 있는 곳이 최선의 선택이라 자위해봅니다.
20여일 만에 집에 전화
이른 저녁을 끝내고 집에 처음으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20여 일 만입니다. 애틋한 마음과는 달리 마음에 있는 말이 표현되지 않습니다. 한참을 더듬대다 상투적인 안부만 주고받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부부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집사람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저녁 무렵 페와 호수를 걸었습니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호수 위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호수에 잔물결이 일자 호수와 안나푸르나가 흔들리며 제 마음속에 각인됩니다. 보름간을 걸어 안나푸르나 산군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저와 인연을 맺은 산이기에 더 정감이 갑니다.
▲ 페와 호수석양의 페와 호수 모습 ⓒ 신한범
포카라에서 다섯 밤을 보낼 것입니다. 눈만 뜨면 매일 걷었던 생활이 까마득한 옛날같이 느껴집니다. 아침을 깨우는 당나귀의 워낭소리도,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도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힘들면 경치 좋은 호숫가에서 쉬면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편안한 곳이 '포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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