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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다시 한 번 보십시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제1, 2차 회의록 중 NLL 관련 발언 분석

등록|2013.06.28 15:02 수정|2013.06.28 15:06
2007년 10월 3일,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모두 합해 246분간의 정상회담 시간을 갖는다. 회담은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각각 131분과 115분 동안 진행된다. 이 글은, 두 정상 간의 회의록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NLL 관련 대목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구조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이는 것이 목적이다. 먼저 두 차례 회의록의 NLL 관련 대목을 아래 (1~5)로 제시한다.

(1) NLL 문제 의제로 넣어라. 넣어서 타협해야 될 것 아니냐.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차 회의록)

(2)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큰 틀의 뭔가 우리가 지혜를 한번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1차 회의록)

(3) 남측의 요구라기보다는, 나는 그 부분이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남아있는 마지막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에 뭔가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거든요. 여기는 자유통항구역이고, 여기는 공동어로구역이고, 그럼 거기에는 군대를 못 들어가게 하고. 양측이 경찰이 관리를 하는 평화지대를 하나 만드는, 그런 개념들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지요. (1차 회의록)

(4)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나는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장관급 회담을 여느냐 안 여느냐 했을 때, 장성급회담을 열어서 서해평화문제 얘기 진전이 안 되면 우리는 장관급회담도 안할란다 이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 서해에서 1차적으로 상호 교신하고 상호 알려주고 했는데, 이행은 좀 잘 안 되고 있지만, 문제는 인제 북측에서 NLL이란 본질적인 문제를 장성급회담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제로 다뤄라 지시를 했는데… 반대를 합니다. 우선 회담에 나갈 장소부터 만들어야죠. 단호하게 다뤄라 했는데 그 뒤에 그러한 기회가 무시되고 말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큰 그림을 하나 그려놓고, 어로협력 공동으로 하고 한강하구 공동개발하고, 또 자유로운 동산. 특히 인제 대충 지역이 개발이 되면 해주를 비켜서라도 개성공단 연장선상에서 계획이 서고. 되면 그 길을 위한 통로, 통로를 좁게 만들게 아니라 전체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쌍방의 경찰들만이 관리하자는 겁니다. (2차 회의록)

(5) 평화지대를 선포, 선언한다 그러고 해주까지 포함되고 서해까지 포함된 육지는 제외하고, 육지는 내놓고, 이렇게 하게되면 이건 우리 구상이고 어디까지나, 이걸 해당 관계부처들에서 연구하고 협상하기로 한다. (2차 회의록)

(6)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 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 동안에 NLL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 (2차 회의록)

(1~3)은 2007년 10월 3일 오전 9시 34분부터 131분에 걸쳐 진행된 남북정상회담 1차 회의 회의록에 실려 있다.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1)은 노 대통령이 남북의 평화를 위해서는 서해 군사분계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취지로 내놓은 발언이다. 새누리당이나 보수 언론은 여기에서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이라는 대목에만 눈길을 주며 핏대를 세우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NLL이)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NLL이 갖는 현실적인 위상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2)와 같은 발언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2)는 (1)에서 계속 길게 이어지는 노 대통령의 연속 대화 중에 있다. 이 발언의 취지는 아주 명백하다. NLL과 관련된 기존의 기본 합의는 그대로 따르면서, 서해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그것에 관해 추가적으로 협의를 하자는 게 바로 그것이다. NLL과 관련된 기본 합의가 무엇인가. 그것을 '영토선'으로 보든 '경계선'으로 보든 NLL이 그리는 기존 지도를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아주 단호한 태도다.

그런데도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이 대화의 시작 부분에 있는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는 대목에만 집착한다. 과연 그럴까.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잘 살펴보면, 이 발언은 일종의 배경 설명에 해당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곧 남쪽에서는 NLL을 영토(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NLL을 재획정하자느니 서로 포기하자느니 하는 식의 북쪽 요구를 우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에 해당하는 것이다. (2)에 있는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나 "그것 옛날 기본합의에(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와 같은 발언이 바로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2)의 발언 이후 노 대통령은 6자 회담 재개나 개성 공단을 중심으로 한 경제 협력의 실질적인 진전, 이를 위한 철도, 도로 등의 기간 시설 확충 등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김 국방위원장과 짤막짤막한 대화를 계속 나눈다. 그런데 낮 12시를 약 15분여 남겨 둔 시점에 김 위원장이 조금 쉰 후 이야기하자고 말한다(1차 회의록 전문을 보면 실제 회담 종료 시각이 11시 45분으로 되어 있으므로, 김 위원장의 발언은 11시 40분에서 45분 사이쯤에나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지금 15분 쉬면 12신데" 하며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의사를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그래도 김 위원장이 오후 회담으로 미루자는 눈치를 보이자 "서해 문제는 깊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며 다시 NLL 의제를 꺼낸다. 이에 김 위원장은 "'서해 문제도 군사회담에서 꼭 상정되고 긍정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남측의 서해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노 대통령에게 던진다. 드디어 노 대통령의 대화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3)은 그런 김 위원장의 질문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답변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김 위원장은 휴식을 핑계로 회담을 오후로 미루고 싶어했다. 남한과 일본 기자들의 행태를 꼬집는 발언 등을 하면서 계속 딴청을 피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결국 노 대통령은 서해 문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을 보면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들과 같은 부정적인 표현이 있다. 언뜻 생각하면 노 대통령이 NLL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 내용을 보면, 우리가 NLL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2)의 연장선에서 NLL을 원래 구획대로 놔 둔 채 서해 평화지대나 인천, 해주까지를 하나로 묶은 공동경제구역을 만들어서 활용하자는 것이 핵심 취지다.

이런 분석은 오후에 이어진 정상회담을 통해 좀 더 분명하게 확인된다. 노 대통령은 오후 회담 일정이 시작되자마자 대미 관계나 대북 투자 관련 현안 등을 숨가쁘게 뱉어낸 후 예의 NLL 문제를 다시 꺼내든다. (4)가 바로 그 부분이다. (4)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발언은 중간쯤의 "NLL은 바꿔야 합니다"이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서는 이 대목을 놓고 NLL을 포기했느니 어쨌느니 하며 격렬한 반응을 내보였다.

하지만 바로 뒤이은 대화를 보면 그런 반응이 결코 바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 대통령이 "바꿔야 합니다"를 통해 의도했던 것은, NLL의 재획정이나 포기 등이 아니라 NLL의 '서해평화협력지대화'라고 부를 만한 것일 뿐이다. (4) 이후에 노 대통령이 그런 서해평화협력지대의 청사진과 그것이 가져올 효과를 길고 세세하게 설명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처음에 김 위원장은 양측이 NLL을 먼저 포기한 후에 평화협정을 맺는 순서로 진행하자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아주 강하게 평화협력지대에 대한 협의를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한다("그것-평화협력체제, 또는 평화협력지대-이 기존의 모든 경계선이라든지 질서를 우선하는 것으로 그렇게 한번 정리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결국 두 정상은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축과 관련한 의견을 공유하게 된다. 연이어 나오는, 김 위원장의 발언 (5)와 노 대통령의 발언 (6)이 이를 잘 보여준다.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NLL 포기' 요구를 비껴가면서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축을 위한 정상 회담의 목표를 이루게 된 것이다.

(NLL 중심의) 서해평화협력지대니 (개성, 해주까지를 포함한) 공동경제구역이니 하는 것들은, 남북이 서해에 평화적인 경제 협력 지대를 만들어 상호 교류 협력을 확대하면 좋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 구상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 자신이 정상회담에서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라고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으로 노 대통령은 NLL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하기 위해 NLL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을, 때로는 짧고 단정적인 언어로, 또 때로는 자극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에 평화 지대를 구축하겠다는 자신의 정상회담 구상을 실현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 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개최하기로 하였다. (2007년 '10·4 선언'에서)

10·4 선언의 3항에 있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이나 보수 언론이 이끄는 'NLL 포기' 논란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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