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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의 적', 삼성역 계단을 아십니까

유모차 이용자 보행권 가로막는 삼성역-코엑스 계단

등록|2013.06.29 17:56 수정|2013.06.29 18:25

▲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지하철2호선 삼성역에서 코엑스몰로 가는 연결통로에서 한 부부가 자녀를 태운 유모차를 앞과 뒤에서 들어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 이기태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코엑스와 삼성역을 잇는 계단. 임신 5개월 선정란(38)씨는 빈 유모차를 든 채 힘겹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은 총 12칸. 다행히 선씨의 네 살배기 아들이 유모차에 내려 걸어갔지만 선씨의 이마엔 금세 구슬땀이 맺혔다.

선씨는 코엑스를 찾을 때마다 매번 이 고역을 치른다. 지하철 삼성역에서 내려 코엑스로 가는 사람이라면 5·6번 출구 쪽 계단을 반드시 거쳐야만 하기 때문.

"정말 불편하다"는 선씨는 "아까 역에서 코엑스로 올라갈 때는 아이가 유모차에서 자고 있어 임신 중인데도 직접 유모차를 들고 올라갔다"며 "어느 누구에게 유모차를 들자고 부탁하기도 그렇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유모차를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기 힘들어 7·8번 출구 쪽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코엑스에 가려고도 해봤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음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등 거리도 멀고 불편해 할 수 없이 계단을 이용하고 있다.

선씨는 "이 계단이 아니면, 7·8번 출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한참을 돌아 나가라는 건데 비라도 오면 어떡하느냐"며 "코엑스에서 박람회가 열릴 때는 사람도 많은데 올 때마다 불편하다, 경사로만 설치해주면 다니기 너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코엑스 건물로 들어가는 길목, 삼성역 5·6번 출구 쪽에 설치된 계단이 유모차를 이용하는 엄마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코엑스는 베이비페어·서울국제유아교육전 등 큼지막한 육아박람회가 진행됨은 물론, 아쿠아리움·코엑스몰·극장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많은 엄마들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경사로 하나 없이 계단으로 돼 있는 삼성역-코엑스를 잇는 길목은 엄마들 사이에서 '마의 구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혼자 유모차 끌고 왔다면 힘들 것... 달라진 게 없다"

지난 27일 기자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봤더니,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계단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남편이나 동행인이 있는 경우에는 남자 쪽이 혼자 유모차를 들어 올리거나 둘이서 함께 들었지만 혼자 외출 나온 엄마들은 대부분 잠시 망설이다 혼자서 힘겹게 유모차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는 디럭스 유모차를 사용하는 엄마들은 혼자서 유모차를 들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쿠아리움에 가기 위해 신촌에서 지하철을 타고 코엑스를 찾은 김영주(36)씨는 "오늘은 다행히 애기 아빠랑 와서 같이 유모차를 들어 올렸다, 이쪽으로 올 일이 있으면 (아이 없이) 혼자 온다"며 "올 때마다 엄마들이 불만인데도 달라진 게 없다, 지금 우리 아이가 4살인데 임신했을 때도 그랬으니 꽤 오래됐다"고 전했다.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외출 나온 강진숙(28)씨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오는 곳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저쪽에는 계단만 있더라"며 "혼자 유모차를 끌고 왔다고 생각하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코엑스에서는 보통 1년에 네 차례씩 육아박람회와 유아교육박람회가 열리는데, 매 박람회마다 10만 명 이상의 임신부와 육아맘이 참가한다. 올해 8월에도 육아박람회와 유아교육박람회가 1주 간격으로 차례차례 열릴 예정이다.

박람회 주최 측은 박람회 때마다 엄마들의 민원이 쇄도해서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직접 나서 서울메트로 측에 경사로 설치 등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곤란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박람회 주최 측은 자구책으로 박람회 기간에는 계단 쪽에 유모차를 운반하는 인력을 배치해 엄마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고 있다.

"안전문제, 가장 염려돼"... 삼성역도 '곤란'

▲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지하철2호선 삼성역에서 코엑스몰로 가는 연결통로 계단 앞 풍경이다. 경기도 구리에서 온 엄마가 계단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친구와 함께 유모차를 들어올리고 있다. 오른쪽에는 한 청년이 멈칫거리고 있다. ⓒ 이기태


코엑스에서 지난 10년간 베이비페어를 개최해온 베이비페어 관계자는 "10년 째 늘 고민했던 문제"라면서 "서울메트로에 몇 차례 민원도 넣고 했지만 공사 계획도 없고 공사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행사 기간에는 계단에 2인 1조의 진행요원 10명을 투입시켜 유모차를 들어 올리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같은 여름에는 30분만 유모차를 옮겨도 온몸이 땀으로 젖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베이비페어에는 하루 평균 2만5000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관람객 모두가 지하철을 이용하진 않지만 많은 엄마들이 삼성역-코엑스 구간을 이용하는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이 하루 빨리 나와줬으면 하는 게 박람회 주최 측의 바람이다.

베이비페어 관계자는 "인력으로 한다는 건 굉장히 저차원적인 해결 방법"이라며 "가장 염려되는 건 안전 문제다, 우리가 유모차를 들어 운반하다 안전사고가 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항상 조심해서 하라고 진행요원에게 당부하지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엄마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만큼 경사로 설치 공사라도 시급하게 해결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민원을 받고 있는 쪽은 삼성역이다. 삼성역 측은 평상시 불편을 호소하는 고객들을 위해 요청이 있을 경우 계단 위까지 유모차를 들어주고 있다. 삼성역사 관계자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상황"이라며 "직원이 하루 4명만 근무하는데 유모차를 옮기는 일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장애인·노약자에게도 불편한 삼성역 5·6번 출구

삼성역 5·6번 출구 계단은 엄마들뿐만 아니라 장애인·노약자 등에게도 불편한 곳으로 꼽힌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돼 있는데, 이 휠체어리프트는 고장이 잦고 느려 장애인들이 기피하는 시설이다.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계단이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서울메트로 측은 구조상 문제·예산 문제 등으로 경사로 설치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기존 계단에서 경사로를 설치하려면 관련법에서 규정하는 최소 12분의 1 경사가 확보돼야 하고 30m 이상의 경사로가 설치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천장이 내려와 있는 구조라 경사로를 설치하면 (두 곳이) 맞물려 버려서 사람이 기어갈 정도의 높이로밖에 확보되지 않는다, 천장 자체가 도로와 닿게 돼 있고 도로 노면과 몇 미터 안 되기 때문에 천장을 올릴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메트로는 궁여지책으로 문제의 계단 옆쪽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예산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이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계단의 높이만큼 간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 또한 10억 원 이상 소요되는 공사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서울메트로 측의 입장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공식 방안은 아니지만 코엑스에서 지하철로 내려오는 계단 위쪽 벽면을 뚫어서 경사로를 설치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안쪽에는 케이블·단말기·배전기 등이 있어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또한 굴착공사를 포함해 18~20억 원 가까이 든다, 예산이 한정돼 있기에 우선순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체 예산만으로 하기엔 힘든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육아전문지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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