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계약' 오기환, 중국 웃고 울린 한국인 감독
[인터뷰] "정서적 차이 인정하고 소통하니 흥행…한·중 양국에 터닝포인트 될 영화"
▲ 영화<이별계약>의 오기환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영화 <이별계약>을 두고 오기환 감독은 "한국 감독이 중국에 보낸 러브레터"라고 표현했다. 한·중 합작 영화로서 뛰어난 한국 스태프와 중화권 출신 배우, 그리고 한·중 자금이 함께 모였다는 게 다가 아니었다. 마음을 두드리고 그만큼 중국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 한 감독의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이 통했던 걸까. <이별계약>은 중국 개봉 직후 단 이틀 만에 제작비 전액(약 3000만 위안, 한화 54억 원)을 회수했다. 이후 상승선을 그리며 울고 웃기다가 한화 350억 원을 넘는 수익을 올렸다. 이는 한·중 합작 영화 사상 최고의 기록이었다.
영화의 성공은 오기환 감독에게도 큰 선물이 됐다. 한국에서 그간 <선물> <작업의 정석> 등으로 특유의 멜로 감성을 전했던 그는 2008년 이후 소식이 뜸했다. 작업 면에서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있었던 오기환 감독은 영화 공부에 박차를 가하던 상황에 <이별계약>을 만났다. 2011년 10월 무렵, 그의 영화 인생의 전환점이 온 셈이었다.
"<이별계약>은 리셋과 리스타트였다"
"제 나름대로는 좋은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도 힘을 못 쓰는 상황이었는데 <이별계약>이 흥행했다는 건 정말 좋은 결과죠. 저뿐만이 아니라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그럴 거예요. 다시 공부를 하며 다듬는 상황에서 온 기회였고,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도전한다고 하니 제겐 리셋(reset)의 순간이기도 했죠."
이미 나왔던 시나리오를 중국 관객들 감성에 맞게 수정하는 게 관건이었다. 한국식 멜로라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중국 정서에 맞게 상황 설정이나 캐릭터를 고쳐야 그만큼 공감도 받을 수 있을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세 명의 작가를 거쳤어요. 한 사람이 이야기를 구성했고, 또 한 사람이 뼈대를 세웠고, 세 번째에 스토리가 완성된 거죠. 여기까지만 9개월이 결렸습니다. 한국에 비해 짧은 기간이긴 하죠. 그래도 중국 내에선 상당히 의미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각국의 영화 산업마다 발전 단계가 있는데 한국 영화의 과거 모습이 중국의 요즘이더라고요. 20년 전 시나리오 없이 캐스팅하던 시절이 우리나라에 있었잖아요. 중국 내에서도 나름 독특한 산업 환경이 있더라고요.
이걸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중국 내부에선 나름 합리적인 시스템이었어요. 잘못 지적했다가는 시비를 건다고 느낄 수 있으니 그 부분을 조심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이란 건 결국 자기가 아닌 타자를 인정하는 거잖아요. 한국과 중국이 다 같이 맞다며 합의하는 부분이 진짜 맞는 겁니다. 글로벌 프로젝트인데 굳이 한국적인 게 필요할까요? 더 큰 세상에 나가려면 각 문화권 정서를 잘 봐야한다는 걸 느낀 거예요."
▲ 영화<이별계약>의 오기환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 이정민
시나리오 수정과 캐스팅은 이렇게 진행했다
다시 정서적인 차이로 돌아가 보자. 구체적으로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을 수정했을까. 오기환 감독은 정서적 면에 있어서 한국과 중국이 결정적으로 다른 몇 가지를 예로 들었다. 연인끼리 싸우면 한국에선 주로 여자가 울지만 중국에선 남자가 운단다. 또한 결혼해서도 중국에선 신부 쪽 힘이 강하기에 고부갈등이 없다고 한다. 장례를 치르기 직전에도 한국은 본인 스스로가 미리 정리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중국은 사망하고 나서 그 사람의 존재를 깨닫게 한다는 점도 크게 다른 부분이었다.
시나리오가 잡히니 나머지 부분은 나름 수월했다. 펑위옌과 바이바이허라는 배우 조합도 오기환 감독이 생각했던 최상이었다. 중화권에서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스타였고, 연기력 또한 상당 수준인 배우였다.
"다만 제가 중국어 공부를 더 했으면 어땠을지 아쉬움은 있어요. 언어가 잘 통했다면 더욱 창조적인 방안들을 마련했을 텐데 말이죠. 배우들 역시 기본적으론 다 잘생기고 예쁘잖아요. 개인적으론 배우의 인간적 배경, 성취도와 개성을 봅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사생활이 나쁘다면 관객들은 금방 알아요. 공감을 못 하죠.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바이바이허의 남편, 아이, 가족들도 다 봤어요. 사생활 면에서도 매력이 있는 배우였죠. 배우를 안 하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개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 사람들이 또 더욱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점은 예상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마음을 열고 기본적인 준비를 성실히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장벽도 사라졌다. 오기환 감독은 촬영 당시 중국 스태프가 한국말을 모르는 데도 이런저런 지시를 알아듣고 움직였던 사연을 소개했다. 그만큼 긴밀하게 서로 소통했다는 뜻일 거다.
▲ 영화<이별계약>의 오기환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시야를 넓혀 세계로 나가고 싶다"
<이별계약>의 중국 흥행은 오기환 감독의 도전 욕구를 회복시키기도 했다. 오기환 감독은 "중국 대륙을 넘어 제 3, 제 4의 국가와도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협업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전했다.
"영화라는 게 창조적인 작업이기에 그 정서에 맞는 무언가가 떠오르는 순간이 중요해요. 정서 탑재 시간이 좀 걸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죠. 상대방을 이해하는 단계가 가장 힘듭니다. 사랑할 때도 그 여자를 이해해야 이뤄지잖아요. 첫인상을 받고 심장이 열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관객들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한비야 작가의 책처럼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왜 영화인 중엔 그런 생각 못했을까요.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를 무대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유가 뭘까요. 왜 우린 한국에만 갇혔을까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스페인에서 영화할 생각을 왜 안 했을까요.
그래서 <이별계약>의 한국 성공은 제겐 큰 의미가 없어요. 이건 중국식 멜로 영홥니다. 다만 한국과 중국의 정서적인 각도가 얼마나 벌어져 있나 그걸 파악하는 게 의미가 있어요. 이 영화로 엄청난 성공을 하자는 욕심은 없습니다. '때가 좀 덜 묻은 아날로그식 감정이 있는 관객 분은 한국에 얼마나 될까' 여기에 개인적 궁금증이 커요. 할리우드 영화 일색인 요즘 극장에서 신선한 작품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영화<이별계약>의 오기환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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