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겉그림〈맨땅에 펀드〉 ⓒ 반비
물론 그 같은 거래는 주로 큰 농장에서 한다. 시골 마을 사람들 모두가 뛰어드는 게 아니라 거대 개인 농장에서 주로 직거래를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사서 농산물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권산의 <맨땅에 펀드>는 대농장이 아니라 소작농들을 상대로 직거래시장을 개척한 예라 할 수 있다. 보통 '펀드' 하면 돈을 매개로 하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농산물 펀드에 관한 것이다. 1주당 30만 원으로 책정한 투자자 100명을 모집하고, 그걸 밑천으로 땅을 빌리고 파종을 해서 가을철에 수확하여 나눠주는 것이다. '감자'와 '콩'과 '감' 등이 그렇다.
어떤가? 기가 막힌 펀드 상품 아닌가? 물론 그가 임대한 땅의 평수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른 배당품들은 모두 시골 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것을 사서 나눈다. 이른바 4월에 배당한 '산마늘 잎'과 '두릅', 5월에 배당한 '산마늘 짱아찌'와 '건표고'와 '인큐오이', 그리고 7월에 배당한 '꿀'과 '매실효소'와 '감자'등이 그렇다.
"정직하고 착한 농부들은 온라인에서조차 소비자들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습니다. 오직 싼 가격에는 농산물을 생산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작은 꿈을 실현해서 거대하고 힘 있는 것들과의 싸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맨땅에 펀드'는 일회성을 염두에 둔 펀드가 아닙니다. 우리는 생산 농지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고 펀드 가입자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39쪽)
이른바 맨땅에 펀드 투자 설명서에 나온 내용이다. 권산은 단순한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그런 펀드를 만들고자 한 게 아니었다. 그는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작은 마을과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이른바 정치와 자본에 강제당하지 않는 시골 소작농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은 생각에서 말이다.
사실 이 책도 '중계방송'을 다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총 다섯 번에 걸친 배당을 하기까지, 첫 파종은 언제 했는지, 인부들은 몇 명을 동원했는지, 그들과 어떻게 일을 했으며, 그들에 대한 수고비는 어떻게 지불했는지 등, 그 모든 일들에 대한 보고서 격이라 할 수 있다. 그것들을 한 해 동한 방송한 걸 한 권으로 엮은 게 이 책이 된 것이다.
나: 내년에는 저희가 쩌기, 고추 숭그논 데다가 밭을 좀 드릴게요. 엄니는 그냥 거기에 텃밭 하세요.
대평댁: 하이고 그래도 되끄나. 글케만 해준다면 영판 좋제. 하이고 고맙네. 자네 이 밭을 몇 년이나 할랑가? 오래 하믄 안 된가?
나: 아주 오래 하기는 힘들구요. 한 3년은 하겠지요.
대평댁: 3년? 더 하믄 안되남.
이 책 167쪽에 나온 권산과 그 동네 대평댁 아주머니의 대화다. 76세에 달한 그 할머니는 '맨땅에 펀드'의 든든한 펀드매니저, 곧 인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분은 집을 제외하면 농사지을 땅이 한 평도 없으니 공공근로와 노인일자리로 생계를 꾸려나간다고 한다. 그런 그분에게 풀 작업 비용으로 20만 원을 지불했고, 또 내년엔 텃밭까지 쓰라고 하니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다.
그런 펀드매니저들, 곧 인부들은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마을에 대평댁 외에도 지정댁, 대구댁, 갑동댁이 있다. 다들 60세를 훌쩍 넘기신 분들이다. 그 밖에도 감 농업의 달인으로 꼽히는 펀드지도위원 김종옥씨와 서순덕씨, 또 친환경 농사의 대표주자인 펀드 지도위원 홍순영씨도 그 둘레에 살고 있다. 그 동네 분들이 실은 '팬땅에 펀드'의 실제 운용자들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시골밭에서 일하고 있는 울 어머니를 도와 준 적이 있다. 신안군 지도읍 서낭구지에 있는 밭이었는데, 400평에 달하는 그 밭에서 한 망에 20kg하는 양파가 960망이 나왔다. 작년에 비하면 조금 떨어진 수확량이라고 하는데, 울 어머니는 그로서도 만족하는 듯싶었다. 왜냐하면 올해는 한 망에 1만 6천 원 정도 한다는 것 때문에 말이다.
이 책을 보고 느낀 게 있다면 그것이다. 그런 양파까지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투자자로 모집하여 펀드와 연결시킨다면 그로서도 좋은 일이지 않을까 한 생각 말이다. 물론 그런 일을 하려면 이 책을 쓴 지은이처럼 누군가 책임을 지고 모든 것들을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건 우리 시골엔 그런 젊은 사람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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