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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 대사관 도청당해도 한국은 '방중성과' 홍보만

NSA 38개국 주미 대사관 도청... 외교부 "폭로성 기사라"

등록|2013.07.02 10:55 수정|2013.07.12 14:02
미 국가안보국(NSA)이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 건물과 한국과 일본 등 38개 주미 대사관을 전방위적으로 도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유럽연합이 발칵 뒤집혔다.

지난 6월 30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독일 일간지 <슈피겔>은 전직 CIA 요원이자, NSA 외주업체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입수한 기밀문건을 근거로 미국 정보기관의 조직적인 사찰 행위를 추가로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NSA는 전 세계 38개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과 대표부를 '표적'으로 삼아 스파이 활동을 했다. 적성국인 중동 국가들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그리스, 한국, 멕시코, 인도, 터키 등 동맹국도 표적에 포함됐다. 그동안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정보수집의 명분으로 내세워 온 것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NSA는 또한 미국 워싱턴 소재 EU 사무실, 뉴욕 UN본부 주재 EU 대표부 사무실은 물론이고 브뤼셀에 있는 EU 본부에도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전산망을 해킹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유럽연합 '분노'... EU-미국 FTA 협상 '빨간불'

유럽연합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마르틴 슐츠 EU 집행위원회 회장은 NSA를 옛 소련의 첩보 기관인 KGB에 비유하면서 미국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미국이 그들의 가장 중요하고 가까운 동맹국에게 이전에 KGB가 (그들의 적대국에게) 사용한 것과 유사한 방법을 썼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유럽국가들과 유럽기관들 대표들이 마치 적으로 취급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관계인가."

당장 다음주 월요일(8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범대서양투자동반자협정(TTIP) 협상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TTIP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이다.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스파이 행위가 중단됐다는 보장이 있기 전까지는 미국과 어떠한 협상도 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출신 유럽의회 의원 프렌치 그린은 올랑드에게 스노든의 프랑스 망명을 허용할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독일 집권당인 기독민주당 소속 엘마르 브로크 유럽의회 외교위원회 위원장 역시 "우리의 협상 입장이 사전에 도청됐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어떻게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협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고, 오스트리아 출신 한네스 스보보다 유럽의회 사회당 그룹 의장은 "만약 파트너가 스파이 활동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면서 "여기에는 TTIP 협상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NSA 사찰의 주요 대상으로 지목된 독일은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대변인인 슈테펜 자이베르트는 "우리는 더 이상 냉전체제에 있지 않다"면서 "EU의 외교 대표기구들과 개별 국가들을 도청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가디언>은 개인정보에 민감한 독일에서 메르켈 총리가 9월 총선을 앞두고 시험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독일 연방검찰은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인 NSA와 GCHQ에 대한 기소도 검토하고 있다. 연방검찰은 프리즘, 템포라와 같은 감시 프로그램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어디까지인지, 이들 정보기관이 전화와 인터넷 사용 정보를 가로챈 것이 독일 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유럽연합 감시에 대해 "사실이라면, 역겨운 일"이라고 표현했던 룩셈부르크 외교장관 장 아셀보른은 "미국은 테러리즘과 싸운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면서 "EU와 동맹국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일본 "사실 확인 요구"... 한국, 공식반응 없어

▲ 박근혜 대통령이 6월 29일 오전 베이징 칭화대에서 '새로운 20년을 여는 한중 신뢰의 여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청와대


아시아에서 '표적'으로 지목된 일본 정부는 "미국에 사실 확인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오시히데 관방장관은 1일 오전 정례회견에서 "그런 보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면서 "외교 루트로 진위 확인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 정부는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다. 1일 사찰 대상으로 언급된 국가들이 미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는 동안, 청와대와 외교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성과를 홍보하느라 분주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일종의 폭로성 기사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면서 "사실관계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미 대사관은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가디언>의 보도는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라 폭로에 의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외교 당국이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우리 대사관이 지목됐다고 해도 공식 반응이 나올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디언>의 기사를 단순한 '폭로성 기사'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스노든의 폭로는 NSA의 기밀문서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에서는 스노든발 보도에 대해 '팩트' 자체를 부인하기 보다는 "국가안보를 위해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정보 수집을 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를 순방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1일 탄자니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정보기관은 각국 정보기관들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우리만이 아니라 모든 유럽 정보기관, 아시아 정보기관 등 정보기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건 그들은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세계 각 수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위해 노력한다"며 NSA의 활동을 정당화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 역시 NSA의 활동이 "특별한(Unusal)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와 주미대사관의 반응에 대해 일부 트위터 사용자들은 "주권포기냐", "미국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라며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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