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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형 텃밭이 된 쓰레기장... 이걸 외국인이?

한국 와서 농사짓는 유별난 외국인 모임 '서울 시티 파머스'

등록|2013.07.02 17:28 수정|2013.07.02 17:28
저스틴을 처음 만난 것은 신록이 짙어가던 5월 초, 한 옥상 텃밭 파티에서였다. 한국인 룸메이트 영훈과 함께 온 저스틴과 나는 금세 친해졌다. 밝고 유쾌한 인상, 격식 없는 대화와 유머.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7년째 살고 있는 그는 한국어도 꽤나 유창했다. 한국을 무척 사랑하고, 평생 살고 싶다고 했다. 1982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서른 두 살인 저스틴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도시 농업이었다.

우리나라에 온 많은 외국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저스틴도 처음에는 영어 교사 일자리를 구해 한국에 왔다. 밝고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았다. 힘든 노력을 들이지 않고 생활에 필요한 돈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꿈꾸던 삶이 아니었다. 성북구에 있는 한 영어 학원에서 교사로 4년, 교사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로 2년 반을 일한 그는 최근에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얼마 전 시작한 다른 활동에 삶을 걸어보기 위해서였다.

올해 저스틴이 설립한 '서울 시티 파머스(Seoul City Farmers)'.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농업 동아리이다. 갓 시작한 그룹이다 보니 아직 회원 수는 30명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임에 나오는 회원들의 출석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보통 1~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모임 참석자 수가 10명을 넘길 때가 많다고. 사람들이 그동안 이런 활동에 목말라 있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외국인 모임은 주로 먹고 마시는 사교 모임이나 댄스, 스포츠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그룹 모임에 한 번 와 볼래요?"

글을 쓴다고 했더니 저스틴은 내가 하는 일에 호기심을 보였다. 초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머나먼 외국 땅까지 와서 농사를 짓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서울 사는 외국인들의 농사 동아리

쨍쨍한 초여름이 막 시작되는 6월 초의 어느 일요일. 남산 자락에 있는 그들의 공동 텃밭을 방문했다. 이른바 '커뮤니티 가든 워크데이(Community Garden Workday)'였다. 서울 시티 파머스 회원들은 1~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여서 텃밭을 돌본다고 했다.

외국인 주민이 많은 동네인 해방촌 언덕을 따라 올라가자 이내 산으로 통하는 오솔길이 나왔다. 텃밭은 바로 그 위에 있었다. 30평쯤 될까. 얼마 전 뿌린 온갖 채소의 싹들이 한창 올라오는 중이었다. 남산 타워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오솔길 초입에 마침 약수터가 하나 있어서 그 물을 퍼다가 텃밭 농사에 사용하고 있었다.

"원래 이곳은 그냥 버려진 땅이었어요. 주변 주택가에서 갖다 버린 온갖 생활 쓰레기들이 가득했죠.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쓰레기 더미를 치우다 하루가 가곤 했어요."

▲ 남산 자락에 위치한 공동 텃밭에서 일한 뒤 쉬고 있는 서울 시티 파머스 회원들 ⓒ 서울시티파머스


그렇게 방치되었던 공터가 지금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구획을 나누어 갖가지 채소를 심고 통나무를 박아 예쁘장한 통행로까지 만들었다. 시금치, 상추 등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성귀는 물론, 오크라(okra), 카르둔(cardoon) 등 물 건너온 채소까지 수십 종류가 옹기종기 자라고 있었다.

한쪽에는 당귀 같은 약초만 따로 심은 곳도 있었다. 마치 온 세상 채소의 자연 박물관을 보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그토록 다양한 종류의 토마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외국 채소들은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텃밭 가꾸기에 모인 사람들은 열댓 명 가까이 되었다. 대부분 저스틴 또래의 20, 30대 젊은이들이다. 갈색 머리에 하얀 피부가 앳되어 보이는 크리스틴은 영어교사 일자리를 구해 한국에 온 지 겨우 3주째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족과 함께 텃밭(backyard garden)을 가꾸던 즐거운 추억을 간직한 그녀는 한국에서도 텃밭 농사꾼 생활을 계속 이어볼 생각이다. 

"유목민처럼 떠돈 삶이 땅에 대한 애착 갖게 해"

오자마자 나무 뒤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두 팔을 걷어붙인 윌(Will). 다른 이들이 잡담을 하는 동안 제일 먼저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와 묵묵히 밭일을 시작한 그는 한양대학교 생물리학(Biophysics) 교수다. 자그마한 체구에 시종일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띤 윌은 벌써 4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버스에서 노인을 만나면 얼른 자리를 양보하는 그의 모습은 꼭 한국 젊은이를 보는 것만 같다. 언젠가 고향인 미국 미시간에 돌아가 농사를 지을 거라고 했다.

"왜 농사를 짓느냐고요? 글쎄요.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도 태국, 일본 등에서 십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했어요. 유목민처럼 떠돌며 살아서 오히려 땅에 더 애착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농사를 지으면 내가 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이보다 평화로운 순간이 없어요."

윌은 제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눠보고 싶지만,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농사를 기피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그저 높은 학점을 따서 돈을 많이 받는 직장에 취직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더군요. 심지어 농사를 지으면 삶이 퇴보한다고 믿는 것 같아요. 돈을 벌 수 없으니까요. 저는 한국을 좋아하지만, 한국 사회가 오로지 한 가지 목적(물질적 풍요)으로만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슬프기도 해요."

참석자 중 막내는 20대 초반의 한국계 미국인 김용일씨였다. 김씨는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애틀랜타로 이민을 갔다가 지난해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미국 남부의 광활한 땅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레 어릴 적부터 농사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고. 지금은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농부가 되어 살고 싶단다. 서울 시티 파머스에 가입한 것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다.

이날 만난 서울 시티 파머스 회원들은 상당수가 한국에서 꽤 오래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양대 교수인 윌도, 영어 학습지 성우로 일하는 브래드도, 영어 강사 커플인 코너와 타냐도 몇 년째 한국 생활을 하는 중이다. 농사라는 것이 땅과 분리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를 짓다보니 애착이 생긴 것일까, 애착이 생겨서 농사를 짓는 것일까. 

▲ 남산에 있는 서울 시티 파머스의 공동 텃밭 ⓒ 서울시티파머스


한참 밭일을 하다 잠시 그늘 아래서 쉬는 시간. 저스틴이 가방에서 작은 단지 하나를 꺼냈다. 어제 갓 딴 꿀이었다. 요즘 수강 중인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의 양봉 수업에서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꿀이 있을까. 식빵에 발라 먹었는데 혀가 살살 녹는 것만 같다.

꿀 바른 빵을 나누어주는 저스틴의 손등은 벌에 쏘인 상처로 울긋불긋했다. 다들 그의 수고에 감사하며 상처를 걱정하는 말을 한 마디씩 던졌다. 노동이라는 대가 없이 무상으로 꿀을 먹는 것을 미안해 했지만, 꿀을 바른 식빵을 사양하는 사람은 없었다. 맛있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텃밭 아래 동네 해방촌에 사는 브래드는 직접 만든 다크 초콜릿을 밀폐용기에 담아서 들고 왔다. 크랜베리와 견과류를 넣어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요즘에는 고춧가루 같은 다양한 재료를 넣어 '퓨전' 초콜릿 요리를 실험하는 중이라고 했다.

농사가 지닌 귀한 가치, '나눔'을 느낀 시간

나무 그늘은 사람들을 다 덮어줄 정도로 넉넉했다. 점심을 먹었지만 일을 한 다음이라 배가 고팠는지 다들 먹을거리를 반겼다. 그들식의 새참인 셈이었다. 약수터에서 떠온 얼음처럼 차가운 물도 나눠 마셨다. 식빵과 초콜릿을 씹으면서 새삼 드는 생각. 농사가 지닌 또 하나의 귀한 가치는 나눔이라는 것.

"언어 장벽 때문에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마음대로 취미를 갖기가 어려워요. 고작 하는 것이 다른 외국인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는 거죠. 서울 시티 파머스를 통해서 그들이 한국을 좀 더 배우고 한국의 일부가 되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한국어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고…. 농사 커뮤니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거라고 생각해요. 흙을 만지는 것은 보기보다 의미가 큰 일이거든요."

저스틴의 포부는 단지 농사 동아리라는 취미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중심의 '주류 경제'에 맞선 로컬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의 진짜 꿈이다. 시작은 텃밭이지만 양봉, 요리, 비누 만들기 등 회원 중 누구라도 농업과 관련된 다른 것을 더 배우고 싶으면 그에 맞춘 교육 과정을 개설할 생각이다.

그 자신도 이미 지렁이를 이용한 퇴비 만들기 과정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해방촌 한 구석에 자리한 그의 옥탑방 마당, 지렁이가 우글대는 아이 키만 한 퇴비 통은 그의 재산 목록 1호다. 물론 혹시나 점잖은 분들의 오해를 살까봐, 가정 방문은 일단 농사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다고.

웃고 떠들다가 어느새 하루 해가 저물었다. 흙 묻은 손발을 씻고 도구들을 정리한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해방촌 거리에 맛이 끝내주는 모로코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고. 아무렴, 열심히 일한 자들은 먹을 자격이 있다. 미리 잡아둔 약속 때문에 이미 한 무리의 개구쟁이가 된 그들과 해방촌 입구에서 헤어졌다. 다음에는 그놈의 끝내주는 샌드위치를 꼭 같이 먹기로 하고.

국내 거주 외국인 150만 명 시대. 이제 또 하나의 이웃이 된 외국인들. 그들 중에 식당 아줌마도 상사 주재원도 영어 교사도 아닌, 농부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신선하지 않은가. 오늘이라도 당장 베란다 한쪽에 화분을 놓고 상추 포기나마 키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머나먼 땅에 와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식량닷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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