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 매진돼도 적자... 매년 콘서트 여는 이유
5·6일, 우리들의 좋은 벗 '꽃다지'를 만나자
어쩌다 한 번 하는 것도, 큰 이벤트도 아닌, 해마다 여는 무명 밴드의 콘서트를 홍보하려면 어떤 말로 글을 시작해야 할까. '꽃다지'의 연습실이 있는 서울 구로동의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며 내내 고민했다. 어차피 이 콘서트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인 운동권 사람들만 오는 거 아닌가, 글 하나 더 나온다고 꽃다지를 모르는 사람이 갈 리도 만무한데….
그러다 문득 이게 내 편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어느 집회에서 꽃다지의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 생각나서다. 발랄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꽃다지 노래가 생각보다 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운동권 노래패라는 내 인식과 달리,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들을 뮤지션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진심'을 전하기로 했다. 말을 덧대고 부풀리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꽃다지의 노래를 들어보라 권하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꽃다지의 마음을 들려주고 그리고 우리 곁에 꽃다지가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곤조곤 말해보자는 것이다.
예전부터 꽃다지를 잘 알던 이들에게는 추억을, 단순한 뮤지션으로만 아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발견을 선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진심이라는 가장 커다란 유혹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난 6월 30일 꽃다지를 만나 그들의 '진심'을 건네 들었다.
세상 단 한 대 뿐인 차를 얻다
최근 꽃다지에게는 경사가 생겼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난 지 4년 만에 작업복을 입고 다시 만든 프로젝트 자동차. 그 특별한 차를 받은 주인공이 된 것이다. 차의 주인공으로 뽑혔다는 통보를 받고도 멤버들은 믿지 않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2만 개의 부품 값을 후원하고, 해고자들은 이를 조립하고, 예술가들은 멋지게 차를 꾸몄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자동차는 해고자들의 바람을 싣고 곳곳을 누빌 사연을 찾았다. 그 사연에 응모한 꽃다지가 덜컥 이 차를 받게 된 것이다.
"처음 그 차를 받는 사연에 응모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모두 농담처럼 흘렸다. 근데 감독이 지원 자격 네 가지에 우리가 해당 안 되는 거 있느냐며 바로 보여주더라.
▲ 쌍용차 해고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 ▲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 이 자동차를 자랑스럽게 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단체나 개인 ▲ 자동차가 필요하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었던 단체나 개인
딱 우리 얘기였다. 하지만 더 어려운 곳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사연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가수들이 목포로 공연을 가는데, 그 먼 길을 차도 없이 양손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걸 보니 미안하고, 그 뒷모습 보면서 너무 속상하더라. 기획자로서 내가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다 작파하고 지원서를 썼다. 쓰면서도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라도 해야 내가 가진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그걸 쓰면서 해고자들이 이 차를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니까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면서 짠한 마음도 들고 화도 나고, 복잡했다. 4년 만에 다시 철수세미로 기름 때 묻은 손을 닦았다는 얘길 들으면서 눈물밖에 안 나더라." - 민정연(대표 겸 기획자)
원래 꽃다지는 '꽃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차가 있었다. 하지만 몇 해 전 형편이 너무 어려워 팔아야 했다. 그리고 운명 같은 우연. 이 특별한 차를 만나기 위해 몇 년 동안 차 없는 시간을 견뎠는가 보다. 더운 날씨인데 인터뷰도 굳이 시원한 사무실 놔두고 차 옆에서 했다. 꽃다지는 "(차가) 더 어려운 곳에 가는 게 맞다"며 미안한 속내를 드러냈지만, 이 땅 곳곳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자들을 위해 달려가는 그들이야말로 이 차의 제대로 된 임자다.
꽃다지에게 콘서트란
콘서트 얘기를 꺼냈다. 여전히 적자인 형편. 콘서트만 하지 않아도 가수들의 임금을 조금 더 줄 수 있다는데, 그런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1년에 한두 번씩 콘서트를 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관객 입장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지만, 매진이 돼도 적자를 면할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길 들은 뒤부터 콘서트 소식이 들리면 나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3만 원대의 티켓으로는 전석 매진이어도 적자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관객들 사정이 뻔한데 푯값을 올릴 수도 없는 노릇. 예전에는 그나마 노조에서 표를 구매해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단다. 그래도 꼭 콘서트를 해야 하나?
"콘서트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존재의 확인 같은 거다. 현장을 다니다 보면 공간이나 장비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다. 록 음악을 통기타로 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가 있는 이쪽 영역의 음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꽃다지가 민중가요의 한 축에 있는 건 분명하니까.
유명하진 않더라도, 우리가 음악을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 단지 우리들끼리 좋자고 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자존감 같은 거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을 하니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 같다. 다른 가수들도 공연을 시도하고 음악적으로 발전하려는 노력들을 한다. 콘서트를 하면 훨씬 나아진다. 집중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자체 역량이 발전한다." - 정윤경(가수 겸 음악 감독)
"이번에 처음으로 자작곡을 두 곡 발표한다. 감독님 말마따나 지금 꽃다지 가수들이 디바급이 없기 때문에(웃음)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잘 표현하는 노래들을 부르고 싶다. 이번에 발표하는 노래는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공연 다니면서 느꼈던 것들을 써 본 거다. 굉장히 절박한 얘길 하고 있는데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 의무감이나 습관처럼 집회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고, 그 벽에 작은 틈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남이 만든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내가 만든 노래를 하는 건 표현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 홍소영(가수)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꽃다지에 들어와 지금까지 있었다. 한동안 아이를 낳고 쉬면서 무대가 그리웠다. 공연 소식 들으면 나 저거 잘할 수 있는데…. 쉬면서 듣는 노래랑 활동할 때랑은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노래를 하는 사람에게 음악적인 욕심은 누구나 있다. 내 노래 가사에 내 마음을 담고 싶고, 가수니까 말로 감동을 주기보다 노래에 집중해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연습도 많이 했다." - 정혜윤(가수)
노동문화과 문화노동, 그 경계를 살다
꽃다지는 문화노동자인 동시에 노동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존재다. 20년 구력의 베테랑 문화일꾼이지만 '노동문화'라는 게 어떤 것인지, 고유한 노동문화가 있기는 한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집회 현장의 문선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사의 양념 취급할 때 회의가 들기도 한다. 조직 운동의 특정 노선을 따르지 않다 보니 노조나 학생운동의 권력이 바뀌면 자기 정파색에 맞는 가수를 부른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를 음악으로 부른 게 아니었구나, 꽃다지가 아니어도 상관없던 거였구나.'
그래서 더욱 음악 하는 꽃다지가 되려고 한다. 노동문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문화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무엇으로 취급당한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점점 문화 담당자가 줄어든다. 예전에 노동자대회 때는 지역본부별 문화제 겨루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 문화제를 위해 지역의 문화일꾼들과 노동자들이 모여 합동 무대를 연습하고 만나는 과정이 곧 조직이고 운동이었다. 이제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운동의 대중성을 말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조직의 규모를 줄여야 할 때는 제일 먼저 '문화'가 잘린다. 꽃다지의 민정연 대표는 우리 사회에 지금 노동문화로 불릴 만한 건 없다고 말한다.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민중가수라고 부르는 것도 부담스럽다. '음악 하는 꽃다지'가 제일 편하다. 지금 민중가요 진영은 존재의미가 80년대랑 다르다. 그때는 전노협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큰일이었나. <전노협진군가>를 부르면 관객들이 전주까지 다 함께 따라 불렀다. 근데 지금 관객들은 그런 그림을 못 만든다. 이젠 다른 종류의 공감대를 만드는 거다. 용어가 연성화된 것도 분명 있다. 거기에서 놓친 것들, 커진 일상의 비중들, 그런 걸 돌아보는 게 필요한 거다." - 정혜윤·정윤경
"누군가가 우리 노래를 듣고 '내 얘기를 해주는 민중가수다' 하면 그건 영광일 수 있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민중가수라고 호명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 <한결이> 같은 노래는 옛날 같으면 못 올렸을 거다. 민중가요는 집회가요라고 하는 인식.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도 민중가요라고 하면 우리가 지금 어떤 시도를 하는지 상관없이 일단 아래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인식을 깨고 싶기도 하다. 우리 노래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무대에 서면서 팔뚝질하는 노래가 교감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 마음을 울리고 남게 하는 게 무엇이냐 생각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민정연
"이번에 오랜만에 <가자 노동해방>을 무대에 올리려고 연습하다가 결국 중단했다. 우리가 정말 그런 태도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음악적인 모색을 할 때 '맛 갔다, 변절자다' 별소릴 다 들었다. 그런 얘기 다 듣고 버텨준 가수들한테 고맙다. 분명 박수받는 노래들 있다. 더 많이 현장에서 섭외되고 돈도 벌었을 거다. 근데 그렇게 우려먹는 방식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정직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 - 정윤경
민중가수라는 호명이나 투쟁가요 등 격한 구호들은 이른바 '노동문화'의 상징이다. 그런데 꽃다지는 실천할 수 없는 격한 구호나, 민중가수라는 이름을 지양한다. 투쟁 구호가 격하다고 해서 실제 투쟁을 격하게 하는 건 아니다. 결사투쟁을 외치지만 아무도 그럴 마음은 없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말을 뱉어내고 책임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노동문화가 가진 선명성과 투쟁성이 오히려 부작용이 돼 돌아온다.
그래서 꽃다지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번 공연엔 때가 때이니만큼 옛날 노래를 몇 곡 준비했다. 옛날 노래도 부를 수 있을 만큼 됐다 싶을 때 부르자고 생각했고 이제 조금 자신이 붙었기 때문이다. 우려먹는 밴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납득했고, 밖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이런 작은 성장들이 기쁘다.
이 길의 전부
며칠 전 이번 여름 콘서트 홍보물을 올렸더니 누군가 그 아래에 "보면 볼수록 점점 기대되는 꽃다지 콘서트"라고 썼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걸 알아주는구나 싶어 민 대표는 뿌듯했다. 이른바 운동가요 진영에서 콘서트를 꾸준히 하는 팀은 꽃다지가 거의 유일하다.
한 달이면 예닐곱 차례씩 현장을 찾아다니면서도 꾸준히 연습을 하고 콘서트 준비를 했다. 한때 정말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연대하고 음악적으로 한 차원 나아지니까 다시 조금씩 모이기 시작한다. '연대'와 '실력', 이 두 가지는 꽃다지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두 가지 축이다. 그래서 아무리 적자라 해도 콘서트를 포기할 수 없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연대를 놓을 수 없다.
얘기하는 도중 정윤경 감독이 말했다. "아직 꽃다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좋은 것도 있잖아요?" 물론이다. 툭툭 던지듯 내뱉는 특유의 말투. 심드렁하고 무심한 듯 보이는 그는 사실 아주 속정 깊은 사람이다. 작년에 천 일 넘게 노숙투쟁을 벌이던 재능교육 노동자들을 만난 후 만든 <내가 왜>라는 노래에는 그런 그의 속마음이 잘 담겨 있다.
언제나 조용하고 수줍은 여성가수들인 홍소영·정혜윤씨도 마찬가지다. 말수도 적고 노동자들과 잘 어울리진 못해도 이들이 만들고 부르는 노래 속에는 어떤 표현보다 더 강렬한 애정이 담겨 있다.
평생 길바닥의 노동자를 만날 거고, 눈앞의 박수에 휘둘리지 않을 거라 말하는 이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꽃다지는 한결같았다.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고 계신 이 땅의 모든 분들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노동자들은 계속 거리로 내몰리고, 사는 게 힘들고… 꽃다지가 서 있어야 할 곳은 여기입니다" 20여 년 동안 이들이 누구의 옆에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빛바랜 공연 영상에 담긴 저 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꽃다지는 오늘도 길 위에 있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은 결국 그런 좋은 이들을 지켜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이 길 위에서 꽃다지가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언제나 당신에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7월 5·6일, 내민 그 손을 기꺼이 잡아줄 꽃다지의 '사람'들을 기다린다. 만나자, 서울 홍대 롤링홀에서.
그러다 문득 이게 내 편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어느 집회에서 꽃다지의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 생각나서다. 발랄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꽃다지 노래가 생각보다 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운동권 노래패라는 내 인식과 달리,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들을 뮤지션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진심'을 전하기로 했다. 말을 덧대고 부풀리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꽃다지의 노래를 들어보라 권하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꽃다지의 마음을 들려주고 그리고 우리 곁에 꽃다지가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곤조곤 말해보자는 것이다.
예전부터 꽃다지를 잘 알던 이들에게는 추억을, 단순한 뮤지션으로만 아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발견을 선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진심이라는 가장 커다란 유혹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난 6월 30일 꽃다지를 만나 그들의 '진심'을 건네 들었다.
세상 단 한 대 뿐인 차를 얻다
▲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차 주인공은...지난 6월 7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노동자 H-20000 프로젝트 ' 모터쇼에서 민중가요 노래패 '꽃다지'가 자동차 최종 선정자로 뽑힌 가운데, 민정연 대표가 박재동 화백으로부터 자동차 키를 전달받고 있다. ⓒ 유성호
최근 꽃다지에게는 경사가 생겼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난 지 4년 만에 작업복을 입고 다시 만든 프로젝트 자동차. 그 특별한 차를 받은 주인공이 된 것이다. 차의 주인공으로 뽑혔다는 통보를 받고도 멤버들은 믿지 않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2만 개의 부품 값을 후원하고, 해고자들은 이를 조립하고, 예술가들은 멋지게 차를 꾸몄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자동차는 해고자들의 바람을 싣고 곳곳을 누빌 사연을 찾았다. 그 사연에 응모한 꽃다지가 덜컥 이 차를 받게 된 것이다.
"처음 그 차를 받는 사연에 응모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모두 농담처럼 흘렸다. 근데 감독이 지원 자격 네 가지에 우리가 해당 안 되는 거 있느냐며 바로 보여주더라.
▲ 쌍용차 해고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 ▲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 이 자동차를 자랑스럽게 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단체나 개인 ▲ 자동차가 필요하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었던 단체나 개인
딱 우리 얘기였다. 하지만 더 어려운 곳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사연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가수들이 목포로 공연을 가는데, 그 먼 길을 차도 없이 양손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걸 보니 미안하고, 그 뒷모습 보면서 너무 속상하더라. 기획자로서 내가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다 작파하고 지원서를 썼다. 쓰면서도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라도 해야 내가 가진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그걸 쓰면서 해고자들이 이 차를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니까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면서 짠한 마음도 들고 화도 나고, 복잡했다. 4년 만에 다시 철수세미로 기름 때 묻은 손을 닦았다는 얘길 들으면서 눈물밖에 안 나더라." - 민정연(대표 겸 기획자)
원래 꽃다지는 '꽃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차가 있었다. 하지만 몇 해 전 형편이 너무 어려워 팔아야 했다. 그리고 운명 같은 우연. 이 특별한 차를 만나기 위해 몇 년 동안 차 없는 시간을 견뎠는가 보다. 더운 날씨인데 인터뷰도 굳이 시원한 사무실 놔두고 차 옆에서 했다. 꽃다지는 "(차가) 더 어려운 곳에 가는 게 맞다"며 미안한 속내를 드러냈지만, 이 땅 곳곳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자들을 위해 달려가는 그들이야말로 이 차의 제대로 된 임자다.
꽃다지에게 콘서트란
▲ 꽃다지 정윤경씨는 "콘서트를 하면 훨씬 나아진다. 집중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자체 역량이 발전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꽃다지 2012 연말공연 당시 모습. ⓒ 꽃다지 제공
콘서트 얘기를 꺼냈다. 여전히 적자인 형편. 콘서트만 하지 않아도 가수들의 임금을 조금 더 줄 수 있다는데, 그런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1년에 한두 번씩 콘서트를 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관객 입장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지만, 매진이 돼도 적자를 면할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길 들은 뒤부터 콘서트 소식이 들리면 나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3만 원대의 티켓으로는 전석 매진이어도 적자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관객들 사정이 뻔한데 푯값을 올릴 수도 없는 노릇. 예전에는 그나마 노조에서 표를 구매해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단다. 그래도 꼭 콘서트를 해야 하나?
"콘서트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존재의 확인 같은 거다. 현장을 다니다 보면 공간이나 장비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다. 록 음악을 통기타로 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가 있는 이쪽 영역의 음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꽃다지가 민중가요의 한 축에 있는 건 분명하니까.
유명하진 않더라도, 우리가 음악을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 단지 우리들끼리 좋자고 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자존감 같은 거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을 하니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 같다. 다른 가수들도 공연을 시도하고 음악적으로 발전하려는 노력들을 한다. 콘서트를 하면 훨씬 나아진다. 집중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자체 역량이 발전한다." - 정윤경(가수 겸 음악 감독)
"이번에 처음으로 자작곡을 두 곡 발표한다. 감독님 말마따나 지금 꽃다지 가수들이 디바급이 없기 때문에(웃음)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잘 표현하는 노래들을 부르고 싶다. 이번에 발표하는 노래는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공연 다니면서 느꼈던 것들을 써 본 거다. 굉장히 절박한 얘길 하고 있는데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 의무감이나 습관처럼 집회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고, 그 벽에 작은 틈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남이 만든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내가 만든 노래를 하는 건 표현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 홍소영(가수)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꽃다지에 들어와 지금까지 있었다. 한동안 아이를 낳고 쉬면서 무대가 그리웠다. 공연 소식 들으면 나 저거 잘할 수 있는데…. 쉬면서 듣는 노래랑 활동할 때랑은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노래를 하는 사람에게 음악적인 욕심은 누구나 있다. 내 노래 가사에 내 마음을 담고 싶고, 가수니까 말로 감동을 주기보다 노래에 집중해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연습도 많이 했다." - 정혜윤(가수)
노동문화과 문화노동, 그 경계를 살다
▲ "누군가가 우리 노래를 듣고 '내 얘기를 해주는 민중가수다' 하면 그건 영광일 수 있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민중가수라고 호명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반문하는 꽃다지. 사진은 지난해 연말공연 당시 모습. ⓒ 꽃다지 제공
꽃다지는 문화노동자인 동시에 노동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존재다. 20년 구력의 베테랑 문화일꾼이지만 '노동문화'라는 게 어떤 것인지, 고유한 노동문화가 있기는 한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집회 현장의 문선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사의 양념 취급할 때 회의가 들기도 한다. 조직 운동의 특정 노선을 따르지 않다 보니 노조나 학생운동의 권력이 바뀌면 자기 정파색에 맞는 가수를 부른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를 음악으로 부른 게 아니었구나, 꽃다지가 아니어도 상관없던 거였구나.'
그래서 더욱 음악 하는 꽃다지가 되려고 한다. 노동문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문화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무엇으로 취급당한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점점 문화 담당자가 줄어든다. 예전에 노동자대회 때는 지역본부별 문화제 겨루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 문화제를 위해 지역의 문화일꾼들과 노동자들이 모여 합동 무대를 연습하고 만나는 과정이 곧 조직이고 운동이었다. 이제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운동의 대중성을 말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조직의 규모를 줄여야 할 때는 제일 먼저 '문화'가 잘린다. 꽃다지의 민정연 대표는 우리 사회에 지금 노동문화로 불릴 만한 건 없다고 말한다.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민중가수라고 부르는 것도 부담스럽다. '음악 하는 꽃다지'가 제일 편하다. 지금 민중가요 진영은 존재의미가 80년대랑 다르다. 그때는 전노협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큰일이었나. <전노협진군가>를 부르면 관객들이 전주까지 다 함께 따라 불렀다. 근데 지금 관객들은 그런 그림을 못 만든다. 이젠 다른 종류의 공감대를 만드는 거다. 용어가 연성화된 것도 분명 있다. 거기에서 놓친 것들, 커진 일상의 비중들, 그런 걸 돌아보는 게 필요한 거다." - 정혜윤·정윤경
"누군가가 우리 노래를 듣고 '내 얘기를 해주는 민중가수다' 하면 그건 영광일 수 있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민중가수라고 호명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 <한결이> 같은 노래는 옛날 같으면 못 올렸을 거다. 민중가요는 집회가요라고 하는 인식.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도 민중가요라고 하면 우리가 지금 어떤 시도를 하는지 상관없이 일단 아래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인식을 깨고 싶기도 하다. 우리 노래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무대에 서면서 팔뚝질하는 노래가 교감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 마음을 울리고 남게 하는 게 무엇이냐 생각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민정연
"이번에 오랜만에 <가자 노동해방>을 무대에 올리려고 연습하다가 결국 중단했다. 우리가 정말 그런 태도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음악적인 모색을 할 때 '맛 갔다, 변절자다' 별소릴 다 들었다. 그런 얘기 다 듣고 버텨준 가수들한테 고맙다. 분명 박수받는 노래들 있다. 더 많이 현장에서 섭외되고 돈도 벌었을 거다. 근데 그렇게 우려먹는 방식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정직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 - 정윤경
민중가수라는 호명이나 투쟁가요 등 격한 구호들은 이른바 '노동문화'의 상징이다. 그런데 꽃다지는 실천할 수 없는 격한 구호나, 민중가수라는 이름을 지양한다. 투쟁 구호가 격하다고 해서 실제 투쟁을 격하게 하는 건 아니다. 결사투쟁을 외치지만 아무도 그럴 마음은 없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말을 뱉어내고 책임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노동문화가 가진 선명성과 투쟁성이 오히려 부작용이 돼 돌아온다.
그래서 꽃다지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번 공연엔 때가 때이니만큼 옛날 노래를 몇 곡 준비했다. 옛날 노래도 부를 수 있을 만큼 됐다 싶을 때 부르자고 생각했고 이제 조금 자신이 붙었기 때문이다. 우려먹는 밴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납득했고, 밖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이런 작은 성장들이 기쁘다.
이 길의 전부
▲ 꽃다지 콘서트 포스터. ⓒ 꽃다지
며칠 전 이번 여름 콘서트 홍보물을 올렸더니 누군가 그 아래에 "보면 볼수록 점점 기대되는 꽃다지 콘서트"라고 썼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걸 알아주는구나 싶어 민 대표는 뿌듯했다. 이른바 운동가요 진영에서 콘서트를 꾸준히 하는 팀은 꽃다지가 거의 유일하다.
한 달이면 예닐곱 차례씩 현장을 찾아다니면서도 꾸준히 연습을 하고 콘서트 준비를 했다. 한때 정말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연대하고 음악적으로 한 차원 나아지니까 다시 조금씩 모이기 시작한다. '연대'와 '실력', 이 두 가지는 꽃다지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두 가지 축이다. 그래서 아무리 적자라 해도 콘서트를 포기할 수 없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연대를 놓을 수 없다.
얘기하는 도중 정윤경 감독이 말했다. "아직 꽃다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좋은 것도 있잖아요?" 물론이다. 툭툭 던지듯 내뱉는 특유의 말투. 심드렁하고 무심한 듯 보이는 그는 사실 아주 속정 깊은 사람이다. 작년에 천 일 넘게 노숙투쟁을 벌이던 재능교육 노동자들을 만난 후 만든 <내가 왜>라는 노래에는 그런 그의 속마음이 잘 담겨 있다.
언제나 조용하고 수줍은 여성가수들인 홍소영·정혜윤씨도 마찬가지다. 말수도 적고 노동자들과 잘 어울리진 못해도 이들이 만들고 부르는 노래 속에는 어떤 표현보다 더 강렬한 애정이 담겨 있다.
평생 길바닥의 노동자를 만날 거고, 눈앞의 박수에 휘둘리지 않을 거라 말하는 이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꽃다지는 한결같았다.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고 계신 이 땅의 모든 분들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노동자들은 계속 거리로 내몰리고, 사는 게 힘들고… 꽃다지가 서 있어야 할 곳은 여기입니다" 20여 년 동안 이들이 누구의 옆에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빛바랜 공연 영상에 담긴 저 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꽃다지는 오늘도 길 위에 있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은 결국 그런 좋은 이들을 지켜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이 길 위에서 꽃다지가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언제나 당신에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7월 5·6일, 내민 그 손을 기꺼이 잡아줄 꽃다지의 '사람'들을 기다린다. 만나자, 서울 홍대 롤링홀에서.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