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열대 숲 속에 숨겨진 '왕의 정원'
[일본 가는 길 105] 오키나와 나하 시키나엔 기행
나와 아내는 류큐(流球) 왕국의 이름난 정원, 시키나엔(識名園)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차는 나하(那覇) 도심을 벗어나 작은 골목길로 마구 들어갔다. 차는 차 2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류큐 왕국은 현재 오키나와 현의 수도인 나하 외곽의 요새와 같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재로 만든 작은 집 같은 무덤들의 묘지가 길 옆으로 지나갔다. 차가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자 시키나엔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시키나엔은 나하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키나엔이 류큐 왕국의 왕성이었던 슈리성(首里城)에서 가까운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슈리성 답사 후에 시키나엔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오키나와에서 시키나엔을 가장 먼저 답사하기로 했다.
시키나엔 입구에는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려주는 검은 대리석의 세계문화유산 표지석이 자랑스럽게 서 있다. 시키나엔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구수쿠(グスク) 유적 및 류큐왕국(琉球王国) 유적'에 포함되는 곳이다. 일본 본토와는 독립된 문화를 발전시킨 류큐왕조의 역사 유적을 유네스코에서도 세계인이 지켜야 할 유산으로 선정한 것이고, 그 중에서도 이 시키나엔은 대표적인 곳이다.
1799년 류큐(流球) 왕국의 쇼온왕(尙温王) 때 조성된 시키나엔은 왕과 왕족이 휴식을 취하던 별저(別邸)이자 정원이었다. 류큐 왕조는 이 정원에서 중국 등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대접하기도 하였는데, 중국 황제의 사신들 중에는 새로운 류큐 왕을 책봉하던 책봉사도 있었다. 1800년에 쇼온왕을 책봉하기 위해 류큐에 왔던 청나라의 정사 조문해(趙文楷)와 부사 이정원(李鼎元)도 이 아름다운 정원을 방문하였는데 초기의 시키나엔은 주로 외국의 귀빈을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던 시키나엔은 현재 유적의 대부분이 복구되어 오키나와를 알리는 명승지가 되었다.
물빛이 영롱한 '이쿠토쿠센'이라는 샘물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오키나와의 석회암이 깔린 돌길이 예쁘다. 우리는 이 돌길, 이시타타미미치(石畳道)의 운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나와 아내는 예상 외로 시원한 오키나와의 날씨를 즐기며 그 옛날 류큐의 왕이 걸었을 돌길을 한적하게 걸었다.
시키나엔의 중심인 우도웅(御殿, ウドゥン)까지 걸어가는 산책길은 아열대의 풍성한 나무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아내와 내가 신기해 한 것은 아열대 나무들의 왕성한 줄기였다. 줄기 아래로 늘어뜨린 잔가지들이 묘하게도 다시 땅 바닥과 연결되어 있다. 아무래도 머리카락 같은 수많은 잔가지들은 지표면과 붙어서 오키나와에 불어오는 가공할 태풍의 바람을 막는 데에 사용될 것이다.
웬만하면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이용하지 않는 아내가 스마트폰을 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아내에게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든 것은 물빛이 영롱한 이쿠토쿠센(育徳泉)이라는 샘물이다. 왕이 사용하던 샘물답게 덕을 기르는 곳이라는 교훈적인 의미의 이름을 가진 샘물이다.
연못 위에는 19세기에 류큐의 국왕이 세운 두 개의 비석이 세월의 무게를 더한 채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연못의 수원이 되고 있는 샘물은 연못에 쉬지 않고 청정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샘물이지만 마치 냇물같이 흐름이 풍부한 물줄기가 연못으로 활기차게 흘러들고 있다.
샘물은 샘물 바닥의 두 곳에서 솟아나오고 있다.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깨끗해 보이는 샘물은 아열대에 위치한 왕가의 정원에 시원한 청량함을 더하고 있다. 샘물의 석축은 오키나와의 석회암을 석회암 모양 그대로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쌓았다. 석재를 네모 반듯하게 재단하지 않고 마치 우리나라 전통 성벽의 돌쌓기와 같이 석재의 원래 모양을 그대로 살렸다. 이 독특한 아이가타즈미 식 돌쌓기는 류큐 왕국 유적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자연 환경과 어울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정원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서자 시키나엔의 본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도웅(御殿, ウドゥン)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전 앞에서 정원의 꽃나무들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시키나엔 곳곳에서 만나는 직원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우리에게 친절한 웃음을 보낸다. 일본 본토의 일본인들에게서 느껴지는 깍듯한 친절함이 아니라 친근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웃음이다.
류큐 왕조 목조 건축물의 품격을 보여준 어전
젊은 일본인 부부가 어전의 마루에 앉아 정원의 돌다리와 연못을 여유있게 완상하고 있었다. 아내와 옛 왕족의 정원을 만끽하기 위해서 나도 그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들의 감상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주변에 잠시 머물다가 그들이 어전의 마루에서 내려온 후에 어전으로 다가섰다.
붉은 기와가 인상적인 어전은 류큐 왕조 목조 건축물의 품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전 외관의 지붕선과 기와를 보면 중국 목조 건축양식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던 류큐는 일본에 합병되기 전에 중국과 더 활발한 교류를 벌였고 이 어전도 류큐의 독자적인 건축양식과 함께 중국 건축양식이 결합되어 지어졌다.
어전은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내부 전체를 구경할 수 있다. 나는 맨발로 옛 왕가의 목조건축물을 느껴보려 하였지만 건물의 나무바닥은 유적지의 고졸한 맛이 전혀 없다. 마치 바로 엊그제 교체한 아파트의 나무바닥 제품같이 바닥이 너무 반질반질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서 이 어전이 파괴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어전의 안에는 파괴된 어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어전이 파괴되기 전 메이지시대(明治時代)와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때 증축되었던 어전의 흑백사진들이 잔뜩 전시 중이다.
밖에서 볼 때 몇 채의 건물이 각각 세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건물들은 안에서 보니 15개 방의 내부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일본 본토 왕가와 귀족의 저택은 방마다 칸막이가 많고 방의 구획이 마치 밀실처럼 은밀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이 어전은 공간이 매우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게다가 어전의 마루는 정원과 연못을 향해 시원스럽게 트여 있어서 정말 이 안에 살고 싶은 편안함을 준다.
아내와 함께 어전의 마루에 걸터앉아 돌다리와 정자, 연못을 한가하게 감상하였다. 어전 바로 앞에서는 관리인 아저씨가 나무들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있다. 햇살은 따사롭지만 예상 외로 덥지는 않다. 선선한 날씨가 이국의 정경을 감상하는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나는 아열대의 숲 속에 숨겨진 왕의 정원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왕과 중국의 사신만이 노닐던 이 정원을 나와 아내 단 둘이서 방해받지 않고 감상하고 있으니 이도 작은 행복이다.
연못 주위를 따라 산책로는 계속 이어진다. 산책로에는 주변 명승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문, 그리고 답사할 때에 들러야 할 길의 순서를 표시해 놓은 표지판이 꼼꼼하게 세워져 있다. 어전을 나와 연못 주변을 답사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돌다리, 이시바시(石橋)다. 정원의 다리치고는 꽤 큰 이 돌다리는 다리의 가운데가 아치형으로 굽어 있는데 이는 누가 봐도 중국 정원양식의 영향이다. 이 다리는 중국과의 활발했던 교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석조구조물 작품같은 돌다리
돌다리의 형식은 중국풍이지만 다리의 석재는 검고 울퉁불퉁한 류큐의 석회암이다. 류큐 석회암의 검은 색상은 중국과는 다른 오키나와만의 특유한 색깔을 보여준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2개의 돌다리 중에서 먼저 만나는 돌다리는 이 류큐 석회암의 예술성을 웅변하고 있다.
돌다리가 세월의 비바람에 수없이 깎인 채 마치 현대 석조구조물 작품같은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 두 번째 만나는 돌다리는 류큐 석회암의 검은 운치를 자랑하지만 비교적 반듯하다. 미군의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가 다시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연못을 건너자 롯카쿠도우(六角堂)라는 정자가 연못의 한 켠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다. 이름 그대로 육각형 모양의 이 정자는 중국 남방의 유명 정원을 여행하다보면 항상 만나게 되는 전형적인 정자이다. 그러나 롯카쿠도우도 오키나와 문화를 잘 담고 있는데 중국의 육각형 정자와 다른 점은 지붕의 붉은 기와들이다. 오키나와의 수많은 태풍을 견뎌야 하는 이 기와들은 지붕에서 꼼짝 못하도록 시멘트를 발라서 지붕에 완전히 붙여 놓았다.
연못 옆의 산책로와 붙어 있는 것 같이 보였던 롯카쿠도우는 가까이 가서 보니 작은 아치형 석회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정자 안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아내는 롯카쿠도우 주변의 화려한 아열대 꽃밭을 감상하고 나는 정자 위로 흘러가는 남국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원의 고요 속에서 하늘 위로 흘러가는 흰 구름이 한가하기만 하다.
산책로는 시키나엔의 연못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이 류큐(琉球)식 정원은 오키나와에서 '시치나누우둔'이라고 부르는 회유식(回遊式) 정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회유식 정원이란 정원의 연못 주위를 따라 한 바퀴 돌면서 풍경의 변화를 즐기는 정원이다. 역시 연못 주위를 따라 걸으니 걸어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주변의 자연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다양하게 달라진다. 정원은 다른 일본의 정원처럼 아기자기한 맛 외에도 류큐 특유의 시원함과 웅장함이 있다.
이쿠토쿠센에서 흘러나온 샘물은 연못을 한 바퀴 돌아 타키구찌(滝口, たきぐち)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타키구찌'는 이름대로 급류의 입구처럼 시키나엔 언덕 아래로 작은 폭포같은 물줄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쿠토쿠센 샘물부터 흐름이 시작된 물줄기가 연못을 한 바퀴 돌아 언덕 밑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기적이다.
시키나엔에서 연못보다 조금 더 높은 지대가 있어서 올라보니 그 이름이 칸코다이(勧耕台)다. 왕이 백성들에게 몸소 농업 권장의 모습을 연출하던 곳이다. 칸코다이에서 내려다보면 나하시 외곽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가 언제 이 높은 언덕에 올랐는지 모를 정도로 시내는 한참 아래쪽에 있다.
과거 류큐 왕국 당시에 이곳에 들른 외국 사신들이 칸코다이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농장을 보며 감탄을 했다고 하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다. 류큐 왕도 이곳에서 자신이 통치하는 나하의 들판을 내려다 보았을 것이다. 이 높은 언덕에서 보니 과거에는 이 시키나엔도 외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요새같은 지형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키나엔의 순로(順路)에는 간혹 하브(ハブ)를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인데 아열대의 따뜻한 기후를 가진 섬나라라서 맹독을 가진 하브가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하브는 물리자마자 물린 부위를 치료하지 않으면 물린 부위를 베어내야 한다는 위험한 뱀이다. 뱀 때문에 이 아름다운 정원의 산책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나와 아내는 수풀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해진 길만 따라서 걸었다.
류큐의 왕은 이 한적한 정원의 연못 위에 배를 띄워놓고 한가로이 노닐기도 했다. 후네아게바(舟揚場, ふねあげば)는 왕이 연못 위에서 타고 노닐던 배를 메어두던 곳이다. 류큐의 왕은 이 연못에서 봄이면 매화 향을 즐기고 여름에는 등나무 꽃의 향기에 취하며 배를 저어갔을 것이다. 작은 류큐 왕국의 왕조였지만 역시 왕의 정원은 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정원에 아기자기함과 다양함 외에 명품과 같은 품격이 있다. 나와 아내는 우리가 돌아본 일본의 많은 정원 중 이 시키나엔이 최고라는 데에 서로 동의를 했다.
시키나엔의 회유식 정원을 보고 나오면서 나와 아내는 아열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나무들의 군락을 만났다. 왕의 정원 이후에 만나는 세상은 마치 오키나와 식물원 같았다. 시키나엔의 귀로에서 만나게 된 바나나엔(バナナ園) 곳곳에는 다양한 아열대의 거목들이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바나나엔에는 하늘 모르고 솟아오른 바나나 나무가 있고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몸통이 굵은 노란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들의 잎사귀는 크고 반질거리며 나무의 몸통은 바다동물처럼 매끈하다. 오키나와의 풍부한 빗물을 받고 자라는 나무들은 참 높게도 하늘로 뻗쳐 올라가고 있다.
시키나엔은 참으로 조용하고 한적해서 명상을 하며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산책로 중간마다 야자수와 아열대의 나무들이 나와 아내를 호위하듯이 둘러싸고 있다.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은 왕의 정원은 남국의 따뜻한 햇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백 년을 살았을 거목의 나무그늘은 산들바람 아래 시원했다. 나와 아내는 왕의 정원에서 예상치 않게 아열대 나무들의 풍요로움을 만끽했다. 나와 아내는 차분한 마음으로 남국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석재로 만든 작은 집 같은 무덤들의 묘지가 길 옆으로 지나갔다. 차가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자 시키나엔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시키나엔은 나하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키나엔이 류큐 왕국의 왕성이었던 슈리성(首里城)에서 가까운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슈리성 답사 후에 시키나엔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오키나와에서 시키나엔을 가장 먼저 답사하기로 했다.
시키나엔 입구에는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려주는 검은 대리석의 세계문화유산 표지석이 자랑스럽게 서 있다. 시키나엔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구수쿠(グスク) 유적 및 류큐왕국(琉球王国) 유적'에 포함되는 곳이다. 일본 본토와는 독립된 문화를 발전시킨 류큐왕조의 역사 유적을 유네스코에서도 세계인이 지켜야 할 유산으로 선정한 것이고, 그 중에서도 이 시키나엔은 대표적인 곳이다.
▲ 시키나엔회유식 정원을 따라 산책을 하는 맛이 일품이다. ⓒ 노시경
1799년 류큐(流球) 왕국의 쇼온왕(尙温王) 때 조성된 시키나엔은 왕과 왕족이 휴식을 취하던 별저(別邸)이자 정원이었다. 류큐 왕조는 이 정원에서 중국 등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대접하기도 하였는데, 중국 황제의 사신들 중에는 새로운 류큐 왕을 책봉하던 책봉사도 있었다. 1800년에 쇼온왕을 책봉하기 위해 류큐에 왔던 청나라의 정사 조문해(趙文楷)와 부사 이정원(李鼎元)도 이 아름다운 정원을 방문하였는데 초기의 시키나엔은 주로 외국의 귀빈을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던 시키나엔은 현재 유적의 대부분이 복구되어 오키나와를 알리는 명승지가 되었다.
물빛이 영롱한 '이쿠토쿠센'이라는 샘물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오키나와의 석회암이 깔린 돌길이 예쁘다. 우리는 이 돌길, 이시타타미미치(石畳道)의 운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나와 아내는 예상 외로 시원한 오키나와의 날씨를 즐기며 그 옛날 류큐의 왕이 걸었을 돌길을 한적하게 걸었다.
▲ 아열대 나무줄기가 땅을 향해 뻗어 나무를 지탱하고 있다. ⓒ 노시경
시키나엔의 중심인 우도웅(御殿, ウドゥン)까지 걸어가는 산책길은 아열대의 풍성한 나무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아내와 내가 신기해 한 것은 아열대 나무들의 왕성한 줄기였다. 줄기 아래로 늘어뜨린 잔가지들이 묘하게도 다시 땅 바닥과 연결되어 있다. 아무래도 머리카락 같은 수많은 잔가지들은 지표면과 붙어서 오키나와에 불어오는 가공할 태풍의 바람을 막는 데에 사용될 것이다.
웬만하면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이용하지 않는 아내가 스마트폰을 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아내에게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든 것은 물빛이 영롱한 이쿠토쿠센(育徳泉)이라는 샘물이다. 왕이 사용하던 샘물답게 덕을 기르는 곳이라는 교훈적인 의미의 이름을 가진 샘물이다.
연못 위에는 19세기에 류큐의 국왕이 세운 두 개의 비석이 세월의 무게를 더한 채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연못의 수원이 되고 있는 샘물은 연못에 쉬지 않고 청정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샘물이지만 마치 냇물같이 흐름이 풍부한 물줄기가 연못으로 활기차게 흘러들고 있다.
▲ 이쿠토쿠센이 샘물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연못을 적신다. ⓒ 노시경
샘물은 샘물 바닥의 두 곳에서 솟아나오고 있다.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깨끗해 보이는 샘물은 아열대에 위치한 왕가의 정원에 시원한 청량함을 더하고 있다. 샘물의 석축은 오키나와의 석회암을 석회암 모양 그대로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쌓았다. 석재를 네모 반듯하게 재단하지 않고 마치 우리나라 전통 성벽의 돌쌓기와 같이 석재의 원래 모양을 그대로 살렸다. 이 독특한 아이가타즈미 식 돌쌓기는 류큐 왕국 유적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자연 환경과 어울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정원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서자 시키나엔의 본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도웅(御殿, ウドゥン)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전 앞에서 정원의 꽃나무들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시키나엔 곳곳에서 만나는 직원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우리에게 친절한 웃음을 보낸다. 일본 본토의 일본인들에게서 느껴지는 깍듯한 친절함이 아니라 친근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웃음이다.
류큐 왕조 목조 건축물의 품격을 보여준 어전
젊은 일본인 부부가 어전의 마루에 앉아 정원의 돌다리와 연못을 여유있게 완상하고 있었다. 아내와 옛 왕족의 정원을 만끽하기 위해서 나도 그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들의 감상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주변에 잠시 머물다가 그들이 어전의 마루에서 내려온 후에 어전으로 다가섰다.
▲ 우도웅시키나엔을 즐기던 왕의 어전이다. ⓒ 노시경
붉은 기와가 인상적인 어전은 류큐 왕조 목조 건축물의 품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전 외관의 지붕선과 기와를 보면 중국 목조 건축양식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던 류큐는 일본에 합병되기 전에 중국과 더 활발한 교류를 벌였고 이 어전도 류큐의 독자적인 건축양식과 함께 중국 건축양식이 결합되어 지어졌다.
어전은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내부 전체를 구경할 수 있다. 나는 맨발로 옛 왕가의 목조건축물을 느껴보려 하였지만 건물의 나무바닥은 유적지의 고졸한 맛이 전혀 없다. 마치 바로 엊그제 교체한 아파트의 나무바닥 제품같이 바닥이 너무 반질반질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서 이 어전이 파괴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어전의 안에는 파괴된 어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어전이 파괴되기 전 메이지시대(明治時代)와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때 증축되었던 어전의 흑백사진들이 잔뜩 전시 중이다.
밖에서 볼 때 몇 채의 건물이 각각 세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건물들은 안에서 보니 15개 방의 내부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일본 본토 왕가와 귀족의 저택은 방마다 칸막이가 많고 방의 구획이 마치 밀실처럼 은밀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이 어전은 공간이 매우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게다가 어전의 마루는 정원과 연못을 향해 시원스럽게 트여 있어서 정말 이 안에 살고 싶은 편안함을 준다.
아내와 함께 어전의 마루에 걸터앉아 돌다리와 정자, 연못을 한가하게 감상하였다. 어전 바로 앞에서는 관리인 아저씨가 나무들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있다. 햇살은 따사롭지만 예상 외로 덥지는 않다. 선선한 날씨가 이국의 정경을 감상하는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나는 아열대의 숲 속에 숨겨진 왕의 정원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왕과 중국의 사신만이 노닐던 이 정원을 나와 아내 단 둘이서 방해받지 않고 감상하고 있으니 이도 작은 행복이다.
연못 주위를 따라 산책로는 계속 이어진다. 산책로에는 주변 명승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문, 그리고 답사할 때에 들러야 할 길의 순서를 표시해 놓은 표지판이 꼼꼼하게 세워져 있다. 어전을 나와 연못 주변을 답사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돌다리, 이시바시(石橋)다. 정원의 다리치고는 꽤 큰 이 돌다리는 다리의 가운데가 아치형으로 굽어 있는데 이는 누가 봐도 중국 정원양식의 영향이다. 이 다리는 중국과의 활발했던 교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석조구조물 작품같은 돌다리
▲ 이시바시오랜 세월을 버틴 석회암 다리가 인상적이다. ⓒ 노시경
돌다리의 형식은 중국풍이지만 다리의 석재는 검고 울퉁불퉁한 류큐의 석회암이다. 류큐 석회암의 검은 색상은 중국과는 다른 오키나와만의 특유한 색깔을 보여준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2개의 돌다리 중에서 먼저 만나는 돌다리는 이 류큐 석회암의 예술성을 웅변하고 있다.
돌다리가 세월의 비바람에 수없이 깎인 채 마치 현대 석조구조물 작품같은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 두 번째 만나는 돌다리는 류큐 석회암의 검은 운치를 자랑하지만 비교적 반듯하다. 미군의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가 다시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연못을 건너자 롯카쿠도우(六角堂)라는 정자가 연못의 한 켠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다. 이름 그대로 육각형 모양의 이 정자는 중국 남방의 유명 정원을 여행하다보면 항상 만나게 되는 전형적인 정자이다. 그러나 롯카쿠도우도 오키나와 문화를 잘 담고 있는데 중국의 육각형 정자와 다른 점은 지붕의 붉은 기와들이다. 오키나와의 수많은 태풍을 견뎌야 하는 이 기와들은 지붕에서 꼼짝 못하도록 시멘트를 발라서 지붕에 완전히 붙여 놓았다.
▲ 롯카쿠도우육각형 정자에서 바라보는 연못과 꽃밭이 아름답다. ⓒ 노시경
연못 옆의 산책로와 붙어 있는 것 같이 보였던 롯카쿠도우는 가까이 가서 보니 작은 아치형 석회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정자 안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아내는 롯카쿠도우 주변의 화려한 아열대 꽃밭을 감상하고 나는 정자 위로 흘러가는 남국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원의 고요 속에서 하늘 위로 흘러가는 흰 구름이 한가하기만 하다.
산책로는 시키나엔의 연못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이 류큐(琉球)식 정원은 오키나와에서 '시치나누우둔'이라고 부르는 회유식(回遊式) 정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회유식 정원이란 정원의 연못 주위를 따라 한 바퀴 돌면서 풍경의 변화를 즐기는 정원이다. 역시 연못 주위를 따라 걸으니 걸어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주변의 자연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다양하게 달라진다. 정원은 다른 일본의 정원처럼 아기자기한 맛 외에도 류큐 특유의 시원함과 웅장함이 있다.
▲ 타키구찌연못을 돌아나온 물이 폭포같이 떨어진다. ⓒ 노시경
이쿠토쿠센에서 흘러나온 샘물은 연못을 한 바퀴 돌아 타키구찌(滝口, たきぐち)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타키구찌'는 이름대로 급류의 입구처럼 시키나엔 언덕 아래로 작은 폭포같은 물줄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쿠토쿠센 샘물부터 흐름이 시작된 물줄기가 연못을 한 바퀴 돌아 언덕 밑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기적이다.
▲ 나하 시내꽤 높은 언덕 위의 시키나엔에서 보면 나하시 외곽이 펼쳐진다. ⓒ 노시경
시키나엔에서 연못보다 조금 더 높은 지대가 있어서 올라보니 그 이름이 칸코다이(勧耕台)다. 왕이 백성들에게 몸소 농업 권장의 모습을 연출하던 곳이다. 칸코다이에서 내려다보면 나하시 외곽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가 언제 이 높은 언덕에 올랐는지 모를 정도로 시내는 한참 아래쪽에 있다.
과거 류큐 왕국 당시에 이곳에 들른 외국 사신들이 칸코다이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농장을 보며 감탄을 했다고 하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다. 류큐 왕도 이곳에서 자신이 통치하는 나하의 들판을 내려다 보았을 것이다. 이 높은 언덕에서 보니 과거에는 이 시키나엔도 외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요새같은 지형에 자리잡고 있었다.
▲ 뱀조심오키나와의 뱀 하브가 수풀 속에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다. ⓒ 노시경
시키나엔의 순로(順路)에는 간혹 하브(ハブ)를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인데 아열대의 따뜻한 기후를 가진 섬나라라서 맹독을 가진 하브가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하브는 물리자마자 물린 부위를 치료하지 않으면 물린 부위를 베어내야 한다는 위험한 뱀이다. 뱀 때문에 이 아름다운 정원의 산책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나와 아내는 수풀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해진 길만 따라서 걸었다.
류큐의 왕은 이 한적한 정원의 연못 위에 배를 띄워놓고 한가로이 노닐기도 했다. 후네아게바(舟揚場, ふねあげば)는 왕이 연못 위에서 타고 노닐던 배를 메어두던 곳이다. 류큐의 왕은 이 연못에서 봄이면 매화 향을 즐기고 여름에는 등나무 꽃의 향기에 취하며 배를 저어갔을 것이다. 작은 류큐 왕국의 왕조였지만 역시 왕의 정원은 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정원에 아기자기함과 다양함 외에 명품과 같은 품격이 있다. 나와 아내는 우리가 돌아본 일본의 많은 정원 중 이 시키나엔이 최고라는 데에 서로 동의를 했다.
▲ 바나나엔바나나 나무와 야자수가 훌륭하게 자란 식물원이다. ⓒ 노시경
시키나엔의 회유식 정원을 보고 나오면서 나와 아내는 아열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나무들의 군락을 만났다. 왕의 정원 이후에 만나는 세상은 마치 오키나와 식물원 같았다. 시키나엔의 귀로에서 만나게 된 바나나엔(バナナ園) 곳곳에는 다양한 아열대의 거목들이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바나나엔에는 하늘 모르고 솟아오른 바나나 나무가 있고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몸통이 굵은 노란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들의 잎사귀는 크고 반질거리며 나무의 몸통은 바다동물처럼 매끈하다. 오키나와의 풍부한 빗물을 받고 자라는 나무들은 참 높게도 하늘로 뻗쳐 올라가고 있다.
시키나엔은 참으로 조용하고 한적해서 명상을 하며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산책로 중간마다 야자수와 아열대의 나무들이 나와 아내를 호위하듯이 둘러싸고 있다.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은 왕의 정원은 남국의 따뜻한 햇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백 년을 살았을 거목의 나무그늘은 산들바람 아래 시원했다. 나와 아내는 왕의 정원에서 예상치 않게 아열대 나무들의 풍요로움을 만끽했다. 나와 아내는 차분한 마음으로 남국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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