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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치리냐고요?

[주장] 대한문 앞은 시민들에게 진실 알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등록|2013.07.04 14:01 수정|2013.07.04 14:01

다시 영정 사진을 들고 앉은 쌍차해고자 고동민경찰이 영정 사진과 깔개를 탈취해 찢어 버리자 다시 영정 사진을 들고 앉은 고동민씨 ⓒ 이명옥


지난 2일 영정 사진 한 장과 향을 피울 향로 하나로 작은 분향소를 치린 이후 하루에 네 다섯 번씩 경찰이 달려들어 영정 사진을 빼앗아 찢고 깔개를 찢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화단 앞 도로는 안 된다고 해서  집회 신고를 한 화단 앞에 쳐 놓은 펜스 앞에 작은 영정 사진 한 장과 분향을 위한 향을 피울 수 있도록  깔개 한 장 깔았는데 남대문 경찰서 최성영 경비과장은 그것마저도 도로에 불법 적치물을 설치한 것이라며 수십 명의 경찰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영정 사진을 빼앗아 찢고 깔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립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경찰의 태도애 분노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하루 빨이 국정조사 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쌍차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요. 하지만 아주 이따금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지켜내는 것에 대해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분이 계시더군요.

"왜 꼭 대한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분향소를 차리려고 하느냐, 시청 본청 앞도 있고 본사 앞도 있을텐데…."

어떤 분이  대화 중에 하신 이야기입니다. 의식 있는 사회 지도자층의 한 분인데 남대문 경찰서 최 경비과장의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인식에 놀라웠습니다. 사실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들더군요. 정말 왜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지켜내려 하는지 모르십니까?

사람들은 14번째 쌍차 해고자의 죽음이 알려질 때까지 2009년 "함께 살자"며 벌였던 77일간의 옥쇄파업과 2646명의 대량해고가 부른 끝없는 죽음과 쌍차해고자에게 낙인 찍힌 주홍글씨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남매가 고아로 남겨지자 그때서야 사람들이 잠시 관심을 갖는 듯했지만 금세 일상과 타성으로 돌아갔지요. 그 뒤로도 끝없는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24번째 옥쇄파업에 함께했던 해고노동자의 죽음에 이르러 쌍차해고자들은 비난보다 더 무서운 사회의 무관심을 일깨우고 더 이상의 죽음만은 안된다는 심정으로 대한문 앞에 나와 시민분향소를 차렸습니다. 끝없는 침탈과 폭력을 끝내 이겨내고 세웠던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는 단순한 분향의 장소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쌍차 정리해고의 진실을 알리고 쌍차해고자에게 덧씌웠던 주홍글씨, 사회의 무관심이 부른 죽음에 대해 알게 만드는 진실을 알리는 장소이자 시민과 쌍차해고자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됐던 것입니다.

저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 대부분은 쌍차 대량해고 사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2009년 옥쇄파업 현장을 지켜봤던 활동가와 학생들 일부를 제외하고 말이지요. 쌍차해고자들은 정부 부처가 당한 국제 사기, 정부가 자신들의 실책을 덮으려고 눈감아 준 사측의 회계 조작에 의한 기획파산의 희생자들이면서 감옥에 갔습니다. 또한 가정이 파괴됐습니다. 해고자 자신과 가족들이 깊은 상처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대한문 앞에 쌍차 해고자들이 나와 섰을 때 비로소 시민들은 잊혀져가던 쌍용차 문제에 대해 눈길을 돌리게 됐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고 알면 알수록 권력과 자본이 얼마나 추악한 방법으로 만여 명의 무고한 노동자(3000여 명 해고자의 가족까지 합치면 1만 명가량 되는 셈이지요)에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게 됐지요.

무엇이 사실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쌍차 해고자들은 왜 그 공장으로만 돌아가려고 하느냐, 다른 일자리 알아보면 되지. 왜 꼭 대한문 앞에서 분향소를 차리고 시위를 하느냐, 그만하면 됐지. 사람들 불편한데 본사 앞이나 시청 광장 등 다른데 가서 하면 되지."

쌍차해고자들이 2009년 이후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던가요?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사회적 타살에 의한 죽음에 관심조차 없었고, 시민들은 알 기회조차 없었지요.

대한문 앞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이런 고백들을 해 왔습니다.

"미안하다. 이미 다 해결돼 일터로 돌아가 일하고 있는 줄 알았다."

대한문 앞은 단순히 24분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투쟁의 장소며 소통의 장소고 치유의 장소고 화해의 장소입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쌍차해고자와 다르지 않은 노동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대한문 분향소에서 여린 싹을 틔운 희망나무가 연대라는 자양분을 통해 우람하고 튼실한 열매로 나와져야만 합니다.

영정 사진을 들고 앉은 시민들쌍차 문제 해결을 바라며 영정 사진을 들고 연대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이명옥


대한문은 이제 막 싹틔운 희망을 함께 가꾸고 함께 울고 웃는 공동의 밥상이고. 공동의 놀이터입니다. 그리고 공동의 삶터입니다. 쌍차 해고노동자들에게 대한문 분향소는 자식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며 노란 리본을 수백개 달아 놓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휘날리는 참나무가 있는 고향집 같은 곳입니다.

대한문을 오가는 수많은 시민들의 더 긴밀하고 뜨거운 연대로 국정조사도 끌어내야 하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갖는 문제점을 해결할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와 거름망을 만들어 내야만 합니다. 단지 쌍차해고자만을 위한 싸움이 아닌 2000만 노동자를 위한 싸움 자리가 대한문 분향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제가 가끔 대한문 앞에 나와 서는 것은 제가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니라, 바로 제 자신의 문제이자 저보다 더 오랜 세월 노동자로 살아야 할 제 자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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