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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거래소에 '면죄부'... '블랙아웃 진실' 덮나

[단독] 정부쪽 조사위원들 'EMS 문제없음' 입 맞춰... 반대 의견 낸 교수는 '왕따'

등록|2013.07.05 17:20 수정|2013.07.09 10:26

▲ 지난해 6월 21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모의 전력관제센터에서 정전 대비 위기대응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 김시연


'전력계통 제어시스템(EMS)'을 제대로 활용 못해 9.15 블랙아웃(순환정전) 사태를 자초했다는 혐의를 받아온 한국전력거래소가 다수의 힘으로 '면죄부'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다수' 속에는 전력거래소 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한 교수들도 포함돼 객관성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산업통상자원부)와 국회(전정희 민주당 의원) 공동으로 구성한 EMS 기술조사위원회(위원장 김건중 교수)에서 최종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둔 가운데, 정부 추천 위원들을 중심으로 EMS 활용에 문제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미리 '공동 보고서'까지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국회 추천 위원은 EMS가 예비력 관리는 물론 경제 급전에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정반대 결론을 내려 주목된다.

반대 교수 배제하고 '공동 보고서' 만들어 '입 맞추기'

<오마이뉴스>가 최근 입수한 40여 쪽 분량의 '5인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위원 7명 가운데 김건중 위원장과 김영창 아주대 교수를 제외한 5명은 지난달 27일 따로 모여 EMS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예비력 관리'와 '경제급전' 여부에 대한 결론은 다음 회의로 미뤘지만 EMS를 활용해 발전기에 4초마다 신호를 보내고 실시간 '상태추정'을 한다는 전력거래소 쪽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애초 조사위원들은 각자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한 뒤 취합하기로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국회쪽 김영창 교수는 지난 6월 25일 400여 쪽 분량의 현장 실사 보고서를 따로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김 교수는 "전력거래소는 EMS 기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계통운영 직원들도 EMS 담당 업무 영역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등 EMS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면서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실에서 발표하는 예비력 등 대부분 수치는 신뢰성 없는 허수"라고 지적했다. 전력거래소가 실시간 상태추정과 상정사고 분석을 하지 않아 '안전도 제약 경제급전(SCED)'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국회쪽 주장을 대부분 뒷받침했다.


EMS(전력계통 제어시스템)란 전국 300여 개 발전기 상태를 추정한 뒤, 발전기 고장이나 송전선 차단 같은 상정사고를 감안해 연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경제급전 신호를 발전기로 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전력거래소는 지난 2001년 미국 알스톰사에서 이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지난 2011년 9.15 정전사고도 발생했다는 게 국회 쪽 주장이다.

유재국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6월 보고서를 통해 EMS를 제대로 활용했다면 정확한 예비력을 계산할 수 있어 대규모 정전 사고 가능성도 낮아지고, 발전기 경제 운전을 통해 연간 수천억 원대 연료비 낭비 감소와 전력요금 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 400만kW 수준인 운영예비력도 150~200만kW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 해마다 반복되는 '전력대란 위협'과 '대국민 절전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을'이 '갑' 조사?... 전력거래소 발주 사업 참여 논란

전정희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정감사 등을 통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산업부(당시 지식경제부)와 전력거래소는 EMS 활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결국 지난 4월 중립적인 대학교수들로 기술조사위원회를 꾸려 현장 실사에 나섰다.

위원회는 국회(전정희 의원)와 정부(산업부)에서 각각 추천한 김영창 아주대 교수, 김건중 충남대 교수, 김정훈 홍익대 교수, 박준호 부산대 교수, 이흥재 광운대 교수, 이병준 고려대 교수, 전영환 홍익대 교수 등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회는 애초 지난 4월부터 한 달간 조사를 마친 뒤 5월까지 조사보고서를 낼 예정이었지만 6월 이후로 계속 미뤄졌고 7월 5일 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낼 계획이었다.    

위원회는 지금까지 대여섯 차례에 걸쳐 현장 실사와 회의를 진행했지만 위원 간 의견 대립이 심해 합의 도출이 어렵다고 보고 각자 보고서를 제출한 뒤 이를 취합해 최종 보고서를 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김영창 교수만 보고서를 따로 제출했을 뿐 김건중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 5명은 지난달 27일 따로 모여 의견을 취합한 뒤 공동 보고서를 만들어 국회와 산업부 등에 제출했다.

▲ 전국 곳곳에 정전사태가 발생한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실에서 직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회의에는 총무인 이병준 교수를 비롯해 김정훈, 박준호, 전영환 교수가 참석했고 해외 출장 중인 이흥재 교수는 서면 동의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이 사전 보고서 외부 유출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면에는 국회와 정부쪽 위원들 간에 불신이 깔려있다. 정부와 전력거래소는 EMS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비전공자임을 내세우는 반면 국회쪽에선 오히려 전기공학과 교수들이 전력거래소에서 수억에서 수십억 원대 연구용역을 받는 등 직간접적 연계가 있음을 들어 불신하고 있었다.

실제 전력거래소는 지난 2005년부터 한국형 K-EMS와 차세대 EMS 개발에 각각 400억과 370억 원을 사용하면서 대학교수들을 연구개발사업에 끌어들였다. 이번 조사위원회 일부 교수들도 전력거래소 발주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객관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전력계통 분야 교수는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K-EMS를 비롯해 전력거래소에서 발주한 연구개발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면서 "기술조사위원들 가운데 일부도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에서 추천했기 때문에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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