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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원장 비리 고발, 그후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

강원도 평창군의 한 공립어린이집에서 해고된 보육교사들은 지금...

등록|2013.07.07 20:31 수정|2013.07.07 20:31
최근에 어린이집 원장들이 보육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취업을 막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어린이집 원장들이 같이 일하기를 꺼리는 보육교사들의 명단을 공유하면서, 그 명단에 이름이 오른 보육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져 문제가 되고 있다.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원장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제보한 이후,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실제 블랙리스트가 나돈 건 아니지만, 보육교사들은 그 이후 "복직은 물론이고 재취업을 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

▲ 6월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보육교사들이 부당해고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기태


원장 비리 제보 보육교사들, 계약 종료 시점에 '전원 해고'

평창군에서는 지난 3월 말, 한 공립어린이집의 보육교사들이 모두 해고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들과 조리사 등 전 직원이 원장에게 비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뒤에 벌어진 일이다. 보육교사들은 지난 2월 13일 "원장이 국가보조금을 부당하게 수급하고 공금을 횡령한 일이 있다"며 강원도청과 군청 그리고 보건복지부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 후로 군청이 조사에 나서서 보육교사들이 제기한 민원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원장은 그 자리에서 물러났고, 어린이집에는 3월 1일자로 임시 원장이 부임했다. 그런데 그 원장이 부임한 이후 한 달이 지난 3월 말에, 전 원장의 비리를 제보했던 보육교사들은 모두 해고됐다. 당시 이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는 모두 4명이었다.

이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들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학기가 끝나는 지난 2월 말이 계약 만료 시점이었다. 그들은 2월 말로 재계약을 했어야 하는데, 임시 원장이 오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정식 계약을 맺지 못했다.그 대신 군청의 요구에 따라 한 달짜리 임시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군청의 담당 공무원은 새로 부임한 원장이 한 달간 일하기로 한 임시 원장이므로, 보육교사들의 계약 역시 한 달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청은 보육교사들에게, 3월 중 다시 어린이집을 운영할 새 위탁업체를 공모해서 새 원장을 뽑게 되면 그때 다시 계약을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보육교사들은 당시 한 달짜리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갑을 관계에서 '을'의 처지에 있는 보육교사들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시 보육교사들은 그 한 달이 지난 후, 당연히 재고용이 되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그 한 달짜리 계약은 군청이 새 위탁업체를 선정할 때까지만 통용되는 임시 계약에 불과했다.

어린이집은 3월 1일로 새 학기가 시작됐다. 어린이집은 이 한 달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과도 정서적인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적응을 하는 기간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 기간이 지나서 교사들을 교체하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자신들을 재고용하는 일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마당에 "새 원장이 설마 우리를 해고할까?"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은 보육교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3월 한 달이 다 지나갈 무렵, 임시 원장으로 온 사람이 군청에서 내건 어린이집 위탁 공모에 응해 정식 원장 자리에 올랐다. 그와 동시에 보육교사들은 다시 새 원장과 재계약을 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하지만 새 원장은 학기 중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다시 고용하지 않았다.

임시원장은 3월 말경 정식 원장 자리에 오르면서, 바로 기존의 보육교사들에게 계약 종료를 통지했다. 그리고 기존의 교사들에게 재계약 의사도 묻지 않은 채, 교사들을 모두 다시 뽑는 절차를 밟았다. 그때는 이미 새 학기가 시작된 때라, 다른 데서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힘든 시점이었다. 보육교사들로선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계약 기간 종료 해고 통고는 정당" vs "학기 중에 부당 해고"

새 원장은 이들을 왜 모두 해고했을까? 원장은 지난 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는 보육교사들이 모두 계약 기간 만료 대상으로, 계약 기간이 끝나 다시 고용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기존의 교사들을 고용 승계하지 않고, 모두 새로 뽑은 것은 "좀 더 일을 잘하는 보육교사들을 채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언론을 통해 자신이 마치 보육교사들을 부당하게 해고한 것처럼 알려진 것은 잘못"이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언론사들이 제대로 된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보육교사들의 말만 듣고 일방적으로 기사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보육교사들을 해고한 것은 계약에 따른 것일 뿐, 그 외 다른 의도는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보육교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보육교사들은 "새 원장이 영유아보육법과 근로기준법 등을 지키지 않았다"며, 이는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비정규직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학기 중에 갑자기 교사들을 해고할 때는 그만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 어린이집에서는 특별히 그런 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학기 중에 교사들이 바뀌는 데는 학부모들도 반대했다. 그러나 원장은 학부모들과 보육교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육교사를 공채했다. 그리고 보육교사들에게는 그들도 공채에 응할 수 있다고 통고했다. 그 공채에는 해고 통고를 받은 4명의 보육교사 중 2명도 응모했다. 다른 2명은 그 어린이집을 떠나거나 공채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응모 자체를 포기했다.

공채 결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해고 교사 2명은 모두 불합격했다. 결국 해직된 보육교사 중, 당시 이 어린이집에 다시 채용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보육교사들은 이 공모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원장은 "보육교사 공모 심사에 지역 어린이집의 분과별 위원장 2명을 면접관으로 참가시켜 객관성을 보장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육교사들은 "이 면접관들이 모두 평창군에 있는 어린이집 원장들로, 그들이 심사에 참가한 것 자체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보육교사들은 "원장이 진짜 객관성을 보장할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면접관으로 앉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육교사들은 공채가 "우리들을 해고하는 또 다른 절차"로 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게, 해고된 4명의 보육교사 중 1명은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어서, 7월 3일자로 겨우 복직이 될 수 있었다. 그것도 보육교사들이 노동부에 직접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낸 다음에, 노동부가 복직 결정을 내려주고 나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다른 교사들은 구제를 받지 못했다.

보육교사 중 또 다른 1명은 평창군 내 다른 어린이집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교사는 그 어린이집을 이틀밖에 다니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 어린이집에서, 그 교사가 앞서 일했던 어린이집에서 원장의 비리를 고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2명의 보육교사는 지금도 계속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보육교사들은 자신들이 지난 3월 말에 해고를 당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원장은 그때 우리들을 어린이집에서 단지 3월 한 달 동안만 이용하고 버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분개했다. 그리고 현재 자신들이 그 어린이집에서 해고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 원장의 비리를 고발한 것이 원죄가 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비리 제보 후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

▲ 6월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보육교사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기태


평창군에서 해고된 보육교사들은 지난달 24일 서울시 서대문에 있는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역시 같은 문제로 대구광역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해고된 다른 보육교사들과 함께 '보육교사들 탄압 사례'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때 보육교사들은 복직은 물론이고 재취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털어놨다.

보육교사들은 또 지난달 27일에는 강원도청 앞에서 집회를 갖고, 어린이집 관리를 소홀히 한 평창군을 규탄하는 한편, 강원도청과 평창군청에 도내 어린이집 비리를 전면 재조사할 것과 어린이집에서 해고된 교사들을 모두 복직시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도청과 군청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공익신고자보호법'이라는 것이 있다. 그 법에 따르면,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공익신고를 한 사람에게 절대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 법이 공익신고를 한 사람들을 보호해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공익 신고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먼저 모종의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부터 해야 한다.

평창의 보육교사들 역시 그런 각오를 다져야 했다. 보육교사들은 원장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로 인해 비리를 폭로하는 데 상당한 압력을 느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보육교사로서 어린이집 안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들이 처한 현실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육교사들의 평균 임금은 155만 원에 불과하다. 평창 어린이집에서 해고된 보육교사들의 임금은 이보다 더 적었다. 우리나라 보육교사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하루 10시간에 가까웠다.

임금과 노동 시간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은 또 늘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그렇다 보니, 을의 입장에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로 교사들이 열악한 교육 환경과, 원장의 횡포 등 비인격적인 대우에 항의를 해보기도 하지만, 시정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평창의 보육교사들 역시 그런 문제를 호소했다.

평창의 보육교사들을 인터뷰하던 중에, 한 보육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교사가 행복한 아이들을 만든다"고.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 질 좋은 교육을 받으려면, 먼저 어린이집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과 비리부터 척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비리 제보는 필수다. 당연히 비리를 제보한 사람은 가능한 한 그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비리 제보자들을 '계약 종료'를 이유로 모두 해고해 버린다면, 이후에 누가 다시 비리 제보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계에 압력을 느끼면서까지 비리를 제보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평창의 보육교사들은 상당히 용감한 결정을 내렸다. 보육교사들은 현재 "우리들이 당한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고 어린이집에 다시 복직이 될 때까지 계속 싸운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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