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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밤 낙동강서 피어오른 '사랑의 힘'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21) #6. 탈출(1) ③

등록|2013.08.01 20:29 수정|2013.08.02 13:21

▲ 낙동강 ⓒ 박도


낙동강

마침내 그들은 낙동강을 건너고자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준기가 앞서고 순희는 버드나무가지를 움켜잡은 채 조심조심 뒤따랐다.

9월 초순이었지만 밤 강물은 오싹하도록 찼다. 준기는 이를 악물었다. 뭔가 발에 걸렸다. 곧 강물 위로 떠오르는 게 사람의 시체였다. 아마도 강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군인의 시체 같았다. 순희는 '으윽!'하는 가벼운 비명을 질렀지만, 준기는 무심코 터져 나온 비명조차도 혀를 깨물고 참았다. 순간 순희는 공포감에 준기의 등을 껴안았다.

"무서워요."
"와, 우리를 해칩네까? 유학산 고디에서 시체를 수태 보고서두."

준기는 속마음과는 달리 태연하게 말했다.

"불쌍해요."
"하긴 기러쿠만요."

그들은 어둠으로 희미하게 떠내려가는 시체를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좋은 곳에 가라고 빌었어요."
"잘해수다. 나두 마음 속으로 빌어시우."

"근데 동생은 어찌 놀라지도 않소?"
"뭘요. 이만 일에."

준기는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순희의 손을 잡은 채 강을 건넜다. 두 사람은 찬 강물로 몸이 굳자 이따금 서로 껴안고 상대의 체온으로 굳은 몸을 풀었다. 마침내 강 한복판에 이르자 수위가 가슴팍을 넘었다. 준기는 더 이상 순희의 손을 잡고 건널 수 없었다. 준기는 버드나무가지를 허리춤에 묶었다.

"누이, 이제부터는 내 손을 잡디 말구 이 나뭇가지만 잡으라요."
"알았어요."

순희는 버드나뭇가지를 꽉 움켜 잡았다. 앞장선 준기는 한 길이나 되는 강심부분을 모재비헤엄으로 건너갔다. 뒤따르는 순희는 나뭇가지를 잡고 꼬르륵꼬르륵 물을 마시며 허우적거리다가 그만 나뭇가지를 놓았다. 그 순간 순희는 허우적거리며 강물에 둥둥 떠내려갔다. 준기는 재빠르게 떠내려가는 순희를 왼손으로 낚아챈 뒤 오른손과 두 발로 안간힘을 다하여 헤엄쳤다.

준기는 기력이 다해 헤엄을 치다가 지친 나머지 모든 걸 포기한 채 발을 내딛자 강바닥에 발이 닿았다. 그 순간 준기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순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레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발을 강바닥에 디딜 건데."
"세상사 모르면 다 그런 거예요."

그들은 그제야 비로소 안도의 긴 숨을 내쉬었다.

사랑의 힘

"저승 문턱에서 살아난 기분이에요."

순희는 그때까지도 준기에게 꼭 매달렸다.

"아무튼 힘은 들었디만 누이가 거머리터럼 달라붙으니까 기분은 돟아시오(좋았어요)."
"어쨌든 살려줘서 고마워요."

"일없습네다. 내레 디난(지난) 번 누이가 뱃가죽을 잘 꿰매준 덕분에 살아났디요."
"나도 마찬가지이에요. 그때 융단폭격에 살아난 건 동생 덕분이에요."

"아닙네다. 하늘이 살레줘시우. 인명은 재턴(재천)이라디요."

그들은 마침내 낙동강을 다 건넜다. 그제야 그믐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믐달이 반갑기보다 오히려 무서웠다. 그들은 달빛 때문에 강 숲으로 몸을 숨긴 뒤 준기도, 순희도 젖은 옷을 벗어 짠 뒤 다시 입었다. 젖은 옷이 엄청 차가웠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달빛도 파랬지만 두 사람 입술도 파랬다. 그들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모래톱에서 서로 껴안았다. 그리고는 파란 입술을 포갰다. 곧 온 몸이 데워졌다.

"찬 강물에 굳었던 몸이 금세 펴지네요."
"정말 그래요. 이게 사랑의 힘인가요."

"길쎄…."
"고마워요."

"뭘요. 같이 사는 길이디요."
"나 혼자라면 도저히 엄두낼 수도 없었지요."

"내레 마찬가디디요. 자, 순희 누이 이제 그만 갑세다."
"네, 그래요. 날이 밝아오는 게 두렵지요."

준기가 앞서고 순희가 뒤따랐다. 

"밤길은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우니까 일단 철길을 따라 북극성이 있는 쪽으로 가는 게 가장 좋을 거예요."
"알가시오. 하지만 털길(철길)은 위험하디요."

"그럼, 철길로 가지 말고, 그 철길 밑 길로 가면 덜 위험할 거예요."
"알가시오. 순희 누이는 탐(참) 아는 것도 많습네다."

비운의 왜관철교이 다리는 1905년 일제가 군용단선철교로 개통했다가 1941년 이곳에서 북쪽 100미터 지점에 복선철교가 새로 가설되자 국도로 이용되었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8월 3일 유엔군 측이 작전상 이 다리를 폭파한 뒤 이후 여러 차례 복구되어 인도교로 사용하였다. 2011년 4대강 사업으로 무너져내린 것을 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워커라인' 최전방으로, 우리나라 현대사만큼 굴곡이 심한 비운의 교량이다. ⓒ 손현희 시민기자 제공


한옥

그들은 임은동을 벗어나 철길이 있는 상모동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가는 국도가 있었지만 위험할 것 같아 철길 밑 좁은 길을 따라 갔다. 그믐 달빛은 있었지만 초행길인데다가 사방을 경계하면서 걷다보니 걸음 속도가 몹시 느렸다. 그들이 구미 광평동을 지나 간신히 형곡동에 이르자 그새 동녘하늘에 새벽빛이 뿌옇게 밝아왔다.

"날이 밝아오는 게 무섭고 두려워요."
"나두 마찬가지야요. 우리 어디 가서 낮 시간을 숨어지낸 뒤 날이 어두워지면 다시 북으로 갑세다."

"그래요. 우리 저기 보이는 저 산 밑으로 가요."
"기럽세다."

그들은 거기서 북행을 중단하고 서쪽에 있는 금오산으로 향했다. 순희는 어쩐지 그 금오산이 그들을 숨겨주고 보호해 줄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경부선 철길이 가로 놓여 있었다. 다행히 이른 새벽이라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재빠르게 철길을 건넌 뒤 곧 계곡에 숨었다. 그때까지도 옷이 마르지 않았다. 새벽공기가 싸늘해 몹시 춥고 배도 고팠다. 가까운 곳에 희미하게 동네가 보였다.

그 마을은 구미 형곡동이었다. 두 사람이 마을에 이르자 쉰 채 남짓한 마을 집들은 거의 전란에 불타버리거나 허물어졌다. 그런데 동네 어귀 첫 기와집은 행랑채만 조금 부서지고 본채는 멀쩡했다. 준기가 먼저 기와집에 이르러 언저리를 살폈다. 인기척이 없자 손짓으로 순희를 불렀다. 수백 년이 됨직한 고풍스러운 한옥 대문에는 '金廷黙(김정묵)'이라는 낡은 문패가 을씨년스럽게 걸려있었다.

"계세요?"  
"계심까(계십니까)?"

옷을 갈아입다

준기와 순희가 대문 앞에서 번갈아 주인을 불렀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그들은 우선 옷을 갈아입는 게 급했다. 옷이 젖었을 뿐더러 인민군복을 벗어 어디에다 감추고 싶었다. 마당을 가로지른 뒤 본채 안방 문을 열었다. 피난을 간 집치고는 방안이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계세요?"

순희는 나지막이 주인을 불렀다. 아무 대꾸도 없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장롱을 뒤졌다. 옷이 반쯤은 차 있었다. 순희는 그들 몸에 맞는 옷을 골랐다. 대부분이 부인용 치마저고리들이었다. 그런데 맨 아래 칸 서랍에서 남자 바지와 남방셔츠가 한 벌 나왔다. 준기가 그 옷을 입자 조금 컸지만 그런대로 입을 만했다. 순희는 마땅한 옷이 없자 무명 한복을 한 벌 골랐다. 순희는 건넌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돌아와 옷맵시를 가다듬으면서 준기에게 물었다.

"나 어때요."
"새색시처럼 예쁩네다."

"정말?"
"기럼요."

순희의 얼굴이 발그레 물들었다. 준기도 건넌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

"잘 맞아요."
"기래요? 헐렁한데."
"그래야 활동하기 좋아요."

그들은 벗은 인민군복을 뭉쳐 다락 깊숙이 던졌다. 부엌에는 다행히 밥솥도 걸려있었고, 찬장에는 밥그릇과 숟가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주인이 피난을 떠난 뒤 누군가 이 집을 거쳐 간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군인이나 피난민들이 이 집에서 밥을 해 먹고 간 모양이었다.

▲ 전란으로 잿더미가 된 도시(원산, 1950. 11. 20.) ⓒ NARA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일일이 검색하여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독자가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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