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탕~
2005년 8월 17일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축구 평가전을 관람하고 나오는 중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부터 몇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군중 속의 누군가가 외쳤다. "누군가가 본프레레를 총살한 모양이군." 무거운 분위기의 전철역 입구 주변은 금새 킥킥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발을 돌리는 관중들의 웃음소리에는 그들 사이에 무엇인가 공유되는 정서감이 흘렀던 것이다. 물론 그 총성의 정체는 경기 후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 출정식 및 6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열병대가 힘차게 방아쇠를 당긴 총포 소리였으나, 군중들은 필경 경기 결과에 실망한 팬에 의해 본프레레가 암살당했다고 생각해도 수긍할만한 맥락으로 파악한 것이다. 결국 불행히도 그 경기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한 조 본프레레의 마지막 시합이 되고 말았다.
흔히 축구를 가르켜 '총성 없는 전쟁' 이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종종 분노한 팬에 의해서 실제로 총성이 울리기도 하는 스포츠 분야가 바로 축구이다. 제 15회 미국 월드컵 당시 콜롬비아에서는 자책골을 기록한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귀국 후 총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직접적인 살인 행위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유럽의 챔피언스 리그에서 폭동을 일으킨 관중들에 의한 참사가 지금까지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 많은 팬을 보유한 리버풀과 유벤투스간에 벌어진 1985년 유러피안 결승전은 헤이젤 참사로 지금까지도 크게 화자된다. 당시 두 팀의 서포터즈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한쪽으로 관중이 우르르 몰리며 경기장이 무너져 39명이 목숨을 잃고 454명이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 뒤로 양 팀간의 서포터즈는 두고두고 앙숙인 관계를 유지한다.
모든 스포츠를 총 망라해서도 축구는 가장 치열한 전쟁터이다. 그렇다면 축구가 총성 없는 전쟁의 장으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브랜딩을 정립한 더글라스 홀트는 예로부터 스포츠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말한다. 때로 스포츠는 일에 대한 강력한 은유가 되었고 때로는 성공적인 삶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상징적인 모델로, 또 때로는 강인한 남성성에 대한 유사 개념으로서의 역할 역시 수행했다고 기술한다. 홀트는 스포츠야말로 국가의 이념과 관련하여 그들 선수들의 부모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양한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매개로 파악했다.
나이키는 바로 이 지점을 광고로 잘 포착해냈기에 유수깊은 브랜드로 우뚝 섰다는 것이 바로 홀트의 판단이다. 나이키는 전후 시대의 편안한 삶에서 불굴의 의지로 재무장할 필요성을 느낀 미국인들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들의 심성을 자극하며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것이다. 나이키 운동화가 절찬리에 팔려나간 주 원인은, 운동화의 뛰어난 기능이 아닌 바로 소비자들의 이념을 충족시켜 주었다는 데 있다. 축구 역시 모든 스포츠 중에서 이념이 가장 강렬하게 펼쳐지는 일촉즉발의 전쟁터로 변모한다.
반면 우리는 최강희 호의 국가대표팀에서 그 어떤 '투혼' 도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이 최강희호에 쏟아진 비난의 주 원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민은 국가대표팀이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멋진 경기를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국가대표팀의 정열과 지지 않으려는 투혼을 통해서 일상에 치인 피로감을 해소하고 '힐링' 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각종 힐링 문화가 판치는 작금의 한국 사회라지만 사실상 축구만큼 치유의 주요 매개 또한 없다는 점을 들 때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광범위한 열망을 이해할 수 있다. 홀트 역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스포츠야말로 '진짜 세상' 이 부과한 모든 걸림돌과 장애가 사라지고, 의지가 굳고 성실하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는 공평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는 유토피아라고 묘사했다. 즉 여러 꼼수를 부리는 작금의 국회 정치와 일상의 직장 생활에 치이는 국민들은 그만큼 축구 국가대표팀에 기대하는 바가 큰 것이다.
축구야말로 삶의 불공정한 편재에서 상실된 가치들을 재확인시켜주는 매개 행위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정신은 승리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이겨내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진 운동 선수가 그 시작이며 끝일 뿐, 사회와 같이 특권과 물질적 지원 같은 요소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홀트는 말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최강희 호의 '뻥축구' 를 지켜보며 삶의 피곤증을 해소하기능 커녕 오히려 더한 스트레스만 받는 꼴이 되었다. 그 어떤 투지도 혹은 전술도 부재한 채, 오직 키 큰 스트라이커 두 명을 상대방 진영에 박아놓고 수시로 공을 올리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시합에 지탄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국민들이 원한 것은 지더라도 시원하고 정당한 시합이지 그런 편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 국가대표팀을 둘러싼 여러 설들이 사실로 밝혀지며 최강희에 대한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최강희 역시 결국은 그 결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대표팀의 수장이다. 어린 선수들의 치기를 포용하고 다잡지 못한 것은 분명 그의 지도자 능력의 한계를 뜻한다. 또한 최강희가 스스로의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옵션들을 선보였어야 했다. 이란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끝까지 이동국을 고용한 것에는 분명 승부의 결과와 관계없는 최강희의 혹심이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최강희로서야 앞으로 국가대표에 그가 아끼는 애제자가 두번 다시 포함될 수 없으리라는 직감에 기회를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어쨌거나 필드 위에서는 단 몇 분이라도 그런 사심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것이 어린 선수들의 경동과 함께 최강희에게 국민들이 보내는 지탄의 이유이다.
독일의 철학자 랭크는 사회규범이나 가치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포츠는 이미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부상했다고 지적한다. 홀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스포츠의 이념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한 최강희 호는 국민들의 사회적 이념에 크게 위배되었음은 물론 그 어떤 힐링도 전달하지 못했다. 스포츠의 잔혹한 점은 결국 감독이 그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개개인의 능력을 선보여 승리를 이끌어도 언론이 지목하는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감독으로 귀결되는 까닭이다.
전후 미국 언론은 개성 강한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녹여낸 감독에게 가장 큰 찬사를 보냈다. 이 중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이클 조던과 악동 데니스 로드맨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NBA 결승 타이틀을 챙긴 필 잭슨 등이 있다. 알렉스 퍼거슨이 큰 존경을 받는 이유 역시 해당 원인에 기인한다. 하지만 최강희는 해외파와 국내파의 조합을 이루는 것에 애를 먹는다고 말하며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흑백 인종 간의 갈등마저 적절히 제압하며 하나의 팀워크를 형성해가는 유럽의 감독들에게 최강희의 변명은 그저 철 없는 푸념으로 들릴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문제의 일차적 원인으로 축구협회의 근시안적인 대응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히딩크 이후로 부임된 여러 감독들을 보자면, 그 선임 과정에는 장기적인 플랜 없이 그때그때 축구협회 내부 간의 정치적인 대립이 계속 곪아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명보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과는 별개로 그의 차기 감독 내정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저 홍명보의 '카리스마' 에 의지하는 축구협회를 보자면 이들 수뇌부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방안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장안의 화제인 '미생' 72회를 들여다보자. 장그래 팀에 새로 합류한 천 과장이 일보다 정치(게임)를 먼저 하려하자 곧장 오상식 팀장으로부터 재미있는 친구라는 일침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축구협회의 임원들 역시 협회에 출근하면 일 대신 정치를 먼저 하는 것에 체제화된 재미있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 이란전에서 연이어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음에도 자화자찬하는 기사들만 쏟아져 나오는 꼴을 보자면 그들이 정작 일보다는 정치 게임에 더 일가견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본 프레레는 동아시아 대회에서 중국과의 일전을 앞두고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4년 전의 자료를 성의없게 건넸다고 비판했다. 결국 본 프레레에 대한 국민들의 총성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 자는 바로 축구협회다. 더군다나 축구협회는 이제 그 방아쇠를 국민들의 2002년 월드컵 영웅 홍명보에게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싸움의 본질이 정화되지 못한 축구협회에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부디 더 이상의 희생양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축구협회의 이권과 자기그릇 챙기기가 계속된다면 오랫동안 화를 참아온 축구팬들의 마지막 방아쇠는 결국 축협을 향해 겨눠질 것이다. 미생에서 영업 3팀의 오팀장이 던진 뼈있는 대사를 축구협회에 전하며 글을 마친다.
"일을 해. 일을. 회사 나왔으면. 힘 빼지 말고."
2005년 8월 17일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축구 평가전을 관람하고 나오는 중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부터 몇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군중 속의 누군가가 외쳤다. "누군가가 본프레레를 총살한 모양이군." 무거운 분위기의 전철역 입구 주변은 금새 킥킥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발을 돌리는 관중들의 웃음소리에는 그들 사이에 무엇인가 공유되는 정서감이 흘렀던 것이다. 물론 그 총성의 정체는 경기 후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 출정식 및 6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열병대가 힘차게 방아쇠를 당긴 총포 소리였으나, 군중들은 필경 경기 결과에 실망한 팬에 의해 본프레레가 암살당했다고 생각해도 수긍할만한 맥락으로 파악한 것이다. 결국 불행히도 그 경기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한 조 본프레레의 마지막 시합이 되고 말았다.
흔히 축구를 가르켜 '총성 없는 전쟁' 이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종종 분노한 팬에 의해서 실제로 총성이 울리기도 하는 스포츠 분야가 바로 축구이다. 제 15회 미국 월드컵 당시 콜롬비아에서는 자책골을 기록한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귀국 후 총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직접적인 살인 행위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유럽의 챔피언스 리그에서 폭동을 일으킨 관중들에 의한 참사가 지금까지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 많은 팬을 보유한 리버풀과 유벤투스간에 벌어진 1985년 유러피안 결승전은 헤이젤 참사로 지금까지도 크게 화자된다. 당시 두 팀의 서포터즈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한쪽으로 관중이 우르르 몰리며 경기장이 무너져 39명이 목숨을 잃고 454명이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 뒤로 양 팀간의 서포터즈는 두고두고 앙숙인 관계를 유지한다.
모든 스포츠를 총 망라해서도 축구는 가장 치열한 전쟁터이다. 그렇다면 축구가 총성 없는 전쟁의 장으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브랜딩을 정립한 더글라스 홀트는 예로부터 스포츠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말한다. 때로 스포츠는 일에 대한 강력한 은유가 되었고 때로는 성공적인 삶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상징적인 모델로, 또 때로는 강인한 남성성에 대한 유사 개념으로서의 역할 역시 수행했다고 기술한다. 홀트는 스포츠야말로 국가의 이념과 관련하여 그들 선수들의 부모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양한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매개로 파악했다.
나이키는 바로 이 지점을 광고로 잘 포착해냈기에 유수깊은 브랜드로 우뚝 섰다는 것이 바로 홀트의 판단이다. 나이키는 전후 시대의 편안한 삶에서 불굴의 의지로 재무장할 필요성을 느낀 미국인들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들의 심성을 자극하며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것이다. 나이키 운동화가 절찬리에 팔려나간 주 원인은, 운동화의 뛰어난 기능이 아닌 바로 소비자들의 이념을 충족시켜 주었다는 데 있다. 축구 역시 모든 스포츠 중에서 이념이 가장 강렬하게 펼쳐지는 일촉즉발의 전쟁터로 변모한다.
반면 우리는 최강희 호의 국가대표팀에서 그 어떤 '투혼' 도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이 최강희호에 쏟아진 비난의 주 원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민은 국가대표팀이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멋진 경기를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국가대표팀의 정열과 지지 않으려는 투혼을 통해서 일상에 치인 피로감을 해소하고 '힐링' 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각종 힐링 문화가 판치는 작금의 한국 사회라지만 사실상 축구만큼 치유의 주요 매개 또한 없다는 점을 들 때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광범위한 열망을 이해할 수 있다. 홀트 역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스포츠야말로 '진짜 세상' 이 부과한 모든 걸림돌과 장애가 사라지고, 의지가 굳고 성실하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는 공평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는 유토피아라고 묘사했다. 즉 여러 꼼수를 부리는 작금의 국회 정치와 일상의 직장 생활에 치이는 국민들은 그만큼 축구 국가대표팀에 기대하는 바가 큰 것이다.
축구야말로 삶의 불공정한 편재에서 상실된 가치들을 재확인시켜주는 매개 행위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정신은 승리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이겨내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진 운동 선수가 그 시작이며 끝일 뿐, 사회와 같이 특권과 물질적 지원 같은 요소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홀트는 말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최강희 호의 '뻥축구' 를 지켜보며 삶의 피곤증을 해소하기능 커녕 오히려 더한 스트레스만 받는 꼴이 되었다. 그 어떤 투지도 혹은 전술도 부재한 채, 오직 키 큰 스트라이커 두 명을 상대방 진영에 박아놓고 수시로 공을 올리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시합에 지탄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국민들이 원한 것은 지더라도 시원하고 정당한 시합이지 그런 편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 국가대표팀을 둘러싼 여러 설들이 사실로 밝혀지며 최강희에 대한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최강희 역시 결국은 그 결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대표팀의 수장이다. 어린 선수들의 치기를 포용하고 다잡지 못한 것은 분명 그의 지도자 능력의 한계를 뜻한다. 또한 최강희가 스스로의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옵션들을 선보였어야 했다. 이란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끝까지 이동국을 고용한 것에는 분명 승부의 결과와 관계없는 최강희의 혹심이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최강희로서야 앞으로 국가대표에 그가 아끼는 애제자가 두번 다시 포함될 수 없으리라는 직감에 기회를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어쨌거나 필드 위에서는 단 몇 분이라도 그런 사심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것이 어린 선수들의 경동과 함께 최강희에게 국민들이 보내는 지탄의 이유이다.
독일의 철학자 랭크는 사회규범이나 가치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포츠는 이미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부상했다고 지적한다. 홀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스포츠의 이념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한 최강희 호는 국민들의 사회적 이념에 크게 위배되었음은 물론 그 어떤 힐링도 전달하지 못했다. 스포츠의 잔혹한 점은 결국 감독이 그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개개인의 능력을 선보여 승리를 이끌어도 언론이 지목하는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감독으로 귀결되는 까닭이다.
전후 미국 언론은 개성 강한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녹여낸 감독에게 가장 큰 찬사를 보냈다. 이 중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이클 조던과 악동 데니스 로드맨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NBA 결승 타이틀을 챙긴 필 잭슨 등이 있다. 알렉스 퍼거슨이 큰 존경을 받는 이유 역시 해당 원인에 기인한다. 하지만 최강희는 해외파와 국내파의 조합을 이루는 것에 애를 먹는다고 말하며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흑백 인종 간의 갈등마저 적절히 제압하며 하나의 팀워크를 형성해가는 유럽의 감독들에게 최강희의 변명은 그저 철 없는 푸념으로 들릴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문제의 일차적 원인으로 축구협회의 근시안적인 대응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히딩크 이후로 부임된 여러 감독들을 보자면, 그 선임 과정에는 장기적인 플랜 없이 그때그때 축구협회 내부 간의 정치적인 대립이 계속 곪아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명보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과는 별개로 그의 차기 감독 내정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저 홍명보의 '카리스마' 에 의지하는 축구협회를 보자면 이들 수뇌부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방안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장안의 화제인 '미생' 72회를 들여다보자. 장그래 팀에 새로 합류한 천 과장이 일보다 정치(게임)를 먼저 하려하자 곧장 오상식 팀장으로부터 재미있는 친구라는 일침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축구협회의 임원들 역시 협회에 출근하면 일 대신 정치를 먼저 하는 것에 체제화된 재미있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 이란전에서 연이어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음에도 자화자찬하는 기사들만 쏟아져 나오는 꼴을 보자면 그들이 정작 일보다는 정치 게임에 더 일가견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본 프레레는 동아시아 대회에서 중국과의 일전을 앞두고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4년 전의 자료를 성의없게 건넸다고 비판했다. 결국 본 프레레에 대한 국민들의 총성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 자는 바로 축구협회다. 더군다나 축구협회는 이제 그 방아쇠를 국민들의 2002년 월드컵 영웅 홍명보에게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싸움의 본질이 정화되지 못한 축구협회에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부디 더 이상의 희생양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축구협회의 이권과 자기그릇 챙기기가 계속된다면 오랫동안 화를 참아온 축구팬들의 마지막 방아쇠는 결국 축협을 향해 겨눠질 것이다. 미생에서 영업 3팀의 오팀장이 던진 뼈있는 대사를 축구협회에 전하며 글을 마친다.
"일을 해. 일을. 회사 나왔으면. 힘 빼지 말고."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