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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없는 민주주의, 그 결과는 '삼성 공화국'

[서평] 최장집 교수의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록|2013.07.17 20:44 수정|2013.07.18 11:42

▲ 서적 <어떤 민주주의인가>의 표지. ⓒ 후마니타스

한국에 대해서 물으면, 돌아올 많은 대답 중 하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2013년,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민주주의인가?'하고.

그런 물음을 직접 던지고, 해답을 찾아보려 애쓴 흔적이 여기에 있다. 최장집 교수가 두 명의 저자와 공동집필한 <어떤 민주주의인가>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책에는 한국의 다양한 정치상황, 사회적 배경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 정치의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한국에 필요한 것, 어떤 민주주의인가?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투표의 평등'이 실현되고, 국민의 효과적인 정치참여가 상당히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이바지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데올로기 정치에 묻힌 한국 정치구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민주화 이후의 정치를 이데올로기의 정치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이유는 현상적으로 한국 정치에서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하게는 정당정치가 현실의 사회경제적 문제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담론상으로나 정치 문화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정치에서 제거하는 방법이 아니라 정당 체제를 사회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본문 49P 중에서)

쉽게 말해서, 저자는 문제가 '정당 정치' 자체가 아니라 현실적 문제를 외면한 현재의 정치 현실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최장집 교수는, 한국에 필요한 것이 '현실에 뿌리내린 정당 정치'에 의한 민주주의 체제라고 설명한다.

"정당 중심의 현실주의적 민주주의관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당이 사회적 약자의 의사를 조직하고 서민 대중의 이익을 기반으로 사회에 뿌리내렸을 때, 처음 그것은 허약할지 모르나 '갈등의 사회화'를 통해 위력적인 정당으로 성장해 이후에는 보수적 정당 체제 자체에 변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전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 65P 중에서)

정당 없는 민주주의의 결과는 '삼성공화국'... 잘못된 정치개혁이 원인?

"정당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연결시키지 못할 때, 다시 말해, 민주 정부가 정당을 통해 강한 시민사회적 기반을 갖는 확장된 국가가 되지 못할 때, 현실의 민주주의가 사회 구성원의 일상적 시민 생활과 결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 경우 민주주의 체제의 운명은 오로지 대통령 개인에 매달려 있는 구조가 된다." (본문 227P 중에서)

<어떤 민주주의인가>에서 저자는 잘못된 방향의 정치개혁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 부패를 도덕적으로 규탄하면서 정당 민주주의의 기초를 없애는 데 급급해 온 그간의 잘못된 정치개혁은, (중략) 가난한 보통 사람들보다 점점, 시간적 여유가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 위주의 정치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덧붙인다.

또한 "냉전 반공 체제는 한국의 정당정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도 지적한다. 그 여파로 '이념적 스펙트럼 안에 폐쇄된 정당 체제'와 '좌파 대중조직 정당의 부재',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괴리'가 생겨났다고 가리킨다.

또한 "정당의 기능이 약화된 민주주의의 결과로 삼성공화국이 탄생했다"는 분석은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이다.

"정당 체제의 이념적·계층적 범위가 넓어지지 못했다는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기존에 있던 정당 체제마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문제가 먼저 강조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간 대통령들은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고 시민사회를 통합하는 데에서 정당을 기반으로 삼기보다는 정당을 우회하거나 초월하려는 욕구를 자주 드러냈다.

정당의 매개없이 국가를 운영하고자 헀을 때, 언론의 매개 기능과 재벌의 정책 로비 기능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고, 전문가 집단의 자문과 정책 '작성' 기능에 대한 의존 역시 커졌다." (본문 234P 중에서)

이에 대해서 '성장론'이 아닌 '분배담론'이 화두가 되어야 하며,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의제로 떠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한 분배 효과를 갖는 사회경제적 이슈와 정책 대안이 제기될 때 기존의 수혜 집단들이 불이익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고, 따라서 그런 정책 이슈가 선거 경쟁의 핵심 의제로 제기될 때 갈등은 사회화되고 정당체제는 재편성의 압력에 더 강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좋은 정당의 발전 필요"하다는 최장집의 신념, 안철수 신당으로 이어질까

결론적으로 최장집 교수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정당 정치의 약화이고, 좋은 정당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 차원에서, 그리고 권력의 견제를 위해서도 개인이 아니라 정당이 제 기능을 다하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이 있다. 바로 저자인 최 교수가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격인 '정치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이라는 사실이다. 기존의 여야 정당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토대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안 의원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세운 최 교수와 함께 어떤 길을 열어갈지 주목할만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정당의 중요성을 설파한 최 교수는 리더십을 갖춘 정치인과 그를 포함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정당의 부재가 지난 몇 년간 민주·진보 진영의 정권 창출이 실패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새정치'의 구호 아래에 안 의원이 어떤 정책기조를 세울지, 그리고 최 교수가 어떤 조언으로 방향을 잡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보인다.

그의 신념에 따르자면 진보 노선의 정당이 새로이 필요할 것이고, 이는 많은 사람의 예상(혹은 기대)처럼 안철수 신당 창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드러내는 대목이다. 책의 저자로서 최장집 교수가 독자들에게 물은 것을, 유권자로서 그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안 의원과 최 교수가 보여줄 것은, 과연 어떤 민주주의인가?
덧붙이는 글 <어떤 민주주의인가> (최장집·박찬표·박상훈 씀 | 후마니타스 | 2013.04. |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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