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지난 시절은 왜 그리도 가난했던지...

등록|2013.07.18 08:55 수정|2013.07.18 08:55

▲ 10년 전 이사하여 몇 년을 살았던 누옥이다. ⓒ 홍경석


덥다 덥다 한들 올 여름처럼이나 더울까? 사람을 지치게 하는 무더위는 해가 갈수록 더하다. 이는 지구온난화와도 무관하지 않은데 아무튼 그래서 한여름엔 이른바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개고기는 못 먹기에 삼계탕 내지 기타의 별식을 즐긴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들깨수제비이다. 하지만 수제비를 먹자면 반드시 떠오르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날 길러주신 유모할머니시다.

나의 생후 백 일 무렵 어머니를 잃는 바람에 아버지께선 같은 동네서 혼자 사셨던 할머니께 나의 양육을 부탁하셨다. 그리곤 돈을 벌어오겠다며 툭하면 타관객지로 떠도셨다. 따라서 초가집의 가난한 집에 사셨던 할머니께선 허구한 날 그렇게 수제비를 상에 올리셨다.

이러한 빈곤의 상차림은 추석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래서 어느 해 추석엔 보리가 반 이상이나 들어간 시커먼 밥에 신김치 달랑 하나, 그리고 안 됐다며 옆집에서 가져온 송편 한 접시가 전부였다.

대체 어디로 가시어 뭘 하여 돈을 버시는지 당최 함흥차사였던 아버지께서 돌아오신 건, 그같이 매우 허술한 추석 밥상을 입에 넣고 있던 추석날 아침이었다. 너무도 초라한 밥상에 대경실색하신 아버지께선 "이 모든 게 내 탓"이라며 당신을 자책하시더니 할머니께 두툼한 봉투에 담긴 돈을 건네셨다.

이어 푸줏간에 가시어 돼지고기를 다섯 근이나 사 오시더니 고추장 주물럭 불고기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이에 신이 난 할머니께선 굽는 냄새만으로도 황홀하기 짝이 없는 불고기를 만드셨다. 그날 점심에 나는 그 맛있는 불고기를 그야말로 배가 터져라 먹었는데 그 바람에 놀란 배탈로 말미암아 설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세월은 여류하여 두 분께선 벌써 30여 년 전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하는 곳으로 떠나셨다. 반면 나는 반백의 머리에 치아마저 부실한 50대 중반의 중늙은이가 되었다. 두 아이는 모두 성년이 되어 직장인인데 아직 미혼이다.

따라서 올 추석에도 차례를 지내려 내려올 것이다. 요즘엔 명절의 시류마저 바뀌었다던가? 그래서 아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 해마다 추석을 쇠러 집까지 오는 게 번거로울 듯 싶으면 차라리 우리 부부가 아들 집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고려코자 한다.

딸은 거주지가 서울이고 아들은 경기도 용인이니까 그리한다면 딸 또한 쉬 내려올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지난 시절,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이었음에도 하지만 너무도 가난하여 초라한 밥상이 주를 이뤘었다. 고로 그 시절이 서러워서라도 추석의 상차림은 다소 푸짐하게 차릴 요량이다.
덧붙이는 글 없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