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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많이 버린다고 쏴죽여도... '정당방위법' 정당한가

"총으로 분쟁해결 부추겨" 지적... 미 법무부 장관 "재고해야"

등록|2013.07.18 15:15 수정|2013.07.18 17:23
빌리 쿠치(23)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엉뚱한 집 문을 두드렸을 때 그는 한 손에는 담배가, 다른 한 손에는 셔츠가 있었다. 새벽 4시가 지난 시간, 집주인 그레고리 스튜어트(23)는 그의 아내와 아이가 깰까봐 걱정됐다. 잠시 후, 술에 취한 쿠치가 또 다시 스튜어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스튜어트의 집을 파티가 열리는 장소인 것으로 착각한 것. 스튜어트는 아내에게 '911에 신고하라'고 이야기하고, 스미스 앤 웨슨 반자동식 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앞마당으로 나갔다.

스튜어트는 쿠치에게 '이곳에서 나가라'고 했지만 술에 취한 쿠치는 파티에 참석한 어떤 남자가 자신에게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내가 널 쏘게 만들지 마.", "난 널 쏘고 싶지 않아." 스튜어트는 거듭 경고했다. 그러자 쿠치는 그의 손을 들고, '불 좀 달라'고 하면서 스튜어트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빵!'

스튜어트는 쿠치에게 총을 쐈고, 쿠치는 5주 동안 혼수 상태에 빠졌다 깨어났다. 스튜어트는 경찰에 체포됐지만 풀려났다.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Stand your ground law·정당방위법)' 덕분이었다. 플로리다주 기준에 따르면, 술에 취해 집을 잘못 찾은 비무장 남성을 향해 총을 쏜 스튜어트는 죄가 없다.

플로리다주 법 통과 후 정당방위 살인, 3배 늘어나

▲ 플로리다는 2005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정당방위법)'을 도입했다. 왼쪽은 플로리다와 유사한 법을 도입한 다른 주(State) 현황. 오른쪽은 미국 전국적으로 '정당방위 살인'이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표. <워싱턴 포스트> 인포그래픽. ⓒ 워싱턴 포스트


무장한 10대 흑인 소년을 범죄자로 오인해 물리적 충돌 끝에 총으로 살해한 조지 짐머만이 플로리다주 법원에서 무죄 평결을 받은 이후, 짐머만이 풀려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당방위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플로리다주는 2005년 처음으로 정당방위법을 도입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01년 9.11 테러,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이후 '무법상태'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안전하지 않으며 사법 시스템이 더 이상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 허리케인 '이반'이 미 남부를 강타하면서 플로리다 지역에는 약탈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때, 미국총기협회(NRA) 첫 여성 회장이자 로비스트인 마리온 해머는 미 법안대체협의회(ALEC)와 함께 플로리다주의 정당방위법 제정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법안에 따르면, 죽음이나 신체적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합리적으로 믿는다면,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영역을 지킬 수 있는 권리', '힘 대 힘으로 맞설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를 위해 '치명적인 힘'인 총기 사용도 허용된다. 플로리다주 의회는 이러한 정당방위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정당방위법은 자신의 고유영역을 지키기 위해 가택 침입자에게 총기 사용을 허용하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을 집에서 공공장소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짐머만이 트레이본 마틴에게 총으로 죽인 곳 역시 길거리였다. 

이러한 '정당방위 살인'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플로리다주 사법집행 당국에 따르면, 정당방위법이 통과되기 전 5년간, 개인이 저지른 살인을 검사가 '정당하다'고 인정한 건수는 매년 평균 12건. 하지만 법안 통과 후 5년간, 이 숫자는 매년 평균 36건으로 세 배가 늘어났다. 미국 전체적으로 보면, 2005년 192건이었던 '정당방위 살인'은 2010년 278건으로 증가했다고 FBI가 집계했다. 플로리다주와 유사한 법안을 채택하고 있는 주는 30개가 넘는다. 

플로리다 지역지 <템파 베이 타임스>가 지난해 3월 플로리다 31개 신문 보도내용과 공식 기록을 통해 분석한 결과, 2005년 이후 살해를 하거나 상해를 입힌 이후 정당방위를 주장한 사례는 총 130건. 이 가운데 50건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템파 베이 타임스>는 "처음 5년간은 정당방위를 주장한 사건이 93건, 이후 1년 반 동안은 37건으로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정당방위법, 오히려 살인 부추기나

미국 흑인소년 살해 혐의 짐머만조지 짐머만이 2013년 7월 12일, 미국 플로리다 주 샌퍼드 세미놀 카운티 형사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세미놀 카운티 조사관 롭 헤머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무장한 10대인 트레이본 마틴에게 총을 쏴서 죽인 짐머만은 2급 살인혐의로 기소됐다. ⓒ EPA/연합


정당방위법이 오히려 살인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플로리다 총기사용 금지 연합 대표 아서 헤이호는 법안 통과 당시 "주 정부가 시민들이 분쟁을 총으로 해결하도록 부추긴다"면서 "이것은 살인을 저지를 권리를 주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허핑턴 포스트>는 정당방위법이 '먼저 쏘고 나중에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고 꼬집었다.

미 지방검사 협회 부회장 스티븐 얀센은 "정당방위법이 범죄 기소를 봉쇄한다"면서 "우리는 피고인이 정당방위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것도 종종 목격자가 총을 쏜 사람 한 명밖에 없는 상황에서"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허핑턴 포스트>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정당방위법 통과 이후 발생한 '충격적인 플로리다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사례'를 소개했다. 그 중 몇 개를 보자.

- 아내와 섹스하는 남자 총으로 쏴서 죽여(2012년)
70세의 랄프 왈드가 자신의 전 이웃이었던 월터 콘리(32)가 자신의 집 거실에서 그의 아내(41)와 성관계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총으로 쏴서 죽였다. 왈드는 낯선 사람이 그의 부인을 강간하는 줄 알았다고 법정에서 진술했고,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를 받았다.

- 쓰레기 봉지 때문에 이웃에게 총 쏴(2009년)
케네스 알렌은 루커스 로젠블룸이 허용된 6개보다 더 많은 8개의 쓰레기 봉지를 가져다놓아서 화가 났다. 둘은 말다툼을 했고, 로젠블룸이 다가갔을 때 알렌은 로젠블룸의 배와 가슴에 총을 한 발씩 쐈다. 알렌은 이후에 로젠블룸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려고 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경찰은 알렌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그를 체포하지 않았다.

- 라이벌 마약 판매상 총으로 죽여(2009년)
웜스 플레리몽은 루커스 터미투스를 총으로 쏴서 죽였다. 플레리몽은 터미투스가 자신의 아파트에 총을 휘두르면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플레리몽의 여자친구는 경찰에게 "터미투스가 플레리몽에게 자신의 구역에서 약을 팔지 말라고 해서 총을 쐈다"고 진술했다. 플레리몽은 무죄를 인정받았다.

-10대가 귀 안 들리는 웨이브러너 도둑 죽여(2011)
잭 데이비스(14)는 한 남자가 자신의 웨이브러너(수상스포츠 장비)를 훔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총을 쏴서 죽였다. 그의 이름은 레이날도 무노즈. 데이비스의 가족들은 무노즈가 자신들을 위협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노즈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무노즈는 귀가 안 들리고 말도 똑바로 할 수 없다며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데이비드는 기소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남의 집 문을 두드렸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던 쿠치는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은 채 깨어났다. 조울증을 앓고 있었던 그는 누군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눴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을 쐈던 스튜어트 역시 이웃의 시선을 피해 은신해 살고 있다.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평결을 받은 짐머만이 앞으로 그래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는 16일 "이웃간의 위험한 분쟁의 씨앗을 뿌린 정당방위법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면서 이 법안에 대한 재고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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