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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국정원, 대통령이 민주적이면 민주적인 기관 돼"

등록|2013.07.24 09:46 수정|2013.07.24 09:46
'노무현' 

그가 떠난 지 벌써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 특히 새누리당과 조중동 그리고 보수세력은 그를 향한 증오의 마음을 거둘 마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NLL를 포기'해 김정일에게 나라를 갖다 바쳤다며 "이적행위, 반역의 대통령"이라는 극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7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에는 포기 발언이 없었습니다. 국민 60%도 노 대통령이 NLL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이 '실종'된 것으로 나타나자 노 대통령이 폐기를 지시했다고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NLL회의록'은 곁가지일뿐 본질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그런데 이번 사건 본질은 'NLL회의록' 아니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입니다. 회의록은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지난 달 24일 남재준 국정원장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하면서 국정원 대선개입은 사라져버리고, NLL회의록으로 한 달을 허비했습니다. 박근혜정권과 국정원이 'NLL회의록'을 공개한 이유가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조사를 물타기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국정원 선거개입에 가장 큰 활약을 한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오마이TV>  '솔직 토크-국정원 진실을 말한다'에 출현해 "회의록 실종에 관심 끄고 국정조사에 관심 가져달라"며 "NLL이 현재 유지 돼 있지 않냐, 자꾸 사실관계를 디테일하게 들어가다 보니 이 사건을 왜 꺼냈는지 목적은 사라지고 사실관계만 너저분하게 늘어놓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국정원 선거개입은 민주주의를 훼손한 일입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국정원이 정권에 충성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설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국정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정보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인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앉힌 것이 국정원 선거 개입 비극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국정원장을 지극히 '사적'인 자리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임명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MB는 그렇게 했고, 국정원은 민주 선거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 끝나"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그는 국정원을 '사적'인 기관이 되는 것, 더 나아가 '정권의 국정원'이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지난 2003년 6월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정보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권이 국정원에 대해 지금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아 불안해 할지 모르나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는 이제 끝내고 국민을 위한 국정원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게 나의 뜻"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단한 선언입니다. 정권을 위한 국정원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정원을 되기를 그는 바랐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 다짐과 약속을 집권 5년 내내 지켰습니다.

지난 2004년 11월 5일에는 국정원 과거사 진상규명 발전위원회 위원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정당하지 않고 신뢰받지 못하는 국가기관은 일할 수 없는 만큼 국가 전체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결단과 의식을 치러내야 한다"며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과거사 진상 규명과 관련해 국가기관이 과거 잘잘못을 철저히 가려 국민 앞에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발언은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는데도 "국정원 스스로 개혁"할 것을 요구한 박근혜 대통령과 전혀 다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정을 저지른 주체가 스스로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진상규명위가 과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듯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박 대통령은 발벗고 나서면 좋겠습니다.

"국가기관 불법행위 철저히 밝혀야"

지난 2005년 7월 이른바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이 터지자 노 대통령은 또 다시 국정원 개혁을 강조합니다.  같은 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안기부 불법도청사건과 관련해 "정부는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사실대로 철저히 밝혀야 한다"며 "유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아직도 해야 할 조치가 남아 있다면, 즉시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선은 국정원의 신속하고 철저한 자체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8월 5일에는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합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8월 8일이른바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과 관련한 기자간담회 ⓒ 노무현재단


"수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건의했지만 나는 단 한마디도 국정원더러 정치에 관한 정보 모아오라고 한 일이 없고, 국정원이 누구누구 뒷조사 해가지고 겁 좀 주라고 단 한마디 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위대해서 안 한 게 아닙니다. 불법한 일은 반드시 터져 나오게 돼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갖고 있는 신념입니다. 제 신앙은, 불법은 묻어놓으면 묻힌 깊이만큼 폭발력이 더 크게 터져 나온다, 나는 불법한 비밀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희망을 가집니다. 박근혜정권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데 갖은 방법으로 딴죽을 걸고 있습니다. NLL대화록이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집권 초이기때문에 진실을 잠시 묻어줄 수 있지만,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입니다. 그게 정의입니다. 오히려 지금 잠시 묻어두면 정권 말기에 가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은 불법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신념으로 국정원을 사사로이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MB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대선개입이라는 반민주주의를 영원한 비밀로 묻을 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정의를 부정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지는 끊임없습니다. 지난 2006년 3월 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 행사에서 "국정원, 이제 겁 안 나지요?"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개혁을 할 과제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한다면, 지금처럼 가면 제도적으로 크게 개혁하지 않아도 일탈하지 않고. (중략) 국정원은 대통령이 민주적이면 민주적인 기관이 되고, 그전까지는 못 그랬습니다만. 지금 와 있는 수준은 대통령이 나쁜 일 시키지 않으면 혼자서 나쁜 일 하지 않을 수준까지 와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정원은 대통령이 민주적이면 민주적인 기관 돼"

"국정원은 대통령이 민주적이면 민주적인 기관이 된다"는 말은 놀라운 통찰입니다. 국정원이 대선개입을 한 것은 바로 MB가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대선개입에 '나몰라'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부재입니다. MB는 이미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더 이상 민주주의 철학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다릅니다. 민주공화국 대통령이라면, 국정원이 민주적 기관이 되도록 민주적인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국정원 같은 권력기관을 대통령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되돌려 놓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습니다. 임기 마지막해인 지난 2007년 1월 23일 신년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권력기관이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정권에 봉사하던 권력기관이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국정원은 본연의 국가안보와 산업기술의 보호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상 더 국정원의 정치사찰, 뒷조사, 도청은 없을 것입니다. 국세청이 나서서 정치자금을 거두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국정원, 군, 경찰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조사해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량한 국민들이 권력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낮은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권력도 줄였습니다.

"국정원, 민주주의 반하는 대통령 지시는 거부할 수 있어야"

정권에 봉사하던 권력기관을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만들었던 노 대통령은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이에 대한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며 "상사의 명령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나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대통령의 지시도 거부할 수 있는 '조직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 지시도 거부할 수 있는 국정원"이 되라는 대통령 노무현 말에 문득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 달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만 불구속 기소하고, 부하직원들은 기소유예했습니다. 상관 명령을 거부할 수없었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대통령 지시는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댓글'달기가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노무현정부 국정원과 MB정부 국정원 중 어느 국정원이 진정 대한민국과 국민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국정원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노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국정원이 대통령보다는 국민 신뢰를 얻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07년 9월 21일 재임기간 마지막으로 국정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지만 오로지 대통령의 신뢰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나가야 합니다. 국민들 마음속에서 신뢰를 얻는 것이 조직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국정원 정통성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것을 MB정권 국정원은 망각해버렸습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 역시 MB정권 국정원을 더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각한 국정원이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들고자 했던 국정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법과 제도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점점 MB국정원을 바라는 같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기입니다. 노무현이 참 그리운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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