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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 공세, 북한만의 전유물 아니다

[주장]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번영 위한 전략적 선택

등록|2013.07.25 19:00 수정|2013.07.26 07:29

▲ 지난 2월 23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평양 인민무력부 청사의 김일성ㆍ김정일 동상 앞에서 '전군당강습지도일꾼회의'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올해는 종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60여 년 전 남북한은 야만의 결정체로 일컬어지는 동족살육 전쟁을 벌인 아픈 추억이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역사를 통해 배우고 경험한 1, 2차 세계대전은 민족을 달리하는 나라들이 자국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벌인 타민족 간 전쟁이었다. 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의 경우 1부모 슬하에 태어난 두 형제간 싸움과 같았다. 남북한은 전쟁으로 인해 전체 인구(당시 남북한 모두 2100만 명 추산)의 10%에 가까운 200만 명 사상자를 냈고, 전체 산업시설과 도시의 60% 이상이 잿더미로 변했다.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을 양산했고, 수많은 전쟁고아를 잉태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그러니까 1970년 무렵까지 남북한은 선진국의 원조에 의존해 국가운영을 해나가는 세계에서 최빈국 지위를 이어갔다. 하지만 남북한의 근면한 국민성은 기적같이 절대 빈곤 상황을 극복해 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중국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모범적인 국가로 변모했다.

물론 이후 변화된 세계체제(사회주의 공동체 붕괴)로 인해 변환기를 맞았고, 경직된 정치체제의 한계로 외부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좌초되어 갔다. 중국과 베트남, 동유럽 같이 시장경제로 전환에 성공하지 못한 북한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다. 반면 남한은 근면한 국민성과 시장경제라는 생산성 극대화 체제 덕분에 기적 같은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물질적 기반 위에 태동한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확립으로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인권과 자유가 지속적으로 성장해가는 나라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베트남 역시 외세의 개입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남한과 유사하게 외세의 개입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했던 베트남은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통일을 이루었고 현재는 경제부흥에 올인하고 있다. 중국 역시 대만과 이미 통일을 이루거나 다름없는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대만은 안정적 관계는 물론 서로의 장점을 활용, 경제발전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합리화될 수 없다

남북전쟁(6.25전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북한이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조국해방전쟁' 논리는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 아주 전근대적이고 주관적 억지의 성격이 있다. 미-러의 개입으로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해 일제식민통치 상황에서 벗어난 한반도에서 남북한은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진 강대국의 대리국의 면모를 벗어날 수 없었다.

초기에 북한은 러시아의 군정통치를 받았다는 점에서 남한과 형편이 동일했다. 하지만 1948년 외국 군대의(러시아군) 완전 철수를 기점으로 자국만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자주독립국가로서 자격있는 것처럼 주장하며 여전히 미군정 상태의 남한을 해방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전쟁 불가피론은 정당화될 수 없다. 누가 누구에게 해방을 요구했던가? 더구나 오늘 같이 국민 개개인의 권리가 신장된 남한사회에 대해 식민지 운운하는 논리는 더욱더 어불성설임이 분명하다. 북한은 전쟁의 성격을 '조국해방전쟁'이라 칭하였고, 남한은 '자유수호전쟁'이라 칭하였다. 강대국의 대리전쟁, 북한의 일방적 남침전쟁, 자유 수호를 위한 정의의 전쟁 등 남북전쟁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문명적 최악의 행위였다는 점이다. 이제 더이상 남북한은 물리적 충돌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평화협정 공세, 북한만의 단골메뉴가 아니다

남북한은 즉각 평화협정을 체결에 나서야 하며 한반도 문제를 이성적·합리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오랜 세월 북한의 전유물이었던 평화협정 주장에 대해 남한 역시 외면할 이유가 없다. 남한이 도리어 적극 주장해야 한다고 본다.

정전협정은 그 함의에 있어 불안정성이 있다. 휴전은 전쟁의 종결이 아닌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언제든 사소한 갈등을 빌미로 전쟁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후 줄곧 남북 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그 이유는 전쟁을 먼저 일으킨 당사자로서 언제든 상대의 징벌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전쟁을 통해 겪은 엄청난 물적 피해, 국제적으로 동의 받을 수 없는 환경 때문으로 보인다.

6.25 당시 북한의 최대 지원국이었던 이웃나라 중국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불란을 원치 않고 있으며 북의 공격적 태도를 조건 없이 지원하는 자세를 바꾼 지 오래 되었다. 이를 인식한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보다 엄밀히 말해 현 지배계층의 기득권 보장)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변화를(시장경제로의 전환) 시도하고 있지만 외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북한이 외부와의 교류 과정에 체제붕괴가 일어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당연히 완고하고 조심스럽게 외부와 교감하려 할 것이다.

변화를 모색하는 북한의 딜레마

▲ 김기웅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오른쪽)과 북측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이 지난 17일 오전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리는 남북개성공단 4차 실무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현재 자신들이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핵 포기의 대가로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받는, 이른바 북미평화협정, 북미수교, 남북평화협정을 주장하고 있다. 남한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북한의 현재 기득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안정적 변화를 통한 점진적 통일을 이루어갈지, 아니면 지속적 압력과 고립 제재를 통한 붕괴를 유도할 것인지 말이다.

필자는 전자를 지지한다. 남한에 먼저 와있는 북한 이주민의 남한체제 적응 실태를 연구해본 연구자들이라면 대체로 필자의 논리에 동의할 것이다. 오랜 세월 북한식 사회문화에 익숙해진 북한주민들이 남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는 과중한 어려움과 비용을 수반한다.

이러한 북한이주민들을 경험한 남한국민들 다수가 북한이주민들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가? 남한사회를 먼저 경험한 북한이주민 대다수가 남한사회에 대해 호의적이기만 한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2000명당 1명 꼴로 만나는 북한이주민들과(정전 이후 남한으로 이주한 북한 주민은 2013년 현재 모두 2만5000명 수준이다) 2명당 1명꼴로 만나는 북한주민 전체와의 조화는 전혀 다른 규모의 문제점들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한의 급격한 변화는 한반도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들 소지가 있다.

너무나 달라진 남북한 현실

2011년 유엔 통계에 따르면 남한의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 수준이고 북한은 세계 125위다. 총 GDP는 100배 정도 차이가 난다. 그 외 여러 사회 지표들 역시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더 이상 북한을 감정적으로 다루기보단 이해와 전략으로 다가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가치와 기준에 호응하기를 요구하기 보다는 장기적 전략으로 포용성과 신축성을 보여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남한이 먼저 교류의 문을 활짝 열고 다가서도 북한이 주춤할 상황인데 오히려 북한을 봉쇄하고 외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 하에서 대북정책은 접근 금지와 교류 억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북한 정권 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남한은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미룰 이유가 없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북한핵 포기를 강제해 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민간 차원의 교류나 방북을 적극 장려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은 법률적 규제 장치를 통해 관리하면 된다고 본다. 과거를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 얽매여 통일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출 필요가 있는가?
덧붙이는 글 글을 쓴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지난 1993년 탈북해 이듬해 9월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1년부터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고, 대성그룹 기획팀을 거쳐 2008년 9월부터 2년간 미국에서 연수를 하고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를 창립했습니다.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www.facebook.com/atbp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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