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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심한 나를 감동시킨 남편의 한마디

[공모-있다 없으니까] 가스레인지에 냄비 올려놓고 출근한 날

등록|2013.07.25 18:04 수정|2013.07.26 09:50
지난 금요일 아침은 남편의 부재로 더 바쁜 하루였습니다. 이튿날 비가 와서 아들이 학교에서 자전거를 두고 왔기 때문입니다.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늘상 같은 일상이었는데,

"엄마! 나 자전거 학교에 있어."
"뭐? 그럼 태워줘야 하잖아!"

그때부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아침밥 차려주고, 머리 감고, 화장하고, 뒷설거지까지 했습니다. 설거지하면서 여름이라 너무 더워 국을 그냥 두고 가면 상할 것 같아 냄비를 가스레인지 불 위에 올렸습니다. 얼른 끓여놓고 가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그냥 두고 출근을 해 버렸던 것입니다.

6시 조금 넘어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당신 가스 위에 뭐 올려놓고 갔어?"
"감자 옹심이 국이야."
"당신 가스 불 안 끄고 갔지?"
"내가?"
"정말 천만다행이다. 냄새도 없고 들어오니 가스 불 소리 때문에 세게 틀어놨으니."

냄비 밑바닥은 더 깨끗해졌습니다. 냄비에 담긴 국자와 주위에 있던 고추장 통이 다 찌그려졌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오전 7시 20분부터 11시간 정도 가스 불 위에 있던 냄비는 더 깨끗해져 있었고, 그 속에 담아둔 국자는 녹아내렸고, 가까이 있었던 고추장 통도 오그라들어 있었습니다. 역시, 냄비는 좋은 걸 사용해야 하는가 봅니다.

▲ 카카오톡으로 남편과 이야기하는 모습. ⓒ 김혜숙


"금방 끓여놓고 나가려고 그랬는디…."
"돈 벌었어."
"왜?"
"집 안 태웠으니 말이야."
"ㅎㅎㅎ."
"당신이 복을 많이 지었는가 보다."

뭐라 큰소리칠 줄 알았는데 남편의 말에 감동 받고 말았습니다. 하긴, 그렇게 된 일 되돌릴 수도 없는데 야단해봤자 뭐하겠습니까.

차츰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남편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때 같으면 꼭 한마디 했을 터인데 말입니다. 온종일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나의 깜박증으로 큰일 내겠구나.'

남편이 뭐라고 하기 이전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당신이 있었으면 안 태웠을 터인데… 아니, 당신이 없으면 안 되겠어."
"그렇지? 내가 필요하지?"
"당근이지."

우린 서로 쳐다보며 깔깔깔 웃었습니다. 이제 진정 서로 위하는 필요로 하는 부부가 되어가나 봅니다. 난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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