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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돈, 그리고 대리기사

등록|2013.07.28 08:04 수정|2013.07.29 15:44
지난 26일, 새벽입니다. 언덕배기 아파트단지를 터덜터덜 걸어내려오면서 하늘을 봅니다.  장마철이라지만 하늘은 맑기만 합니다. 얼마만인가요. 이 대리일을 하면서 하늘을 편히 쳐다볼 수 있었던게….

"…기사님, 제일 힘든 게 뭔지 아세요? … 외롭다는 거 …옆에 자기와 함께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
"…손님, 제일 힘든 게 뭔지 아세요?  이렇게 고단하게 밤길 달려도 처자식 먹여살릴 수 없다는 거…."

조금 전 나눴던 대화를 되새기며 그렇게 하늘 한번 더 봅니다.

강남이 5만원?

▲ 수지 신봉동사거리에서 대책없이 셔틀을 기다리다가 잡은 오더입니다. 에고 강남까지 5만원이라고? ⓒ 김종용


수지 신봉동 OOO아파트 - 강남  50k

으잉?  순간 내 눈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 더 빨랐나봅니다.  신봉동 사거리, 버스는 끊겼고. 천상 대책 없이 육교 밑에서 셔틀 오기만 기다리다 잡은 오더입니다(셔틀- 새벽에 대리기사들을 유료로 이동시켜주는 사설버스를 말합니다).

심봤다.

손님에게 전화 합니다.

"…뚜뚜뚜~"
한참을 전화 받지 않습니다. 아고 이거 꽝이구나… 아쉬운 맘에 몇 번 더 돌려본 전화,

"…아 저 씨… 아저 씨, 오실 때 죄송…하지…만… 소주 한 병과 … 오징…어 … 담배… 하나만...사다 주실래요.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술에 푹푹 절은 목소리입니다. 마치 애원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남자입니다. 음… 내 스마트폰의 화면을 점검합니다. 카메라, 녹음기… 언제라도 바로 녹음하고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점검해봅니다(대리기사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어하는 증거 확보를 위해 녹음기와 카메라 어플은 필수입니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술과 안주, 담배를 사들고… 아파트 언덕으로 걸어갑니다. 근데 왜 꼭 대리오더는 아파트 꼭대기 아니면, 그 너머 뒤편인 건지.

만두 속이 될지라도, 대리기사는 간다

OO아파트 OOO동, 다시 확인 전화하고 7층을 올라갑니다. 헉!

소도둑놈 같은 놈이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재빨리 스마트폰의 녹음기를 돌려댑니다. 맞탱이 간 손님, 나를 붙잡고 빨리 자기 집으로 들어가자고 보챕니다. 망설여집니다.

저 컴컴해보이는 남의 집 들어가서 무엇이 될꼬… 으음. 설령 내 살이 이 집에 와서 만두 속이 될 지라도. 대리기사가 가야하는 길이라면, 들어갑니다.

넓은 아파트 집안입니다.  음.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소주병과, 외로움, 그리고 대리기사수십병의 소주병, 널려있는 안주쪼가리, 그사이에 구겨져 술취한 손, 거기에 대리기사가 하나 더 얹어집니다. ⓒ 김종용


20여일을 이러고 있었다 합니다. 오직 소주와 비루한 안주, 담배를 물어댄 채. 자세히 들여다보니 험한 얼굴의 사람은 아닙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순하고 지친, 가엾기까지 한 얼굴입니다. 이미 두 명의 대리기사가 이렇게 술 사들고 와서 손의 푸념을 들어주곤, 몇 만 원 받고 간 거 같습니다. 이제 오늘밤에는 내가 마지막 방문한 대리기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51, 아직껏 미혼, 노부모님들은 생존해 계신 것 같고. 그동안 해본 일이라곤 사기 당하고, 택시기사하고, 알바해보고…. 돈 없는 사람은 아닌 거 같고. 마음은 여리고 착한 사람 같은데, 스스로 무기력과 자책에 빠진 사람. 한 시간 반 동안 앉아 나눈 대화 중 파악한 사항입니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택시기사도 하고 알바도 해보고 여러가지 해봤어요. 그런데… 정말 하지 못할거 같은 게 바로  대리기사였어요. 대리기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해요.어떻게 그 밤을…."

우리 대리기사,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단돈 1~2만 원 벌기위해서 언덕배기를 오르내리고 골목길을 배회하며, 강남대로도 무단횡단해버립니다. 비오는 밤, 숲속길을 외롭게 걸어가도 겁이 날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엾은 유한계층의 술심부름과 푸념을 다 받아넘길 줄 알고, 인간적 위로까지 해줍니다.

돈 7만 원 주머니에 넣고, '흐뭇한' 마음으로 언덕길을 내려옵니다. 이런 근사한 아파트 하나 없고, 벤츠 자동차도 없지만 뭔가, 내가 더 부자인 거 같은 밤입니다.

덧붙이는 글 자신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기는 것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행위입니다. 함께 가는 순간만이라도 서로 소중한 이웃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김종용님은 전국대리기사협회의 위원장입니다. www.wedriver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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