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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여자들이 춤을 췄다는 무덤

일본 나라현 아스카무라 이시부타이 돌무덤의 유래

등록|2013.07.27 10:46 수정|2013.07.27 10:46

▲   서쪽에서 바라본 이시부타이 무덤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돌이 북쪽 돌로 약 64 톤, 오른쪽 돌이 남쪽 돌로 77 톤 정도로 추정됩니다. ⓒ 박현국


25일 오후 나라현(奈良縣) 남쪽 아스카무라(飛鳥村)에 있는 이시부타이(石舞台) 무덤에 다녀왔습니다. 이 무덤은 원래 흙으로 덮인 봉분이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봉분을 덮었던 흙이 흘려내려 돌이 드러난 횡혈실 석실 무덤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견된 횡혈식 석실 무덤 가운데 가장 큽니다. 

이시부타이는 석무대(石舞台)라는 말로 이 지역에서 전해져 온 말입니다. 봉분을 덮은 흙이 빗물에 흘러 사라지자 달밤이면 여우들이 여자로 변해서 이 돌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면서 놀이판을 벌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   이시부타이 무덤 남쪽 선도 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 박현국


그밖에 이 무덤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큰 돌로 무덤을 덮었기 때문에 이시후도야(石太屋)라고 하다가 이 발음이 변해서 이시부타이가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무덤 부근 마을에서는 이시부타(石蓋)라는 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시부타이 무덤은 이 부근에 살았던 권력자의 무덤입니다. 이 무덤에 사용된 돌은 화강암 30여 개입니다. 대략 모두 합해서 2300톤 정도입니다. 이렇게 많은 돌은 대략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곳으로 가져다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   아스카무라 이시부타이 무덤 현실은 선도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모두 배수시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 박현국


지금은 돌이 드러나 있지만 이곳에 봉분으로 흙이 덮여있었을 때는 대략 동서 55미터, 남북 52미터 정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장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무덤을 만든 때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남아있는 부장품으로 대략 7세기 초 축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돌을 쌓아서 만든 무덤 안 현실(玄室)은 길이 7.8 미터, 너비 3.4 미터, 높이 4.8 미터이고, 현실로 이어지는 선도(羨道)는 길이 11 미터, 너비 2.5 미터입니다. 현실에서 발견된 응회암조각 등으로 미루어 보아 현실에 돌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아스카무라 이시부타이 무덤 현실이라고 하는 무덤 내부에는 돌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박현국


사람들은 죽은 뒤 무덤 속으로 들어갑니다. 살아서 자신의 무덤을 만들기도 하고, 죽은 뒤 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무덤을 만들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 왕들은 수많은 돌로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에 살던 사람들도 돌로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죽은 뒤 돌처럼 변하지 않고 단단한 세상에 들어가고 싶었나봅니다. 돌로 만든 큰 무덤은 이집트나 일본 모두 죽은 사람의 단단한 세상이 되어주지 못하고 관광객의 구경거리가 되어 후손들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   이곳에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에서 응회암 돌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돌 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덤 크기로 보아 사진에 보이는 돌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높이는 대략 1미터 50 정도입니다. ⓒ 박현국


참고누리집> 재단법인 아스카무라관광개발공사, http://www.asuka-park.go.jp/ 2013.7.26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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