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밑지면 말쥬, 뭐..."

충청도 언어의 탁월한 경제성

등록|2013.07.30 14:20 수정|2013.07.30 14:20

▲ 생수 배달 아저씨가 늘 공짜로 주신 생수 덕분에 무더위와 슬기롭게 싸울 수 있습니다. ⓒ 홍경석


오전 2시. 새벽의 정적을 흔들며 회사 건물 현관 중앙의 회전문을 열고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섭니다. OO일보의 배달원이시죠.

"안녕하세요?"
"네. 오늘도 고생하시네요?"

그 아주머니는 OO일보와 스포츠신문 한 부씩을 제가 앉아있는 안내데스크 위에 놓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수고하세요~"

그 아주머니가 놓고 간 신문은 공짜입니다. 그리고 그 신문을 무료로 보는 사람은 실명을 밝힐 순 없으되 아무튼 직원 중의 한 명이죠.

또 다른 △△일보를 취급하는 아저씨는 오전 6시를 즈음해 오십니다. 그 아저씨 또한 공짜로 신문을 한 부 주시는데 그 신문이 바로 우리 경비원들 모두가 두루 읽을 수 있는 참 고마운 정보에 다름 아니죠!

오전 5시 반을 전후해서는 직원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분들이 오십니다. 이분 들 중 간혹 '변덕이 나면'(?) 우유 등의 음료를 역시도 그냥 주시는 경우도 있죠.

"수고하시는데 드시고 하세요."
"뭘 이런 걸, 하여간 고맙습니다!"

이상의 경우는 야근할 때의 풍경입니다. 어제(29일)는 주간근무 중이었는데 오후 3시께 생수를 취급하는 분이 트럭을 몰고 오셨더군요. 한데 그 분 역시 우리들이 마시는 생수만큼은 돈을 안 받고 공짜로 주십니다.

어제도 빈 생수통을 하나 가져가면서 대신 싱싱한 생수를 또 한 통 내려놓으시더군요. 그래서 당연히 "매번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지요. 아울러 가뜩이나 날씨도 더운 터에 고생이 많으시겠다 싶어 잠시나마 웃어보자고 가벼운 농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공짜로 물을 마셔서 좋지만 아저씨는 이러다 혹시 부도라도 나면 어쩐대유?" 그러자 즉시로 돌아온 대답이 그만 웃음보를 터지게 하더군요.

"밑지면 말쥬 뭐."

누군가는 저와 같은 충청도 사람들의 그 놀랍고 탁월한 언어의 경제성을 칭찬한 바 있습니다. 

예컨대 누군가 사망했다손 치자고요. 경상도 사람들을 이를 "운명했따 아임니까"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은 "죽어버렸어라~"이러고요. 그러나 충청도 사람들은 아주 간단히 표현하죠. "갔슈." 한 가지 사례만 더 볼까요?

표준어인 "잠시 실례합니다."에 있어서도 경상도 사람들은 "내 좀 보소."이러고, 전라도 사람들은 "아따, 잠깐만 보더라고 잉~" 이러는 반면 충청도 사람들은 이 또한 매우 짧게 말하죠. "좀 봐유".

언젠가 방송에서 본 내용입니다. 서울사람이 충청도의 어느 오지에 왔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한 아낙을 보았다네요. 반가운 마음에 "□□에 가자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아낙이 말하길 "저 산꼭대기를 두 개 넘은 뒤 만나는 사람한티 물어보면 돼유" 이랬답니다.

이에 서울사람이 낙심하여 "그럼 오늘 중으론 가기 틀렸네요?"라고 하자 그 아줌마가 한 말이 뭔지 아세요?

"그러키(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모르는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들이 늦다느니 따위의 흉을 보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죠. 나누는 정의 넉넉함과 때론 공짜라는 인자(因子)의 배려 그리고 이를 진정 고마워하는 인정(人情)의 교차로가 바로 제가 50년 이상 여전히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 충청도니까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