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 냄새 진동하는 해수욕장, 여기가 전쟁터인가요
무분별한 폭죽 사용에 시민들 항의... 경찰·구청 "불법 아냐"
▲ 7월 29일 저녁 9시쯤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 임해경찰서 바로 앞에서 시민들이 터뜨린 폭죽이 불꽃을 내고 있다. 주변은 화약 연기가 자욱하다 ⓒ 박석철
지난 29일 오후 9시,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 휴가를 맞은 많은 시민들이 모래사장에 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않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일산해수욕장은 길이 600m, 폭 40~60m, 면적 2만6000㎡의 규모에 깨끗한 모래사장과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신라 문무왕(비)의 전설이 깃든 대왕암 공원과 연결돼 있고, 신라시대 왕들이 이곳에 나들이를 즐겨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다.
하지만 일산해수욕장의 여름 밤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모래사장에서 연신 터지는 화약 연기와 폭죽으로 인한 소음 때문이다.
두 아들과 함께 온 황미영(46)씨는 "화약 연기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며 "화약 연기에 발암 물질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경찰과 구청은 왜 단속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씨뿐만 아니라 이날 일산해수욕장을 찾은 시민 대다수가 모처럼 나온 나들이에 폭죽 소리와 화약 연기로 인해 불만을 터트렸다.
특히 갓난 아기와 함게 모래사장에 나온 젊은층 주부들의 항의가 심했다. 아기와 함께 온 김아무개(32)씨는 "해수욕장에 몇 년 만에 왔는데 이렇게 화약 연기 투성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소형 폭죽, 규제할 방법 없어
마침 일산해수욕장에는 조끼를 갖춰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방범용 손전등을 들고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들에게 "폭죽을 규제할 수 없냐"고 물으니 "우리 권한이 아니다, 우리는 치안 상태만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주부들과 함께 모래사장에 있는 임해 경찰서에 갔다. 경찰서에는 두 명의 경찰이 근무학 있었다. 주부들이 경찰에게 폭죽에 대해 항의하자 "폭죽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일정 무게 이하면 허용이 되고 있고, 이곳에서 판매하는 폭죽은 모두 규격 이하라 통제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관할 구청인 울산 동구청은 "경찰과 합동으로 화약판매상 지도를 통해 대용량 크기의 폭죽에 대해 판매를 엄격히 제한했다"며 "다만 여름철 해수욕장 특성상 가족단위로 찾는 관광객들이나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사용하는 소형 폭죽에 대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할수 있도록 상시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래사장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과 몇 미터 간격으로 연신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호소해도 이를 지도·계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확인 결과 일산해수욕장에는 수백 개의 노점상 손수레가 있고, 그 중 일부 노점들은 폭죽을 개당 천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규정 이하의 중량이라 폭죽 판매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
이같이 해수욕장에서 터뜨리는 폭죽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많지만, 폭죽을 판매하는 노점상과 이를 구입해 옆 사람의 피해에 아랑곳없이 폭죽을 터뜨리는 일부 시민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각 지자체들이 각종 행사에 사용하는 불꽃놀이에는 대형 폭죽이 사용되지만 이를 규제한다는 말을 들은 바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불꽃으로 민심 잡으려는데 규제되겠느냐"
울산의 각 지자체 중 남구청의 경우 연평균 86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불꽃놀이를 했다. 일년에 약 3870발의 대형폭죽을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예산을 집행한 지자체는 바로 이곳, 일산 해수욕장이 있는 동구청으로 한 해 불꽃놀이 예산으로 5500만 원을 집행했다. 바로 전날인 28일 저녁에도 이곳 일산해수욕장에서는 조선해양축제를 위한 대형 폭죽이 터졌다.
일산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들이 폭죽 소리와 화약 냄새에 항의하고 있지만 제대로 규제가 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울산시민연대 김지훈 지방자치센터 부장은 "소리와 불꽃, 진동으로 구성되는 불꽃놀이는 즐기는 이에게는 감흥이지만 때로는 환경 공해를 야기하고,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며 "실제로 불꽃놀이 시 심장질환 환자 등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기도 하며, 폭죽에 사용되는 중금속으로 인한 환경오염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꽃놀이는 흥분과 즐거운 오락꺼리라는 것과 동시에 화려한 의례와 공연을 통한 정치적 과시행사라는 비판적 관점이 있고, 짧은 시간동안 적지 않은 예산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종종 예산낭비의 사례로 비춰진다"며 "지자체가 많은 예산으로 대형 폭죽을 터뜨리면서 민심을 사로 잡으려 하는데 시민들이 터뜨리는 소형 폭죽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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