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익숙한 듯 텃밭에 들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추를 따기 시작했다.
"냄새가 고추냄새에요. 색깔은 초록색!"
"얘(고추)가 가만히 안 있어요. 너 가만히 있어봐!"
아이들은 한 손으로는 고추를,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줄기를 잡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고추와 씨름을 벌였다. 몇 번 해본 아이들은 꼭지만 '똑' 따는 기술을 선보였다.
"선생님, 이거 봐요. (고추) 많이 땄어요."
아이들의 손에는 어느새 초록색 고추가 한 움큼씩 쥐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따서 모은 고추가 파란색 소쿠리의 절반을 채우자 교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 내에 있는 실내놀이터로 이동했다. 그곳에 마련된 천막 아래에서는 또 다른 교사들이 삼겹살을 불판에 굽고 있었다.
▲ 서울 도봉구 창3동어린이집 아이들이 지난 26일 오전 어린이집 앞 텃밭에서 오이를 따고 있다. ⓒ 이기태
▲ 긴 장마로 텃밭에 나오질 못했던 서울 도봉구 창3동어린이집 한 아이가 지난 26일 오전 어린이집 앞 텃밭에서 딴 깻잎을 들어 보이며 해맑게 웃고 있다. ⓒ 이기태
아이들이 나무로 만들어진 식탁에 둘러앉자 교사들은 각자 식판을 나눠주고 아이가 씹기 편하도록 작은 크기로 자른 고기와 텃밭에서 딴 고추와 깻잎 등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깻잎 위에는 어린이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와 파 무침 등도 올려졌다. 주변 친구들의 식판에도 모두 똑같은 반찬이 올라가자, 아이들은 일제히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식사를 시작했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시 도봉구 창3동 구립 창3동어린이집(원장 최은경)에서 열린 가든파티 모습이다. 이곳 어린이집 아이들은 매달 한 번씩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수확해 고기 파티를 연다. 자연의 소중함도 배우면서 수확의 기쁨도 느끼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최 원장은 "텃밭활동 등을 통해 아이들은 흙냄새를 맡고 제 손으로 채소를 길러봄으로써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대해 알게 되고 수확에 대한 기쁨 또한 자연스레 알게 된다"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이해하게 하는 텃밭활동은 친환경 급식을 시행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친환경 농산물, 원내에서 직접 길러
지난 2004년부터 어린이집 친환경 급식을 시행하고 있는 창3동어린이집은 콩, 가지, 호박, 열무, 시금치, 배추 등 제철 친환경 농산물을 원내에서 직접 기르고 있다. 또 고추장, 된장, 간장 등도 직접 담가 먹는다. 두유도 콩을 삶고 갈아 직접 만들어 먹고, 순두부 간식도 원내에서 천일염 간수를 받아 만들어 먹는다. 이처럼 텃밭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채소는 모두 아이들의 급식을 위해 쓰인다.
이곳 어린이집에서는 친환경 농산물을 남기지 않고 모두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딸기, 토마토, 오이 등은 텃밭에서 수확하는 즉시 먹고, 남는 채소는 아이들과 함께 상추떡, 감자밥, 화채 등을 만들어 먹는다.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하는 것은 채소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한 측면도 있다.
▲ '자, 우리 다같이 맛있게 먹어요' 긴 장마로 텃밭에 나오질 못했던 서울 도봉구 창3동어린이집 아이들이 지난 26일 오전 보육교사와 함께 어린이집 앞 텃밭에서 수확한 깻잎에 구운 삼겹살을 싸먹는 가든파티를 하고 있다. ⓒ 이기태
▲ '우리 다같이 맛있게 먹어요' 긴 장마로 텃밭에 나오질 못했던 서울 도봉구 창3동어린이집 아이들이 지난 26일 어린이집 앞 텃밭에서 수확한 깻잎에 구운 삼겹살을 싸먹는 가든파티를 하고 있다. ⓒ 이기태
또한 성장기 아이들의 영양공급을 위해 주 3회 유기농 우유를 제공하고 단백질과 불포화지방, 칼슘을 보충해주고 씹는 훈련을 하기 위해 매일 멸치와 검정콩을 제공하고 있다.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밥은 차조, 검정쌀, 수수, 기장 등이 섞인 잡곡밥으로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 생일잔치에도 생크림 케이크 등 영양이 거의 없는 케이크 대신 수수팥떡 등 떡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 외에도 친환경 농산물을 활용해 아이들과 교사가 요리활동의 일환으로 매달 1회씩 '효소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매실, 복분자, 고구마줄기 등을 유기농 설탕과 섞어 1년 정도 보관하면 효소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효소는 유기농 우유를 발효시킨 요구르트에 첨가되거나 간식에 활용된다.
최 원장은 "아이들이 직접 수확한 채소를 같이 요리해서 자연스럽게 간식 또는 식사시간에 먹는 경험은 아이들의 편식을 줄여주고 바른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다. 원에서 먹는 급식은 단순히 밥 한 끼 때우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건강에 좋은 영향을 주는 밥을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급식 전 과정 부모에게 공개, 참여 이끌어
친환경 급식이 제대로 정착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친환경 농산물을 키우고 관리하는 문제부터, 이를 원내 프로그램으로 도입할 경우 아이들의 참여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 등 고민거리가 많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친환경 농산물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안착됐고 부모들이 먼저 친환경 급식환경 조성에 동참하고 있다. 어린이집 측에서는 아이들이 먹는 먹거리가 어떤 경로로 어린이집에 전달되고 조리되는지 전 과정을 부모들에게 공개하면서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5년여간 매주 목요일 ▲ 검수 ▲ 조리과정 ▲ 시설 및 기구의 위생관리와 유지 ▲ 배식과정 ▲ 시식느낌 등의 체계적인 급식 모니터링을 진행, 개선해야 할 점을 부모에게 물어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또 최근 부모들의 요구를 수용해 어린이집 급식 레시피와 천연 조미료 만드는 법, 효소 만드는 법 등을 카페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 '으랏차차' 서울 도봉구 창3동어린이집 아이들이 지난 26일 오전 어린이집 앞 텃밭에서 호박을 따고 있다. ⓒ 이기태
▲ '우와, 엄청 무거워' 긴 장마로 텃밭에 나오질 못했던 서울 도봉구 창3동어린이집 아이들이 맑은 하늘을 보인 지난 26일 오전 어린이집 앞 텃밭에서 딴 고추와 깻잎, 호박 등을 담은 바구니를 옮기고 있다. ⓒ 이기태
친환경 생태보육 실천하는 어린이집
이곳은 아이들이 갖고 노는 놀잇감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도 자연친화적이다. 먼저 교재·교구는 아이들에게 유해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나 고무 장난감 대신 나무로 만든 장난감으로 보급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산에서 줍는 솔방울, 나뭇잎, 아카시아 꽃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물을 장난감으로 쓰고 있다. 아이들이 간식으로 먹고 남은 옥수수와 감 씨 등도 훌륭한 아이들의 놀잇감이 된다고.
어린이집 한쪽에는 편백나무방이 마련돼 있다. 사면이 편백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편백나무향이 그윽하게 나는 이곳은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이 낮잠을 자거나 책을 보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어린이집 자체적으로 아토피가 심한 원아를 위한 생태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영아반 아이들이 편안하게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나무 위에 광목천이 입혀진 개별 침대를 제공하고, 베개와 이불은 모두 황토 소재로 만들어 피부가 민감한 아이들도 덮고 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저귀천을 치자 등으로 염색해서 인테리어에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어린이집 곳곳에는 최 원장과 교사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아이들의 소꿉놀이에 쓰이는 종이죽그릇이나 헝겊인형, 나무모빌 등은 교사들이 직접 만들고,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나무를 잘라 소금물에 일일이 말려 보관하고 있다. 또 어린이집 곳곳에 모과, 매실, 대추, 살구나무를 심어 아이들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어린이집 내부에 설치된 실내놀이터다. 이곳에도 나무를 활용한 구조물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긴 나무를 삼각형 형태로 만들어 끈으로 동여맨 구조인 이곳을 아이들은 '나무집'이라고 부른다.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곳에 들어가 나무집을 흔들거나 숟가락으로 모래를 푸면서 논다. 이 실내놀이터는 지난 5월 환경부로부터 '친환경 안심 어린이 놀이터'로 인정받은 바 있다.
"건강한 먹거리가 바른 인성을 만든다"
'건강한 먹거리가 바른 인성을 만든다'는 최 원장의 철학이 어우러진 생태보육을 배우고자 여러 지역의 원장들과 교사들이 어린이집을 방문하고 있다. 올해는 제주도에서 신입원장과 교사들이 어린이집을 다녀갔다.
최 원장은 "친환경 급식은 환경성 아동질환의 변화를 갖고 올 수 있는 정책 중 우리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책"이라며 "화학조미료만 안 써도 친환경 급식 50%는 달성한 것이다. 친환경 급식의 도입은 원장의 마인드와 노력 없인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어린이집 결제내역만 봐도 아이에게 하루 세 끼 먹이는 데 25일 기준으로 1인당 2780원밖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구에서 지원금이 나오니 이 금액이 결코 비싸다고는 할 수 없는 비용"이라며 "친환경 급식을 제공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들을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키우려는 원장의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 '오디 효소 맛보는 아이들' 서울 도봉구 창3동어린이집 아이들이 지난 26일 오전 보육교사와 함께 오디 효소 만들기를 하던 중 오디를 맛본 후 혓바닥을 내밀며 장난을 치고 있다. ⓒ 이기태
▲ 친환경 급식 등 생태보육을 실천하고 있는 서울 도봉구 창3동어린이집. ⓒ 이기태
끝으로 최 원장은 어린이집 급·간식만 친환경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친환경 바른 먹거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이는 어린이집과 부모가 같이 키우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부모가 키우는 것이다. 부모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의식을 갖고 아이의 건강을 위해 좋은 재료와 건강한 요리법으로 음식을 만든다면 가정에서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