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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도 재생산 방식의 복지입니다"

정채효 경동엔지니어링 부사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기술부회장

등록|2013.07.30 16:56 수정|2013.07.30 16:56

대한민국 신도시의 산파 정채효 부사장 정채효 경동엔지니어링 도시계획부 부사장은 안양 평촌신도시부터 최근에는 세종시까지 신도시 계획과정에 숱하게 참여하면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한 도시계획 전문가다. ⓒ 허성수

전국의 숱한 신도시 탄생 과정에 밑그림을 그리며 도시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온 정채효(56) 경동엔지니어링 부사장을 지난 16일에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정채효 부사장은 도시계획기술사로서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기술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안양시를 비롯해 의왕시, 서울 종로구, 충남 아산시 도시계획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방의원도, 민원해결 위해 이용...

- 여러 지자체에서 도시계획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느끼는 문제점은.
"도시계획위원은 임기 2년으로 2회 연임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성위원을 40%까지 할당하도록 법으로 제정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자격은 있지만 충분한 경력이 없는 여성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물론 큰 도시에서는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경력이 충분한 여성이 많아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농촌지역 자치단체의 경우 일정한 비율의 여성할당제가 오히려 도시계획위원회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전체 25명의 위원 중 지방의원도 2~3명 정도 들어오는데 민원해결에 치우쳐 위원회를 이용하는 분도 있더군요.

지방의원의 수에 대한 제한은 없지만 6~7명의 의원이 참여하는 도시계획위원회도 봤습니다. 그렇게 의원 수가 많아지면 안 됩니다. 도시계획은 종합적이기 때문에 도시계획, 건축, 방재 등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비중을 높여야 합니다. 요새 법이 바뀌어 도시계획위원회의 회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토론하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위원들이 소신껏 발언하기 어려워집니다.

만일 어떤 사안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게 이야기하는 위원에게 앙심을 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위원들이 테러 위협을 느끼게 되면 함부로 말을 못하게 돼 회의 내용에 대한 비밀은 지켜줘야 합니다."

- 도시계획기술사가 하는 일은.
"도시기본계획으로 지형도면고시, 적성평가, 토지이용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부터 각종 개발사업-택지·도시개발-을 진단합니다. 또 주거환경개선 사업으로 재개발·재건축 계획도 하며, 관광지 개발계획도 합니다. 저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 기업도시, 혁신도시도 계획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잘 모릅니다. 건축하는 분들은 건축사로 잘 알려져 있지만 도시계획기술사는 공무원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은 별도로 공무원 조직에서 도시계획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많아지기 때문에 아웃소싱으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우리나라가 근래 신도시 개발사업을 많이 하다 보니 노하우가 많이 생겨 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알제리와 이라크, 베트남에서 한국의 기술로 많은 도시가 개발되고 있죠. 외국의 신도시에도 가서 많이 배우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도 하는데 너무 지나치게 적용해 문제가 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친수공간으로서 물이 흐르는 하천은 안정감을 줍니다. 그런데 하천이 없는 곳에 지자체의 요구로 만들어 놓으면 막상 물을 운용할 돈이 없습니다.

도시계획학은 종합학문입니다. 토목과 건축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학문이죠. 우리가 전체적으로 밑그림을 그려주면 그 위에 건물을 심는 것입니다. 지구단위계획이라는 것이 있는데 건폐율과 용적률, 색채까지 다 지정해주기 때문에 전체적인 도시의 아우트라인이 70~80% 정도 나옵니다. 건축가는 건물 하나만 보지만 우리는 전체를 봅니다. 건축위원회에서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면 다 통과되지만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지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 위주의 개발은 지양해야

- 안양은 구 도심인 만안구 지역이 주거환경이나 공공기반시설이 매우 열악합니다. 어떤 방식의 개발이 바람직한지.
"제가 1990년대 말 당시 근무했던 회사에서 안양시 도시기본계획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안양·군포·의왕을 다 포함한 도시계획을 수립했었죠. 그 동안 동안구에 도시의 주요 기능이 이전해 오면서 발전하는 대신 만안구는 쇠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만안구를 동안구처럼 만들면 안 됩니다.

만안구는 기존 시가지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기반시설을 확보하는 방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지난 4월 30일 국회에서 도시재생법이 통과됐는데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고층 아파트 위주의 개발을 지양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현지개량방식으로 마을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요즘 건설경기가 어떻습니까.
"상당히 어렵습니다. 복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건설은 등한히 하는 것 같습니다. 복지는 투자하면 먹고 써버리는 것이니까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건설에 투자하면 그 효능이 수대에 걸쳐 나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건설도 복지입니다. 예컨대 주택가에 좁은 도로를 확장해서 차가 다니게 되면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공사하는 동안 일자리도 생깁니다. 복지는 줘서 낭비하는 것이 아니고 재생산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 세계의 신도시 중 가장 이상적인 도시를 꼽는다면.
"벨기에의 루벵 시입니다. 루벵은 작지만 대학도시로서 지상에 대학과 집이 있고 지하에 차량을 다 들여보냅니다. 지상에는 차가 한 대도 없습니다. 프랑스의 라데팡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리는 기존 도심에 대규모 사무실이 없어 좀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개발했습니다. 역시 지상에는 차가 없는 업무지구를 만들어 광장을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심 재개발 형태도 라데팡스 식으로 해야 합니다. 라데팡스는 단순한 위성도시가 아닙니다. 업무단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초고층 빌딩으로 지었고 파리의 기존 도심은 옛 건물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구 도심에서는 건물을 헐고 다시 짓더라도 옛 건물과 같은 형태로 지어야 합니다. 만안구도 기존 시가지의 장점을 살리는 방식으로 갔으면 합니다."

세종시는 2020년이 지나야 윤곽 나올 것

정채효 부사장은 세종시 도시계획에도 참여했는데, 지난해 정부 이전과 함께 이주한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데 대해 신도시 초기에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양 평촌 신도시도 불과 10년 전까지는 상업지구가 개발이 안돼 주민들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수요가 있고 수지타산이 맞아야 상업시설이 들어오는데 세종시도 10년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적어도 2020년이 되면 세종시의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실패다, 성공이다 단언할 수 없습니다."

경동엔지니어링은 도시계획과 관련한 연구개발·감리 등의 용역을 전문으로 맡아 하는 기업으로 국내 동종업계에서 15위 내에 들 정도로 사업 규모가 크다. 충남 천안에 본사가 있으며 수도권의 교두보인 서울사무소는 안양시 동안구 범계역 부근 안양무역센터에 있다. 정채효 부사장은 안양무역센터 14층에서 경동엔지니어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계획부를 이끌고 있다.
덧붙이는 글 주간현대에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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