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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무한도전>과 <런닝맨>은 '야담'이었다

[서평] 공임순 <식민지 시기 야담의 오락성과 프러파간다>

등록|2013.08.02 09:51 수정|2013.08.02 09:51
전두환 군사정권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때 <유머1번지>의 한 꼭지였던 '탱자가라사대'와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고 김형곤씨가 "잘 돼야 될 텐데"와 "잘 될 턱이 있나" 한마디 하면 정말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고, 고 양종철씨가 "밥 먹고 합시다" 했을 때 회장이 "저거 처남만 아니면 잘라야 할 텐데"라고 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쾌감이 우러나왔다.

"잘 될 턱이 있나"가 누구를 풍자한 것인지 알았고, 회장의 발언은 족벌재벌을 신랄하게 비꼰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간혹 <개그콘스트> <무한도전> <무릎팍도사> 같은 예능과 개그 프로그램에서 사회풍자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탱자가라사대'처럼 매주 정치권력을 풍자하는 모습은 많이 볼 수 없다.

정치풍자, 전두환정권 때는 "잘 될 턱이 있나"

예를 들면 지난 7월 4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박지성 선수 아버지 박성종씨가 출연했다. MC 강호동씨가 "지금까지 본 댓글 중 가장 심한 악플이 뭐였냐"고 묻자 박씨는 "'며느리까지 다 데리고 살면서 관리하겠네'였다"고 답했다. 가장 심한 악플을 단 누리꾼 아이디가 'Cookjung1'이었다. 그러자 일부 시청자들은 "'무릎팍도사'가 국정원을 깨알같이 디스한 거 아니냐", "자막센스 장난 아니네", "'무릎팍도사' 제작진이 방송을 통해 국정원 댓글 사건을 패러디한 건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댓글 아이디가 'Cookjung1'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풍자를 통한 권력 비판이 얼마나 빈약한 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풍자가 사라진 사회는 숨막힌다. 전두환 독재정권 때는 풍자가 있었는데, 박근혜정권때는 풍자 프로그램 하나 없다는 것은 '질식사회'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 식민지 시기 야담의 오락성과 프로파간다 ⓒ 앨피

놀랍게도 전두환 정권만 아니라 일제식민지때도 풍자가 있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영상을 통한 풍자가 아니라 '야담(野談)'을 통해서다.

2000년 <우리 역사소설은 이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2005년 <식민지의 적자들>, 2010년 <스캔들과 반공국가주의>따위로 우리 역사와 문학의 고리, 특히 식민지 시기에 관심을 가져온 공임순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쓴<식민지 시기 야담의 오락성과 프로파간다>(앨피)는 100년 전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능'을 즐겼음을 알려준다.

100년 전 '무한도전'은 '야담'이었다

텔레비전은커녕 라디오조차 없던 그때 그 시절 김진구의 야담대회는 <무한도전> <1박2일> <런닝맨>과 같았다. 10년 후 라디오가 등장한 이후에는 만능 엔터테이너 윤백남의 재담이 있었다.

"야담가로서 윤백남의 성공은 김진구의 야담'운동'이 힘을 잃어 갔던 것과 동시적인 움직임이었다. 먼 과거의 특정되지 않은 이야기보다는 최근 세사를 통해 대중 교화를 의도했던 김진구가 식민권력의 다양한 압력에 부딪혀 야담가로서의 명망을 잃어 간 시기에 엔터테이너 윤백남이 그 자리를 대신해 갔던 것이다."(14쪽)

그럼 야담은 이란 무엇인가? 나이 지극한 이들은 알고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 뜻을 잘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은이 지혜를 빌리면 "야담은 이를 가리키는 한자 '野談'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간에 떠도는 '야사'를 근간으로 한 이야기"로 "야사(野史)는 공식 역사가 아닌 비공식 역사, 그것도 비주류 역사로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확보하지 못한 불완전한 민중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권력자와 주류세력이 만든 공식 역사가 아니라, 피지배세력과 비주류가 만든 비공식 역사가 야담이므로 민중의 삶과 가까웠고, 그 시대가 겪었던 굴절과 변화상을 예민하게 담지할 수 있었다.

1928년 2월 <신춘야담대회>에서 그 시대를 풍미한 야담가 4명인 이돈화는 '동양풍운을 휩쓸던 동학란', 권진규는 '한말호걸 대원군', 김익환은 '이홍장과 이토 히로부미', 김진구는 '김옥균 왕국'을 구연했다. 특히 김진구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유재석과 강호동 만큼 인기 '야담꾼' 김진구와 윤백남 그리고 신불출

"우리는, 정신에 극도로 굶주린 우리는 이것을 들음으로써 정신의 양식을 구하라! 동양풍운을 휩쓸어 일으키던 혁명아들의 포연타우 가운데서 장쾌한 활약을 하던 이면사의 사실담을 들어라! 뜻있고 피 끓는 만천하의 청년들아! 반드시 와서 들어라!"(89쪽)

이런 김진구를 일제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온갖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또 다른 대가 나타났으니 "항상 들어도 또 듣고 싶고 듣지 못한 분은 한 번만 들었으면 원이"이 없다고 하는 이른바 수백 명의 팬들을 거느린 만능 엔터테이너인 윤백남이었다. 그리고 신불출이었다. 신불출은 "일류 만담가" 혹은 "만담의 귀재"로 불렸다. 그가 얼마나 인기를 누렸는지 알아보자.

"종로 거리였던 축음기 상회에서 흘러나오는 익살맞은 <대머리 타령>에 흥이 겨워 어떤 60세 가량 된 노인이 발을 멈추고 히히거리고 웃는 데가 있자 그 노인도 소리를 높이 따라 웃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10여명 모여들고 옆에서 같이 듣고 섰던 사람들조차 박장대소했다."(207쪽)

김진구, 윤백남, 신불출은 요즘으로 치면 유재식과 강호동인 셈이다. 식민지 조선 인민들이 야담을 통해 일제 압제하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쉬자 그들은 야담을 이용했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일 일으킨 일제는 조선 사람에게도 '징병제'를 도입한다. 공임순은 "일제가 식민지조선의 '야담'이 지닌 교화와 오락의 갈등하는 면모는 일본의 전쟁 확대와 가속화 속에서 급속하게 체제 내화되어 갔다"면서 "여기에 징병제의 실시는 식민지 조선인이 병사로 차출된다는 것의 의미를 재인식시키며, 이에 따른 대중 계도와 교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 대중 계도와 교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야담'이었다"고 말한다.

일제, 야담을 프로파간다로 이용해 '혈서'시대로 이끌다 

일제는 야담을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 또는 선동)'로 적절히 이용한다. 특히 식민지 조선 지원병 중 첫 번째 전사자인 '이인석'을 대대적으로 추모하면서 "우리 지원병들은 확실히 '천황폐하만세!'를 크게 외치면서 장렬하고 엄숙하게 죽어갔던 것이다"(<어느 지원병의 전사>)며 미화한다. 이인석은 일등병에서 상등병으로 특진되었고, 특히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으며, 일본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명예인 금치훈장을 수여받았다. 일제가 이인석을 이렇게 추모한 이유는 무엇일까?

"식민지 조선 최초의 지원병 전사자인 이인석은 일본의 '3용사'와 더불어 '전쟁미담'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대중매체의 프로파간다화를 매개하는 대표표상으로 재구축되었다. 일본과 식민지 조선이 걸어은 이 다른 듯 닮은꼴의 모습들은 전시 총동원 체제 속에서 건전한 국민오락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환기시키며, 야담 역시 이 건전한 국민오락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게 했다. 야담이 건전과 비속의 경계선상에서, 국책의 충실한 선전도구로서 전시 총동원 체제의 일부로 자리 매김하게 되는 사회역사적 과정은 바로 이 식민지 조선의 총체적인 삶의 변화와 밀접한 연동 하에서 움직여갔던 것이다."(359쪽)

군국주의가  전쟁터에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추모를 통해 죽임과 증오가 본질인 전쟁을 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미담은 결국 '혈서'로 이어진다. 공임순은
"박정희의 만주군 지원 혈서가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듯이, 이 시기에 수많은 혈서의 사연이 대중매체를 수놓았다"면서 "'혈서'라는 문학작품이 나오는 등, 피를 통한 국가봉공은 혈세(血稅)로서 당연시되었다"고 말한다.

일제, 생명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죽고도 돌아오지 마라"고 외치도록 만들어

▲ 일제는 어머니가 아들을 전쟁터에 나가 살아 돌아오지 말고 죽어라는 선동을 일삼았다. ⓒ 앨피


일제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아들에게 전쟁터에 나가라" 단호하게 말하는 군국의 어머니상을 만들어 간다. "군국의 어머니상을 통해서 자식은 기쁜 마음으로 전장으로 떠나게 되고, 그 어머니는 자식의 무운장구를 빌지만 절대 눈물과 한탄을 보이지 않게"함으로써 "군국의 어머니상이 여타의 어머니상을 압도해가면서, 군국의 어머니상은 전시의 가장 이상적인 모성으로 선전되고 설파"되었다. 생명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내몰게 만든 것이다. 이게 일본제국주의 본질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병영문화'에 호의적이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신입사원이 병영체험을 한다.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과연 이런 분위가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공임순 마지막 글이 왠지 가슴을 짓누른다.

일본의 '3용사'와 식민지 조선의 이인석, 일본의 '구단의 어머니'(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아들의 영혼을 만나러 먼 길을 마디않고 상경한 늙은 노모를 노래)와 식민지 조선의 '군국의 어머니'는 해방 이후 어쩌면 익숙한 또 다른 기시감을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1949년의 '십용사'와 2010년의 '천안함 용사'와 그 유가족들 이야기는 이 식민지기 야담의 양상이 비단 과거의 일에만 그치지 않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506쪽)
덧붙이는 글 <식민지 시기 야담의 오락성과 프로파간다> 공임순 지음 ㅣ 앨피 펴냄 ㅣ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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