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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사람들... 비난과 비판 사이

[인턴기자의 촛불 참관기] 보수와 진보, '다 똑같은 놈들' 되지 않으려면

등록|2013.08.04 16:27 수정|2014.02.13 17:21

▲ 청계광장 옆에서 보수단체들이 피켓을 들고 종북세력을 몰아내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30여분 동안 이렇게 피켓을 들고 서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 황혜린


지난 3일 오후 7시, 제5차 범국민 촛불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청계광장. 이 옆에 있는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는 보수단체들이 크게 노래를 틀어놓고 '맞불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들은 촛불대회가 열리고 있는 쪽을 가리키며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는 저들은 종북 세력이며, 국정원을 개혁해서 저들을 모조리 잡아들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이른바 '종북'이라고 하는 세력에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언론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라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하니 '썩은 미소'를 지으며 "저쪽 가서 민주당이나 취재하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을 여성애국운동대표라고 밝힌 조필형씨는 "내가 NLL을 밝힌 사람"이라며 "그것 때문에 내 양팔도 좌파 쪽에서 꺾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정 간첩들을 다 잡아들여야 한다"고 외치며 소위 '좌파'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를 드러냈다.

▲ 한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돼지로 묘사한 피켓을 들고 촛불대회가 열리는 쪽을 보고 있다. 경찰들은 계속 그의 주위에 서서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 황혜린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지하철 출구 앞, 그것도 진보단체의 촛불집회가 열리는 바로 옆에서 과격한 주장을 하고 있으니 싸움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몇 시민들은 "왜 구석에서 난리를 치느냐"고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촛불대회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은 더 과격했다. 시끄럽다며 욕을 하면 이 보수단체 측에서도 다시 욕으로 응수했다. 앞에서 대기하던 경찰들은 싸움이 날 때마다 이를 말렸다. 이 집회 참가자 중 한 명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 도중에 "야 이 XXX새끼야"라고 말하자 경찰이 저지하기도 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얼굴을 돼지처럼 묘사한 피켓을 들고 있는 집회 참가자 앞에 아예 경찰이 지키고 서서 싸움을 막기도 했다.

싸움을 벌이는 건 보수단체만이 아니었다. 기자가 본 몇몇 집회 참가자 또한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취재를 요청하며 다가가면 몇몇 시민들은 먼저 어느 언론사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오마이뉴스>라고 대답하면 "<오마이뉴스>는 괜찮다"며 인터뷰에 응하곤 했다. 보수 언론에게는 아예 취재 자체를 해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집회 전 MBC 취재진과 시민들이 싸우는 상황도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분노는 나쁜 게 아니다. 분노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려 나설 수 있다. 이번 촛불대회가 바로 그런 집회였다. 시민들은 국정원 사태를 규탄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분노하며 휴가철임에도 촛불을 밝히러 왔다. 지방에서 일부러 올라왔다는 참가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분노는 사람을 쉽게 과격하게 만들곤 한다. 서로를 향한 분노에 불타고 있었던 보수단체 측과 몇몇 참가자들처럼, 몸싸움을 하고 욕을 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에 불과하다. 대회 끝자락에 만난 박승수(47)씨는 "편가르기식 시위는 자제하고, 공론장에서 양쪽이 서로 무엇이 문제인지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을 하야해야 한다고 외치기보다는, 이번 사건을 다시 번복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무릎을 탁 쳤다.

분노로 불타오르더라도 그것이 소모적인 '싸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비난보다는 비판이 중요하다. 집에 오는 길, 보수단체의 집회 현장 옆에서 오징어구이 장사를 하고 있던 정아무개(60)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에게 저렇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묻자, 그는 "다 똑같은 나쁜 놈들"이라고 대답했다. 어쩌면 그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대답처럼 '다 똑같은 놈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편가르기를 하고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건강한 토론으로 서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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