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과 어미, 두 마음으로 본 그리스 비극 속 '메데아'
[리뷰] 연극 <두 메데아>,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8월 15일까지
▲ 극단 서울공장 연극 '두 메데아'중. '여인'으로서의 메데아 (이경 분, 앞), '어미'로서의 메데아(구시연 분,뒤). ⓒ 문성식
연극 <두 메데아>가 8월 1일부터 15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중이다.
2013 게릴라극장 '해외극 페스티벌 희랍극' 네 번째 작품이자 극단 서울공장(연출 임형택)의 창단 10주년 기념공연 첫 작품으로 올리는 연극 <두 메데아>는 그리스 비극 속 자식을 살해한 여인 '메데아'를 '어미와 여인의 두 마음'으로 설정해 공연한다. 이 연극은 한국의 구음, 무술 등이 어우러진 연극성을 인정받아 2007년 '제19회 카이로 국제 실험 연극제'에서 임형택 감독이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하며 2006년 초연부터 10회인 이번 공연까지 국내외 활발한 공연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지난 2009년 국내 공연 이후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두 메데아>는 그간 배우들의 구음과 노래로만 이루어지던 음악적 특성을 음악감독 윤경로의 기타에 가야금, 북 등의 국악기 반주가 합세해 더욱 풍성하고 감각적인 무대가 되고 있었다.
극은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무시무시한 유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 속 '악녀'로서의 메데아에서 벗어나 두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여인'과 '어미'라는 두 양면적 캐릭터로 해석해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임형택 감독의 연출스타일은 그가 이끄는 극단 서울공장이 추구하는 바, 낭송체의 상징적인 대사와 배우들의 구음, 거기에 무겁지 않게 반주되는 음악으로 극의 내용을 기존 연극스타일인 '대사'로만 표현하지 않고 효과적인 음악적 장치에 크게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음악감독 윤경로가 연주하는 감미로운 기타소리를 배경으로 가야금, 북, 등 한국 전통악기가 어우러져 그리스 옛 희곡을 우리 전통극으로 감각적이고 자연스럽게 변화시켰다.
▲ 그리스 비극을 한국전통 구음과 악기로 자연스럽게 한국설화 형태로 변화시켰다. 극 초반 유년시절의 이아손과 메데아와 친구들, ⓒ 문성식
"수리루 메롱" 등의 의성어와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을 열어라" 등 극 초반 유년기의 이아손과 메데아가 함께 노는 장면에서 최대한 동심어린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표현되어 좋았다. 무대 양쪽에는 5-6명씩 극중 배우와 악기, 판소리, 정가 연주자들이 앉아서 아이 웃음소리, 자연의 소리 등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이며 현장감을 준다.
이아손과 메데아가 유년시절 만나는 장면이 꽤 길게 음악과 함께 상징적으로 진행되고, 메데아와 이아손의 결혼과 아이 출산, 이아손의 배신 장면은 대사로 상대적으로 짧게 지나간다. 이후 메데아의 마음에 대한 부분이 '여인' 메데아와 '어미' 메데아의 사이의 연기를 통해 심도 있고 격렬하게 조명된다.
여기에서 두 주인공 여배우의 열연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2006년 초연부터 8년 동안 10회가 넘는 공연을 함께해온 배우 이경은 '여인'으로서의 메데아 역할로 이아손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제사를 올리는 장면, 이아손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 등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격렬한 연기를 펼쳤다.
구시연은 메데아 5년차로 '어미'로서의 메데아 역할로 잔잔하고도 담담하지만 두 아이를 죽여서까지 이아손에게 복수하는 마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이번 극단 서울공장 10주년 기념공연은 두 여배우의 메데아 마지막 공연이라 더욱 열정적이고 진지한 표현들이 가득하여 의미가 깊었다.
▲ 연극 '두 메데아' 중. 이아손은 메데아를 배신하고, 메데아는 복수를 다짐한다. ⓒ 문성식
또한 이번 공연에는 세 명의 새로운 남자배우 김사련, 이홍재, 정한솔이 함께했다. 세 배우는 극 초반 태고시절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장면에서 자연스러운 공감을 자아냈다. 특히 김사련은 정략적으로 자신의 여인 메데아를 버리고 그녀와 대적하는 왕 이아손 역을 잘 소화해냈다.
또한 음악적으로도 상황을 잔잔히 설명하는 부분은 기타소리로, 아이들에 대한 향수 등이 필요한 부분은 무대 양쪽 악사들이 아이의 웃음소리를, 어미로서의 메데아에 대한 소리는 정가 형식으로, 여인으로서의 메데아 소리는 좀 더 진한 판소리로 표현하여 적절한 타이밍과 뉘앙스의 음악적 표현이 효과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지난 8월 1일 프레스콜에는 연기자 최불암이 방문해 연극관람 후 기자들과 함께 연출, 배우와의 질의응답에 참여했다. 그는 감독에게 연출의도를, 배우에게는 배역에 몰입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작품에 대해서도 "작품에서 피의 소리, 맥박의 소리가 느껴지고 배우들의 경험, 상상의 모든 것이 우러나온 것 같다"며 "나같이 사실적 연기를 하는 사람에게 큰 숙제를 던져준 것 같다"며 작품과 감독, 배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연극 '두 메데아' 중. 메데아는 자식을 죽여서까지 이아손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 ⓒ 문성식
동작 설정이 감독의 지시인지 배우들이 직접 하는 것인지에 대한 최불암의 질문에 '여인' 메데아 역할의 이경은 "아기를 찢어 죽이는 장면에서는 '배신'이라는 단어를 상상했다. 실제로 연기하다 실신한 적도 있다"며 배역에 몰입하는 부분을 설명했다. '어미' 메데아 역의 구시연은 "대본에 상세한 지시는 없다. 장면별로 음악적 효과 등을 봐가며 자연스럽게 찾아진다. 거울을 보며 애처로운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위로해주는 느낌으로 연기했다"고 답했다.
임형택 연출은 "오늘날에는 태초의 모습에 반하는 악한 모습을 들춰내는 장치가 잘 없다. 사회화되기 이전의 잃어버렸던 놀이, 동요와 같은 태고의 모습과 그것의 반대적 모습, 이 두 가지의 대비를 이야기 형식보다는 귀로, 눈으로 깨달았으면 해서 이 연극을 만들었다"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극단 서울공장 창단 10주년 기념극인 연극 '두 메데아'는 8월 15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한편, 창단 10주년 차기작으로 '꽃상여'를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11월 1일부터 13일까지 공연한다.
▲ 연극 '두 메데아' 중. '여인'으로서의 메데아(이경 분)가 자신을 배신하는 이아손(김사련 분)과 격렬하게 사투를 벌이는 장면.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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