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대학로에서 20년 동안 버틴 이 여자
[숨은사람찾기⑨] 연극배우 김현 "아르바이트로 주객전도 되면 안 돼"
▲ 연극배우 김현이 2일 오후 서울 동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연기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20여 년 동안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에요. 연극을 오랜 시간 하면서 한길을 걷기가 참 쉽지 않은데 기복 없이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20여 년을 그곳에서 버틴 그녀의 생명력은 참 존경할 만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기타리스트 권정구)
기타리스트 권정구는 다음 숨은사람으로 배우 김현(42)을 추천했다. 김현은 연극 <라이어2탄> <달빛속으로 가다> <누가 연극을 두려워하랴> <소포모어 징크스> <폐희> <칼잡이> 등에 출연했으며 영화 <살인의 강>, 드라마 <신의 퀴즈> 시리즈에 출연했다.
김현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거나 학원에서 연기 트레이닝을 받은 것이 아닌 극단 생활을 하면서 연기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둘이서 이길재 연출가의 극단 '하나방'에 들어갔던 것이 그녀의 평생 직업을 결정짓게 됐다. 같이 간 친구는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지만, 김현은 6개월 동안 포스터도 붙이고 양동이에 선배들의 라면도 끓이면서 극단 생활을 맛봤다. '하나방' 출신 배우에는 연기파로 자리 잡은 신정근이 있다.
메이크업하던 김현, 22살 극단에 입단하며 배우로
▲ "내년쯤에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인 스페인에 가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 이정민
극단 생활을 경험한 그에게 연기는 마음 깊은 곳의 갈망과도 같았다. 스무 살 무렵 메이크업을 배워 각종 CF 촬영장을 누비며 모델의 메이크업을 하며 2년을 보냈지만 당시 김현은 메이크업하는 본인의 위치가 낯설었다고 털어놨다.
"메이크업을 해주는데 자꾸 '내가 저 입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자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흥이 나지 않았어요."
김현은 22살에 극단 '산울림'에 입단했다. 배우가 아닌 스태프로 2~3개월 동안 일한 후, 극단 '모시는 사람들'에 들어가서 2006년까지 13년 동안 몸담았다. 현재도 소속 단원이지만 공개 오디션을 통해 다른 작품에 출연하며 다양한 연출가와의 작업도 겸하고 있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은 김정숙 연출가 겸 극작가가 대표이십니다. 창작극을 주로 하셨고 극작가로서 웬만한 상은 다 받았어요. 연극을 사랑하고, 연극과 결혼했다고 하는 분입니다. 저의 연극 스승이자 롤모델이에요. 관객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참된 예의를 보여주시고요. 가난했지만 제가 연극이라는 것을 하게 해주신 멘토와 같은 분입니다."
김현은 극단 '모시는 사람들'에서 무수히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그의 연기력은 나날이 빛났다. 그는 2008 백페스티벌 연기상, 2012 신춘문예 연기상, 2012 올빛 신인연기상 등을 받으며 대학로의 대표 연기자로 자리 잡았다.
다들 결혼하며 떠나는 '대학로', 그곳에서의 20년
▲ "연극 '강아지똥'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 때 저를 치유해준 경이로운 작품" ⓒ 이정민
젊은 시절 한때 누구나 동경하는 대학로, 그리고 연극배우. 하지만 막상 자신의 열망과 꿈을 대학로에서 실현시키고 그것을 현실과 발맞춰 지켜가기란 쉽지 않다.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위치,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강요받는 평범한 패턴 등에서 다소 멀어지기 때문이다.
"딱 20년이 된 것 같아요. 돌아보면 그래도 꾸준하게 잘 버텨왔다고, 대견하다고 하고 싶어요. 보통은 결혼하면서 많이 떠나죠. 결혼과 동시에 70% 정도는 대학로를 떠납니다. 무조건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결혼과 가정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은 '이제 난 못 해'라고 하면서 가끔 공연을 보고 낭만을 찾으러 와요"
대학로를 떠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아마도 경제적인 문제일 것이다. 다수의 무명 연극배우들은 아직도 꿈을 꾸지만, 현실을 지켜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대에 선다.
"사실 저는 극단 자체가 바빠서 아르바이트할 겨를도 없이 작품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돈을 벌어서 집에 갖다 드려야 하지 않아서 가능할 수도 있고요. 부모님께 차비 정도는 받아서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후배들은 먹고사는 게 빠듯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죠.
아르바이트로 주객이 전도된 배우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한 10년 동안은 어떻게든 연기와 무대에 집중하면 가장 좋거든요. 10년만 꾸준히 하면 연기도, 연기자로서의 입지도 나아지죠. 저도 6개월 정도 초등학교·중학교에서 방과 후 학습으로 연기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공연 때문에 더 할 수가 없더라고요. 어느 때고 작품이 있다면 아르바이트 스케줄은 비워둬야 하는 것 같아요."
▲ 연극배우 김현이 2일 오후 서울 동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김현은 "연극협회에서 배우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는데,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피부로 와 닿는 안정된 시스템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렇다면 김현은 어떻게 이 척박한 대학로에서 20년 동안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는 "성실함"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재능도 있고 끼도 있는 배우들이 연기하겠다고 몰려듭니다. 하지만 극단생활을 할 때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성실한 자세로 노력해야 본인이 원하는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고 꾸준히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같아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1년 3개월을 올렸어요. 월요일 빼고 매일 하는 거죠. 근데 거의 매일 긴장돼요. 3개월 정도는 계속 긴장되고 떨려요. 나중에는 편해졌지만 그래도 무대에서의 긴장감은 늘 있죠. 저에게 무대에서의 긴장감이 삶의 활력이 되는 것 같아요.
한 달 공연을 하면 1, 2번 정도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상대배우와 궁합이 잘 맞고, 캐릭터를 상당히 객관적으로 보면서 연기할 때가 있어요. 몰입된 상태에서 인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상태가 되면 정말 좋죠. 또 분장을 지우고 멀쩡한 상태로 돌아가는 느낌도 재미있어요. 두 시간 동안 무대에서 열심히 살고 밖으로 나가는 거죠."
"<강아지똥>, 가장 힘들 때 나를 치유한 경이로운 작품"
▲ 연극배우 김현이 2일 오후 서울 동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연기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김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연극 <강아지똥>과 앞서 말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을 꼽았다.
"<강아지똥>이라는 작품은 '죽어야 되나, 살아야 하나'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에서 제 마음을 치유해준 작품이에요. 권정생 아동문학가의 작품인데, 그 선생님은 <몽실언니> 등 좋은 작품을 많이 썼어요.
강아지가 똥을 누었는데 병아리들이 지나가면서 '더럽다'고 해요. 그럼 똥이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가 없나 보다'라며 좌절해요. 그러다 민들레 홀씨를 만나 똥 덕분에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대에 민들레라는 배우가 있고, 맨 마지막에 두엄이 그 민들레를 감싸면 예쁘게 민들레꽃이 피면서 끝나요. 그 작품을 하면서 소리 없이 많이 울었어요. 마음의 슬픔과 상처가 많이 회복됐습니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 때 저를 치유해준 경이로운 작품입니다."
연극 <강아지똥>을 5년 정도 한 후, 김현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하게 됐다. 이 작품은 대학로의 인기 작품으로 손꼽힘과 동시에 극단의 효자작품이 됐다. 김현 역시 그 작품으로 다수의 상을 받았다.
무대에 올릴 작품이 정해지고 연습하는 시간 외에는 늘 무언가를 배우는데 시간을 쏟는 김현. 10년 이상 한국무용을 했고, 최근에는 플라멩코와 탱고에 빠졌다. 김현은 연극무대에 서는 것 외에 춤 공연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정재영 주연의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도 출연했다. 연극뿐만 아니라 무용,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더욱 다양한 무대로 재능을 확장시키고 있다.
"요즘 연출가의 나이가 3, 40대로 젊은 분들이 많아요. 젊은 연출가라서 나이 든 5, 60대 선생님들과의 작업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3, 40대 배우들이 노인 분장을 하고 60대의 연기를 하기도 합니다. 제작 여건상 어른들과의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선생님들과 작업했을 때 좋은 점이 더 많아요. 저도 나이를 들어갈 텐데, 젊은 연출가들이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많은 연출가와 작업할 수 있는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꾸준히 연기하고 싶어요. 지금 플라멩코에 빠져 있는데, 내년쯤에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인 스페인에 가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 배우 김현은 다음 숨은사람으로 디자이너 이해은을 추천했다. 이해은의 작품을 들고 있는 김현. ⓒ 이정민
배우 김현은 다음 숨은사람으로 디자이너 이해은을 추천했다.
"섬유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목동에 '땀(DDAM)'이라는 작업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양, 천, 한지 등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작가예요. 필통·지갑·옷부터 커튼·이불까지 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섭렵하는 사람입니다. 이분 역시 자신의 재주를 늘 발전시키고 노력하며 한길을 걷고 있습니다. 연극하는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의 패션쇼에 모델이 아닌 연극배우를 모델로 세우며 연극계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적 소통과 연계를 하려고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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