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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성 토건사업 안 한다더니...  이명박·오세훈 따라가려 하나"

[경전철 논란-인터뷰①] 권오인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국책사업감시팀장

등록|2013.08.08 20:39 수정|2013.08.08 20:39
박원순 시장이 경전철 9개 신설 계획을 발표한 뒤, 서울에 지하철이 많은데 경전철이 왜 필요한지, 지하철 9호선·우면산 터널처럼 민간자본사업자만 배불리는 게 아닌지, 또 용인과 의정부 경전철처럼 세금먹는 하마가 되는지 등의 우려가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경전철 논란의 핵심에 서 있는 권오인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국책사업감시팀장과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을 차례로 만난다. [편집자말]

▲ 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 ⓒ 권우성


"급해요."

권오인(40)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이하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경전철 사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지하철 9호선·우면산 터널 등 서울시의 민간투자사업(이하 민자사업)을 감시해 온 그를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앞에는 서울시가 지난 2일 공개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 용역 보고서'가 있었다. 700쪽이 넘는 분량이다.

박 시장이 급해진 이유를 그는 선거에 있다고 추측했다. "노원구와 관악구 신림에는 '민주당이 해냈다'는 식의 플래카드가 걸렸다"며 "결국에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중심의 서울시의회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입김에 박 시장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서울시장 선거가 경전철 사업 발표에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민자사업 전문가의 충고 "시범 운영한 뒤 신중하게 하자"

박 시장은 취임 1년 9개월여만인 지난 7월 24일, 경전철 9개 노선 신설을 골자로 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을 발표한 뒤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가 민간 자본 사업자(이하 민자)에게 경전철의 건설과 운영을 맡겨 진행하는 사업이다(관련기사 : '빚 26조' 서울시, 8조 대형사업 가능할까?). 10년간 총 8조5000여억 원이 드는 이 계획이 공개되자, 박 시장에 우호적이던 시민단체들도 "박원순 스타일이 아니다, 박원순식 4대강 사업"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나라살림 연구소·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등 8개 시민단체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가 8조5533억 원이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경전철 사업을 하면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도 하지 않았다"며  "경전철 건설 계획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서울시가 용역보고서를 공개하고 시민단체에 토론회를 제안하는 등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지만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권 팀장의 눈에도 탐탁지 않다. 그는 "이대로 가면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을 따라가게 된다"며 "박 시장이 기존 정치인들이 하던 공공대형 사업을 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라도 사업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외부 검증이 이뤄지고 난 뒤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박 시장에게 조언했다.

그는 시가 공개한 용역보고서를 검토 중이다. 그는 "700쪽이 넘는 분량이라 며칠 만에 충분한 검토는 어렵지만 한 눈에 봐도 추상적인 보고서"라며 "재원 조달 방안·민자 사업 추진 방식 등에서 서울시가 보완해야할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에게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다고 하니 부탁의 말을 남겼다.

"재원조달 계획·민자 사업 추진 이유·경제적 타당성에서 비용이 축소된 이유, 9개 노선을 10년 안에 추진해야할 만큼 시급한지 등을 제가 얘기했던 것들 꼭 물어봐주세요."

다음은 권오인 팀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추상적인 용역 보고서... 재원 조달 계획 등 빠진 게 많다"

- 시민단체들은 이번 경전철 사업 발표에 대해 소통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박 시장은 취임 때부터 무분별한 토건 사업을 경계했다. 또 민자 사업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발표부터 해놓고 밀어붙였다. 9개의 경전철을 10년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짓는다는 것은 서울을 공사판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박 시장의 기존 철학과 배치되고 있다. 이미 노원구와 관악구 신림에는 '민주당이 해냈다'는 식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결국 정치적 의도가 들어간 것이다. 내년에 지방 선거가 있으니 이에 맞춰서 발표하지 않았겠나. "

- 박 시장이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서울시가 보완·개선한다는 기대를 할 수 있지 않나?
"지난 주,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에서 전화가 와서 토론회 참가를 요청했다. 그런데 토론회에 참고할 용역보고서를 8월 2일에 발표해놓고 6일에 토론회를 하자고 했다. 700쪽이 넘는 보고서를 4일 안에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문 영역이 많아 밤새 봐도 쉽지 않다. 토론회를 할 수는 있겠지만 수준 높은 토론이 되기 어렵다.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자기 입장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다. 서울시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다 같은 의견일 것이다. 사업 검증이 한두 달에 끝나는 게 아니다. 여러 논란이 터져 나오면 그 보다 더 1년 가까이 길어질 수 있는 문제다. 서울시가 급한 것 같다."

- 박 시장은 경전철 사업의 당위성을 '교통 소외 지역의 복지'에 맞췄다. 소외 지역 복지를 위해서 서울에 9개나 경전철이 필요할까?
"당장에 9개 노선을 일시에 추진할 만큼 시급하지는 않다. '교통 소외'라는 박 시장의 명분도 빈약하다. 대중교통이 없어서 걸어 다니는 게 아니다. 구석구석 마을 버스가 다 있다. '어디서나 10분 안에 도시철도'라는 구호로 시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 서울시가 지난 2일 공개한 용역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다. 보고서를 총평한다면?
"추상적이다.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민자 사업 추진 방식 등이 제대로 나타나 있지 않다. 어떻게 재원을 끌어올 것인지는 보고서를 봐서는 알 수가 없다. 가용 재원만 밝히고 있는데 서울시의 세입에서 지출을 빼고 쓸 수 있는 재원을 뭉뚱그려서 제시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향후 예산 배정 순위와 항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서울시에 돈이 없는 상황에서 어디서 돈을 끌어올 것인지 모르겠다. 실제 투자가 안 된다면 빚을 낸다는 것 아니겠나.

경제적 타당성을 산출하는 변수도 검증해야 한다. 변수에 운영 비용·대기오염 감소·통행시간 절감 등을 설정할 수 있는데 이런 변수들이 과연 제대로 적용된 것인지, 또 변수 산출이 타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서울시가 경제적 타당성과 수요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고 나머지는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경전철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재무적 타당성은 이미 마이너스로 나왔다. 향후 서울시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발표해야할 것이다."

"수요가 많든 적든, 민자에게 세금을 나눠주는 꼴"

▲ 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 ⓒ 권우성


- 빚이 26조원인 서울시가 8조원 사업을 벌이는게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도 많은데.
"서울시 재정 상태는 빡빡하다. 빚만 27조 원 가까이 되고, 연 이자만 1조 원 이상이다. 재정이 충분치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디서 돈을 끌어올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다. 부채 갚기에도 급급한데, 추가적인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시장은 임기 동안 빚 7조 원을 갚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경전철 신설로 부채가 늘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최소운영수입보장(MRG·Minimum Revenue Guarantee) 제도가 없어졌지만 이번에는 동일요금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민자가 제시한 요금과 기본요금의 차이를 실수요에 맞춰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시는 매년 300~400억 원의 보전금을 예상했다. 수요가 적다면 보전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민자가 재정 상태가 안 좋아지면 요금 인상도 요구할 수도 있다.

- 지하철·버스까지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향후 수익이 나오지 않았을 때 민자는 요금인상을 요청할 수 있다. 또 나중에 시장이 바뀌면 시장 성향에 따라 요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바뀐 시장이 재협상을 할 여지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 그렇게 되면 경전철이 세금폭탄이 된다는 말인가?
"폭탄까지는 아니지만 민자의 수입 보전은 서울시 재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만큼의 혈세가 낭비된다는 것이다. 민자사업을 반대하던 사람이 민자사업에 빨려 들고 있다. 과거 민자사업을 보면 8~9%의 수익률을 보장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6%다. 하지만 그 자체도 작은 금액이 아니다.

민자사업제도는 IMF 이후, 외자유치를 통해 경제 활성화 취지로 시작됐다. 민간 자본을 통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자사업은 선출직 공무원이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악용되고 있다. 민자사업의 출발은 언제나 개발 공약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임기 내에 뭔가를 해줬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민자사업을 끌어들였다. 임기가 끝나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특혜와 재정 낭비로 이어졌다."

- 서울시 경전철 사업도 그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수익률을 낮췄다고 하지만 이전 민자사업과 똑같은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과거 민자에게 1000억 원을 줬다면 서울시 경전철 사업은 800억 원을 주는 꼴이다. 서울시는 민자사업을 하는 게 타당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800억 원도 줄 이유가 없다. 한꺼번에 하려고 하다보니까 무리수를 두고 있다. 매년 수백억 원의 보전금과 시비·국비를 민자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그 돈으로 서울시가 직접 사업을 하는 게 맞다."

- 사업 성공 여부가 수요에 달려 있다. 서울시는 1km당 1만 명 이상의 수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신뢰할 수 있을까?
"서울은 지방하고 다른 측면이 있다. 지방은 교통 여건이 달라서 경전철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경전철이 다른 도시철도하고 연계가 잘 된다면 수요는 어느 정도 확보될 수 있다고 본다.

수요가 예상보다 많아진다면 그 돈은 결국 민자에게 돌아간다. 수요가 많든, 적든 민자에게 세금을 나눠주는 꼴이 된다. 민자를 택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서울시는 최소운영사업보장 제도가 없고 민자의 수익률을 낮췄다는 말로 시민을 설득하고 있다. 따져보면 1000억 줄 걸, 800억 준다는 식이다."

"민자사업, 결국 서울 도시철도 공공성 떨어뜨린다"

- 재정 외에 민자사업의 부작용은 어떤 게 있을까?
"민자는 수익추구에만 몰두한다.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는 등 비용 절감에 매달린다. 그러다보니 무인으로 운영하는 등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용인과 의정부 경전철은 이미 비상시스템 미작동 등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민자들은 돈만 뽑아가고 시민 교통 서비스 제공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경전철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민자사업이라는 게 결국 민영화다."

- 한편, 2008년 경전철 7개 노선 신설계획을 발표한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우이신설선과 신림선, 동북선만 사업자가 지정돼 있다. 수익률이 낮아 민자 투자 유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자들이 참여할 것 같다. 5~6% 수익률 보장하고 보전금도 주고, 시비·국비 50%가 들어가는데 민자가 안 들어올 수 없다. 공사비와 부속 시설 등에서도 운영수익을 남기기 때문에 민자에게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 경전철 사업은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경전철은 시급한 게 아니다. 지금 공사 중인 우이신설선의 향후 과정을 지켜보고 사후 평가를 통해서 재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나머지 노선을 순차적으로 하면 된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일단 칼을 뽑아들었기 때문에 쉽게 칼집에 넣지 않을 것 같다."

- 마지막으로 박원순 시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 시장은 전시성 토건 사업을 경계했다. 또 서울시 부채의 심각성을 말했지만 경전철은 본인의 말과 배치된다. 이건 정치적 논리로 흔들려야 할 사안이 아니다. 지금 방식으로 가면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을 따라가게 된다. 박 시장이 행정시장에서 정치시장으로 가려는 게 보인다. 기존 정치인들이 하던 공공 대형 사업을 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전 시장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종합적으로 검토·검증이 이뤄지고 난 뒤에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 과정도 밀어붙일 게 아니라 시민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박 시장이 투명하게 하기로 한만큼 자료는 그때그때 공개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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