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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점빵 욕쟁이 할아버지의 혼꾸멍도 그립네요

[공모-있다 없으니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구멍가게'에 얽힌 추억

등록|2013.08.08 14:07 수정|2013.08.08 14:07
30여 년 전 여수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풍년상회'를 거쳐야만 했다. 풍년상회는 '점빵(구멍가게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그 점빵 주인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소문난 욕쟁이, 욕심쟁이였다. 할아버지는 부리나케 지나치려는 나를 불러 세워 인사를 안 한다고 혼꾸멍을 내곤 했다.

내가 지레 겁을 먹고 공손히 인사라도 하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인사를 받으며 맛난 쫀드기를 하나씩 주시곤 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항상 가게 앞 평상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를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점빵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을 지키기 위해 광주에서 시집왔다는 낯선 며느리가 꾸려 나갔다. 다행히 한동안 서먹서먹했던 가게 분위기는 어느새 할아버지가 일궈놓은 정겨운 분위기로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구멍가게라 해봤자 간단한 부식에 싸구려 놀잇감이나 군임석(전라도에서 군것질 음식을 이르는 말) 판매가 주였지만 우리들의 애환을 담고도 남는 곳이었다. 꼭 살 것이 없어도 아줌마들은 오다가다 들러서 한참을 수다를 떨다 가기도 했고, 돈이 없으면 외상까지 받아줬다.

혹시라도 집안 곳곳을 뒤져 동전 몇 닢을 찾아낸다고 해도 라면을 사기에 턱없이 부족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중에 준다고 달아놓고 가져 오니라!"며 등을 떠밀곤 했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두부 반 모랑 콩나물 200원 어치만 주세요!"
"아따, 아들 참 착흐네. 오늘도 또 심부름 와부렀는가? 느그 엄니가 계란 사오라고는 안 하드냐? 엊그제 한판 사갔는디, 식구가 많아서 볼쎄 떨어질 때가 됐는디~?"

그야말로 구멍가게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평상에 둘러앉아 삼삼오오 앉아 시어머니의 흉과 자식 자랑 그리고 간밤에 본 연속극 얘기로 꽃을 피웠다. 옆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구멍가게 잡아 먹은 '재벌 구멍가게', 그 이름은 '편의점'

▲ 아직도 소탈한 웃음으로 동네 이웃들을 맞이하는 맘씨 고운 할아버지의 구멍가게가 있다. (광양 익신마을의 한 구멍가게) ⓒ 김학용


시골집에 가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정 넘치는 풍년상회. 그런데 어른이 되어 무심히 지나친 그곳은 언제부터인지 문을 닫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후 10여년간 구멍가게를 꾸리시던 주인 아줌마는 인근에 현대식 마트가 들어서자 설 곳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남편과 차량으로 여기저기를 떠돌며 생필품과 부식 등을 팔러 다니다가 지금은 어디에서 사는지도 모른다고 전한다. 대신 점빵 할아버지의 가게가 있던 10여평 정도의 그 자리에는 이제 재벌의 동네 점포 잠식 작전에 의해 편의점이라는 이름으로 24시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정든 구멍가게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개인의 손을 떠나 공룡 집단으로 넘어가고 우리의 맘씨 고운 착한 이웃들은 설 곳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만 것이다.

할머니 고쟁이 잡고 드나들던 그곳이 그립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고쟁이를 잡아당기며 드나들던 마을의 구멍가게 주인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나마 딱 하나 남은 시골 동네의 구멍가게인 시민상회 아저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삼십여 년 구멍가게 꾸려서 애들 학교 보내고 겨우 입에 풀칠은 했는데…. 자고 일어나면 우후죽순 생기는 그 뭐라더라, 편의점인가 뭔가 하는 것에 떠밀려 이젠 하루에 만 원 벌기도 힘들어. 말할 수 없을 정도니까… 죽지 못해 사는 거지 뭐!"

▲ 전방 30m에 들어선 편의점을 바라보는 이 구멍가게는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 김학용


대기업이 만들어 낸 편의점, 슈퍼마켓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오랫동안 지역에 터전을 잡고 주민들과 소통했던 구멍가게는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옆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내던 시대가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어릴 적에 심부름 가서 10원짜리 몇 개 덜 가져왔다고 애교부리는 나에게 다음에 가져다 달라고 웃으며 배웅하는 그들의 모습, 딱 그것뿐이다. 

계산대에서 '삐익~!' 하며 흘러나오는 바코드 인식음이 아닌 진짜 미소가 담긴 얼굴로 서로 인사할 수 있는 그곳이 이제는 그립다. 규격화된 매장 형태에 지극히 기계적인 아르바이트생에게 과연 구멍가게 시절의 사람 냄새와 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24시간 현금인출기능에 교통카드충전, 택배접수, 공과금 수납, 상품권 판매, 티켓 발권, 휴대폰 개통은 물론 포인트 적립에 1+1행사까지…. 소비자의 편의성 지향을 극대화한다며 등장한 편의점의 다양한 서비스와 혜택들은 대기업의 능력을 톡톡히 확인하고 있다. 한 편의점 업체의 CF광고가 떠오른다.

"편리한 생활 속의 쉼터, 한국형 편의점!"

하지만 이런 메시지가 우리를 결코 행복하게 할 수는 없으리라. 이제는 시골 노모에게 서울 작은 아들이 보낸 택배는 누가 받아주고 군인 간 오라버니 편지는 누가 웃으며 전해줄까.

▲ 어린 시절 동네의 구멍가게는 간단한 부식에 담배나 군임석을 파는 게 전부였지만 우리들의 애환을 담은 곳이기도 했다. ⓒ 김학용


낮술을 즐기던 욕쟁이 할배의
고향 동네 구멍가게는
우리들의 천국이요,
막걸리 한 사발 나누는
쉬어가는 사랑방이었어요

외할머니 고쟁이 잡아 당겨
몰래 감춘 쌈짓돈 털어
오다마 사탕 하나 물고 나오면
이 세상 부러울 게 없었죠

기껏해야 싸구려 놀잇감
총천연색 군임석 팔면서도
한자리에서 평생해도 좋을 장사라고
큰소리치던 욕심쟁이 주인

군인 간 오라버니 군사우편이며
외국에 돈벌러간 아버지의
항공우편 전해주며
유세부리던 욕쟁이 할배

좁디좁은 공간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귀신같이 잘도 찾아냅니다

아, 이름이 구멍가게라
어디 가게에 구멍이라도 뚫려버렸을까요?

평상이 놓여있던
풍년상회 그 자리엔
이젠 영어간판을 단 국적불명의
가게가 새벽까지 불을 켜고 있는데

쌍둥이도 아닌 것이 
이젠 편의점이란 이름으로
여기도 저기도 앞에도 뒤에도
모두 같은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사랑방 터줏대감이던
욕심쟁이 할배는
저 차가운 땅속에서

제대로 눈이나 감을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있다 없으니까'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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