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불법, 언론이 한 줄만 써줬더라도..."
[현장] '현대차 불법파견철회' 철탑농성 최병승·천의봉, 296일만에 내려와
▲ 8일 오후 1시 10분, 현대차 명촌정문 앞 철탑에서 현대차비정규직인 최병승, 천의봉 조합원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간부들과 함께 크레인을 타고 철탑에서 내려오고 있다. ⓒ 박석철
8일 오후 1시 10분,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명촌 정문 앞 철탑농성장. 수은주는 37.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십 명의 언론사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가운데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노조) 최병승(38)·천의봉(33) 조합원이 크레인을 타고 송전철탑에서 내려왔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 17일 현대자동차 명촌 정문 앞 송전철탑에 오른 지 296일만이다. 담담한 표정의 두 조합원은 기다리던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이내 천의봉 조합원은 허리가 좋지 않은 듯 자리에 주저 앉았다.
크레인이 땅에 도착한 후 두 조합원은 주먹을 불끈 쥐고 기다리고 있던 조합원들에게 인사했고, 두 시간 째 땡볕에서 기다리던 500여 명의 비정규직 조합원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은 '불법파견 철폐'를 외치며 이들을 반겼다.
철탑에서 내려온 최병승·천의봉 조합원
▲ 296일만에 철탑을 내려온 최병승씨가 울먹이는 천의봉씨를 부둥켜 안고 있다. ⓒ 박석철
8일 오전 11시가 되자 비정규직 조합원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최병승·천의봉 조합원이 올라간 현대차 정문 앞 철탑 아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희망버스 기획단, 대학생들도 철탑농성장에 속속 도착했다.
언론사들의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낮 12시가 되자 50여 명의 기자들이 모여 들었고, 두 조합원이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는 순간 기자들은 사진을 찍을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장하나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이 철탑에서 내려온 두 조합원과 자리를 함께 했다.
철탑에서 두 조합원이 내려오기 전인 낮 12시 55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철탑 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을 향해 불법파견 철폐를 거듭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오늘부로 대정부 투쟁을 선포한다"고 했고, 금속노조는 "두 조합원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며 "이제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망버스 측은 "철탑농성은 현대차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며 "따라서 오는 31일 희망버스는 울산 이곳으로 달려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왜 언론은 불법파견 보도는 하지 않느냐"
▲ 8일 오후 1시 10분 철탑에서 최병승· 천의봉 조합원이 내려오는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언론사 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 박석철
최병승씨가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 심정을 이야기 하는 동안 천의봉씨는 웅크린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장기간 고공 농성과 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허리 상태가 나빠진 탓이었다.
최병승씨는 수십 군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오셨는데, 그동안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 한 줄만 써 주셨더라면, 정몽구 회장이 불법이라고 한 줄만 써 주셨더라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언론은 침묵하냐"라고 말했다.
그는 "철탑에 올라 갈 때 마음은 오직 하나 이 지긋지긋한 불법파견이 해결됐으면 하는 것이었지만, 또 한편으로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이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실제로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병승 조합원은 이어 "포기할까 수없이 생각했다"며 "하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철탑에 있을 수 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두 조합원은 이날 오후 1시 40분쯤 동료 조합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체포영장이 발부된 경찰로 자진 출두했다.
▲ 최병승·천의봉 두 조합원이 철탑을 내려오기 직전인 8일 낮 12시 55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시민사회단체가 철탑 아래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석철
▲ 8일 오후 1시 10분, 철탑에서 내려온 천의봉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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