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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옛날 기억나세요?"

두 사람이 삼겹살 1인분 시켜먹던 그때

등록|2013.08.12 14:00 수정|2013.08.12 14:00
지난 11일는 모티프원의 리프레쉬 작업이 일찍 끝났습니다. 휴일은 맞은 아내가 도왔고, 서울의 둘째딸 주리도 합류해서 순조로울 수 있었습니다.  

딸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손님을 맞다보니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고 아내와 저는 아직 점심 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늦은 점심, 이른 저녁을 겸해서 우리 부부는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둘 만의 집 밖 식사는 몇 개월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그간의 긴 장맛비에도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피었고, 벼가 몸집을 키우는 초록빛 들판 끝, 메숲진 장릉의 소나무능선이 너그럽습니다.

▲ 긴 장마와 폭염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 갈현리의 논과 장릉의 소나무숲 ⓒ 이안수


두 사람이 먹을 양을 시켰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적지 않은 양이었습니다. 남은 볶음밥 몇 숟가락은 싸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내일 제가 먹을 속셈으로…. 아내가 그 밥을 끓어서 싸다가 말했습니다. 

"당신 옛날 기억나세요? 우리 두 사람이 삼겹살 1인분을 시켜서 함께 먹던…."

▲ 배불리 먹고도 남은 볶음밥이 28년 전,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삼겹살 1인분으로 둘이 나누어먹던 젊은 날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 이안수


저도 아내가 문뜩 떠올린 그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났습니다. 80년대 중반, 아내는 일을 하고 저는 공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내는 공부하고 있는 저의 기력을 위해서는 한 번쯤 고기를 먹어야한다고 생각했고, 아내가 앞장서서 흑석동 산동네 아래의 고깃집으로 갔습니다.  

고깃집으로 들어갈 때의 용맹스러웠던 모습과는 달리 메뉴판 앞의 아내는 주눅이 든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주머니 속의 돈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제적 사정으로는 메뉴판 가격의 2인 분 고기를 냉큼 시킬 형편이 아님을 안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집 메뉴판에 표기된 것 중에서 제일 싼 가격이었었던 삼겹살 1인분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타박하지 않고 불판을 얻어주시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주인 할아버지의 너그러운 표정에 용기를 얻어 물김치 두어 접시를 더 달래서 먹었었지요. 배를 꽉 채우고도 남아서 밥을 싸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다시 들추어진 28년 전 그 고깃집의 기억에 중첩되어 새삼스럽습니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 갈현3리 정자나무 아래의 평상에서 두 할머니께서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날의 더위를 시키고 계십니다. 머지않아 기억 속에나 남을 풍경입니다.

▲ 느티나무가 정자나무 역할을 하고 있는 갈현3리. 이 마을의 끝에는 대형고깃집이 성업 중입니다. 과연 언제까지 이 풍경을 유지하고 있을지…. ⓒ 이안수


장릉(長陵)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있는 장릉(長陵)은 조선 제16대왕 인조와 그의 비(妃)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韓氏)의 능으로 강원도 영월군 영월면 영흥4리에 있는 조선 제6대왕 단종의 능인 ' 장릉(莊陵)'과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에 있는 조선 제16대왕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된 원종(元宗)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仁獻王后具氏)의 능인 '장릉(章陵)'과 한자표기가 다릅니다. 갈현리의 장릉(長陵)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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