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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도 외칩니다... "박근혜 책임져라"

정선시국회의, 국정원 사태 관련 시국선언 열어

등록|2013.08.14 19:43 수정|2013.08.14 19:43
14일 정선의 하늘은 높았고 지상으로는 뙤약볕이 쏟아졌다. 긴 장마 끝에 이어지는 폭염은 시민들을 지치게 만들었지만, 막 영글기 시작하는 곡식들에게는 반가운 햇살이었을 것이다. 점심식사를 끝낸 시각, 정선군청 앞에는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일부는 폴리스 라인을 치는 등 바삐 움직였다. 대체 조용한 시골마을인 정선의 군청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경찰들까지 출동했을까.

손만 들어도 '빨갱이' 되는 시골에서... "박근혜 물러나라"

대선 무효 정선시국선언국정원의 선거 개입은 선거쿠데타이자 내란범죄이다. ⓒ 강기희


14일 정선에서는 '대선 전면 무효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정선시국선언'이 진행됐다. 행사 주최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정선시국회의'(이하 정선시국회의). 시국선언은 오후 1시 30분이었다. 그 시각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시간이었고, 정수리로 떨어지는 뙤약볕 또한 견디기 쉽지 않을 정도로 막바지 더위가 이어지던 시간이었다.

민원인이 다시 군청으로 몰리는 시간, 군청 앞에 설치된 음향 기기에서는 소위 '운동권 노래'가 흘러나왔다. '분노하라 정선!'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힌 현수막이 펼쳐지고 손 피켓이 등장하자 군청 앞은 술렁거렸다. 정선 같이 작은 도시에서 대통령과 '맞짱' 뜨는 시국선언을 한다는 것은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기에 더욱 그랬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65%가 넘는 지지율을 보내준 곳이 정선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박정희 정부 이후 여당세가 어느 곳보다 강한 곳이었다. 아직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빨갱이'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 정선에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곱지 못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가족이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으며 한치 건너면 경찰 가족이 있고, 공무원 친구가 수두룩한 정선에서 실명 투쟁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 등의 대도시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과관계가 있는 정선에서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

행사를 알리는 선전전을 할 때부터 '누구에게 사주를 받았느냐'서부터 '미친 짓 하지마라' 등의 전화를 받아야 했던 나로서는 행사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다. 이 더위에 몇 명이나 참여를 해줄지에 대한 걱정 또한 컸으니 간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소 귀에 경 읽기'였지만... 모였습니다

농민도 나섰다.국정원 해체 대통령 하야! ⓒ 강기희


국가정보원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 넘는 정선. 이곳에서 정선 주민들이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을 알리는 일은 힘들었다.

더군다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정선 주민들에게 있어 '소 귀에 경을 읽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이 비상 시국에 이대로 눌러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여 정선시국회의는 얼마 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행사 시간이 임박하자 밀짚모자를 쓴 농부를 비롯해 정선 곳곳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정선경찰서에서 후원한 냉수를 나눠 마신 후 정선시국회의는 행사 시작을 알렸다.

"투표의 의미가 무엇인가... 헌법 부정 내란범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정선시국선언 행사 중댓글 대통령 박근혜 하야하라! ⓒ 강기희


준비된 손 피켓이 들려지고 정선시국선언문이 낭독되는 순간 정선의 하늘은 적막했다. 마침 지나가는 구름도 하늘을 나는 새들도 보이지 않았으니 우리의 요구를 담은 선언문은 날 것 그대로 거리로 울려 퍼졌다.

"어떻게든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끝난다는 저들의 인식 속에서 대저 투표의 의미는 무엇이고, 민주주의는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단 말인가. 저들이 벌인 일은 단순한 선거범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선거 쿠데타이며 헌법을 부정한 내란범죄다."(정선시국선언문 중에서)

선언문 낭독에 이어 <임을위한 행진곡> 제창을 끝으로 20분 만에 행사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의 외침과 요구사항이 어느 곳까지 울려 퍼졌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조용한 시골마을에서도 국정원 해체와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있었음은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전문] 18대 대선 전면 무효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정선시국선언문
120년 전 참 자유와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염원했던 갑오농민혁명이 있었다. 그 후 일제에 항거한 3·1 만세운동이 있었고,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19 민주혁명과 전두환 군사독재를 끝장낸 6월 항쟁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반통일 세력인 이승만 독재가 있었고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박정희 군사독재와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 군사독재가 이어졌다. 그 세월 동안 수많은 민중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피를 흘렸고 독재에 항거하다 죽음에 이른 열사만도 수백에 이른다.

민간정부가 들어선지 20년. 민주주의는 그렇게 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고 염원했던 민주주의는 18대 대선에 개입하여 대규모 선거 부정을 일으킨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의 국가 기관과 새누리당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우리의 헌법은 유린당했다. 국가 기관이 자행한 부정선거에 관한 증거가 속속 들어났고 민중은 자괴감과 혼란에 빠졌다. 그럼에도 책임지는 자가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 우리는 지난 이승만 독재시절 자행된 3·15 부정선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드러난 실체적 진실만 봐도 지난 선거에서의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국가정보원은 권력을 동원하여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선거에 개입하였고, 경찰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국정원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는 것도 부족해 축소 왜곡을 일삼았다.

이렇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과 진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관련자들은 어떤 처벌도 받고 있지 않으며, 박근혜 대통령 또한 여전히 자신은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도움을 하나도 받은 게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저들이 벌인 악의 협동이 얼마나 감춰질지 모르지만 진실은 언제나 정의 편이었음을 상기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하고 있는 거짓말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며 민심을 우롱하는 처사와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그러하니 어렵게 합의한 국정조사가 표류하고 있고, 일련의 사태에 책임 있는 증인들은 국정조사조차 우습게보고 있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어떻게든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끝난다는 저들의 인식 속에서 대저 투표의 의미는 무엇이고 민주주의는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단 말인가. 저들이 벌인 일은 단순한 선거범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선거 쿠데타이며 헌법을 부정한 내란범죄이다.

이에 우리는 분노한 정선시민과 함께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며 대한민국 검찰과 박근혜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검찰은 국기문란 선거개입 전 국정원장 원세훈과 전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을 즉각 구속하라!
1. 국정원 사태 축소와 은폐 왜곡한 경찰 관련자 즉각 구속하라!
1. NLL 국가 기밀을 유출한 남재준 국정원장 즉각 해임하라!
1. 댓글 대통령 국정원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라!

2013년 8월 14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정선시국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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