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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광복절이 축제가 될 순 없을까

식상한 광복절 경축행사에 고함

등록|2013.08.16 18:17 수정|2013.08.17 16:13
지난 광복절 아침, 늦은 아침을 먹으며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KBS1에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 중인 광복절 경축행사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딱히 볼 프로그램도 없던 터라 그걸 보기로 했다.

행사는 빤했다. 광복절의 의미를 기리는 영상이 나오고,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에게 표창을 수여하고(묘하게도 표창장 수여자들이 모두 여성이었는데, 여성대통령을 의식한 선정인듯 싶었다) 나더니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했다.

워낙에 콘텐츠가 없는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식상한 행사에서 하는 말도 식상했다. 기억나는 것은 '세일즈 외교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을 세일즈 하겠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대목 뿐. '세계 8위 경제대국의 대통령이 무슨 세일즈를 하겠다는 거지?'라는 의문과 함께 미간이 찌푸려졌던 것이다. 한동안 부르짖던 복지 의제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까지 이 나라를 일궈온 것처럼 열심히 세일즈 해서 잘살아 보십시다' 하는 식의 재미없는 이야기가 이어졌고 으레 박수가 터졌다. 한마디로, 지루했다.

식상한 경축행사... 광복절은 그저 '빨간 날'?

지루한 소리는 집어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광복절이 축제가 될 수는 없을까. 그저 학교 안 가고 일터 안 가는 빨간 날 말고, 그 의미를 기리면서 즐거움도 누리는 날이 될 수는 없을까.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7월 4일인데, 이날은 미국 어디에 있든지간에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7월 4일 뉴욕에 있었던 나는 오후 9시부터 시작되는 메이시즈(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백화점으로 뉴욕에서 가장 큰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를 연다) 공식 불꽃놀이를 비롯해서 밤늦게까지 도시 곳곳이 축포로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빌딩의 옥상에서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며 먹고 마시고, 크고작은 불꽃을 터트렸다. 허드슨 강 위를 누비는 유람선에서도 끊임없이 레이저쇼와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뉴욕은 역시 뉴욕이어서 화려한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한편, 미국이라는 나라가 시작된 도시라고도 할 수 있는 보스턴 역시 독립기념일에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보스턴의 찰스 강변에서 찰스 강 위를 수놓는 폭죽을 구경하며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것은 미국의 오래된 전통이라고 할만한 일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독립기념일을 기다리고, 좋아한다. 미국에서 이런 대규모의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두 번 정도다. 새해를 맞는 1월 1일과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국경일에 불꽃놀이를 하는 일은 본래 액을 물리치고 귀신을 쫓는 중국의 전통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미국식 독립기념일 전통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광복절은 어떤 날인가? 빨간 날?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정부 차원의 경축행사를 열기는 한다. 대통령 연설 따위가 TV로 생중계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나 미국에서나 보통 사람들은 그런 지루한 행사에 별로 관심이 없다(원고를 줄줄 읽는 우리나라 정치인의 연설보다 미국식 대중연설이 좀더 흥미롭기는 하지만).

미국의 불꽃놀이와 한국의 국기 게양

올해 광복절은 미국에서 친구들이 오는 바람에 함께 광복절과는 별로 상관 없는 야외 뮤직 페스티벌을 즐기며 무척이나 신나게 보냈다. 하지만 스물넷 평생 광복절에 무얼 했던지 별로 기억나는 일이 없다. 즐거운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 익숙한 친구들은 "한국에서는 독립기념일에 뭘 해?"라고 물어왔지만 솔직히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이 TV에 나와서 지루한 소리를 늘어놓지"라며 농담으로 때웠다.

미국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독립기념일, 그러니까 광복절 기념 방식을 하나 꼽으라면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다. 퍽 의미있는 의식인 건 맞다. 하지만 솔직히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식의 국경일 기념 방법이 더 이상 별로 유효하지 않은 게, 우리는 원룸이나 고시원이나 기숙사 같은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태극기가 집에 없을 뿐더러 집에 국기게양대도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국경일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다가 깨달은 건데, 우리에게는 신나는 명절이 많지 않다. 서구에는 핼러윈데이가 있다. 모두가 재미있는 옷을 입고 사탕을 나눠먹는 날이다. 밸런타인데이에는 가까운 사람들과 초콜릿과 카드를 나눈다. 추수감사절에는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우리의 명절을 떠올리자니, 꽉 막힌 고속도로 풍경과 명절증후군이 먼저 생각난다. 그외에도 제헌절이나 한글날 같은 국경일이 있긴 하지만, 딱히 뭐가 신나는 건진 잘 모르겠다. 서구에서 유입된 각종 기념일 외에 단오라든가 춘절이라든가, 중국만 해도 아직 중요한 명절로 챙기고 있는 날을 우리는 이미 많이 잃어버렸다.

광복절은 분명 기쁜 날이다. 지루한 닭처럼 조는 박수 부대와 하나마나한 연설보다 더 재미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올해 나는 뮤직 페스티벌에서 "조용필 오빠"를 외치며 목이 쉬느라 가지 못했지만, 서울시에서 광복절 기념 콘서트를 연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며칠 전 봤다. 내년에는 그런 곳에 가볼 생각이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광복절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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