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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뺨 좀 때리고 갈게요~"

밤샘 근무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등록|2013.08.18 11:27 수정|2013.08.18 11:27

▲ 산청 성심원에 도착해 바라본 요양원 앞 은행나무 뜨락은 가로등만 빛난다. ⓒ 김종신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행정사무 일을 하다가 3년 전 사회복지 현장 돌봄으로 부서 이동을 했다. 아는 어르신들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무슨 일 있느냐"부터 시작해 "곧 행정사무로 복귀할 거다"라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도 했다.

사회복지종사자들은 행정사무보다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는 돌봄 노동자가 더 많다. 더구나 성심원처럼 생활시설인 경우는 절대다수가 돌봄 노동자다. 그럼에도 행정사무를 보는 노동자가 현장의 돌봄 노동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동료와 어르신들을 보면 때로는 의아하고 갑갑했다.

사무직이나 현장직이나 노동의 소중함은 다 같이 소중하고 거룩하지만, 아직도 현장직, 몸으로 더 많이 일하는 직종은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많다. 비단 성심원만 그런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이 다 그렇다. 육체 노동자를 얕보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오늘 이 밤도 무사히 건강하게 지내길 기원하며 밤 근무를 섰다.

밤 9시 30분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30분까지. 밤중에 특별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기저귀 3번 교체와 야간 라운딩이 주 일과다. 오늘도 다행히 위급한 상황과 위중한 어르신이 계시지 않아 밤은 더욱 깊어갔다. 동료와 교대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후다닥 아침을 맞는다.

▲ 노인전문주택 가정사에도 아침은 왔다. ⓒ 김종신


초인종 소리로 아침 6시를 알리는 원내 방송을 하고는 부지런히 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어르신들을 깨웠다. 대성당 올라가는 길, 가로등만 간밤의 흔적을 간직한 채 빛나고 있을 뿐이다. 노인전문주택 가정사에도 아침은 왔다. 부지런한 어르신들은 성당 미사 봉헌을 위해 벌써 요양원으로 하나둘 불편한 몸을 휠체어 등에 의지해 움직여 왔다.

▲ 요양원 안내실 앞. 성당으로 가는 길목 소파에 요아킴 어르신이 여느 때처럼 소파에 앉아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시다. ⓒ 김종신


요양원 안내실 앞. 성당으로 가는 길목 소파에 요아킴 어르신이 여느 때처럼 소파에 앉아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시다. 몇 년 전 근처 진주 청동기 박물관으로 요양원 어르신들과 소풍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르신께 앞도 보이지 않는데 불편하지는 않는지 여쭌 적이 있었다. "경치는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요" 라며 일어나 노래를 부르셨다. 두 눈으로 보는 세상만 바라보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내 무지가 깨졌다.

▲ 동갑내기로 이곳에서는 막내 해당하는 김 아무개.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이동, 세수한다. "거울을 보면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청년이 누군지 물어보느냐"는 뚱딴지같은 질문은 갑장은 그저 씨익 웃는다. ⓒ 김종신


동갑내기로 이곳에서는 막내 해당하는 김아무개.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이동, 세수한다. "거울을 보면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청년이 누군지 물어보느냐"는 뚱딴지같은 질문에 갑장은 그저 씨익 웃는다. 몸이 불편해 집에서 생활하다 가족이 돌보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이곳으로 왔다.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말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해 갑갑했지만, 차츰 눈치 등으로 알아듣는다. 언제까지 여기서 생활하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이 세월을 먹어가는 동갑내기가 있다는 사실에 반갑다.

▲ 청소실 한쪽에서는 새벽부터 원내 쓰레기를 따로 거두는 어르신의 손놀림이 바쁘다. ⓒ 김종신


청소실 한쪽에서는 새벽부터 원내 쓰레기를 따로 거두는 어르신의 손놀림이 바쁘다. 요즘은 3시 즈음에 일어나 경호강 언저리로 산책하러 다녀온 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신단다. 생활인 중에서 비교적 건강하신 분들의 노력 덕분에 살기 좋다.

▲ 성심원 건너편 산자락에 모락모락 피어오른 안개로 산이 하얗다. ⓒ 김종신


인수인계를 마치고 분주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료를 뒤로 한 채 요양원 건물을 나섰다. 오늘도 얼마나 뜨거우려나. 성심원 건너편 산자락에 모락모락 피어오른 안개로 산이 하얗다.

<KBS 개그콘서트> 뿜엔터테인먼트 코너에 나오는 유행어 '잠깐만요, 보라 언니 눈곱 떼고 가시게요~'처럼 차 안에서 시동을 걸고 2분 동안 숨 고르기 하면서 초췌한 내 얼굴을 룸미러로 살피며 눈곱을 뗐다. 밤 지새우고 아침 세수를 하지 않았네. 산청과 진주의 경계를 지날 무렵 어제 출근길에 사온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럼에도 졸음에 겨워 뺨을 때렸다. 내가 내 뺨을. 허벅지도 꼬집었다. 잠과의 전쟁이 따로 없다. 밤을 지새운 고역으로 혹여 졸음운전을 할까 냉커피도 마시고 차량 스피커 볼륨도 최대한 올리고 창문도 내리고. 집으로 가는 마지막 고갯길. 마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처럼 끈질기게 졸음은 다시금 눈꺼풀을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 한다.

"잠깐만요, 뺨 좀 때리고 갈게요~"

내 양 볼이 술을 마신 듯 붉은빛을 발할 때면 집에 도착한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 안도의 숨을 쉬고 집의 현관문을 연다.
덧붙이는 글 내 일기장, <해찬솔일기>에도 게재합니다. http://blog.daum.net/haechansol7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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