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나라' 고성 들녘에는 논고동알이 꽃처럼 붉다
[디카詩로 여는 세상⑦] <8월>
▲ 고성들녘의 논고동알 ⓒ 이상옥
논물은 하늘을 담아 수정처럼 빛나고
논고동알은 벼포기에 꽃처럼 피어 있다
- 이상옥의 디카시 <8월>
내 고향은 경남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이다. 경남 고성은 공룡나라 고성(고성공룡세계엑스포)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보다 더 의미 있고 또 더 알려져야 하는 것이 고성생명환경농업이다.
나는 최근 방학이라 고향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 시골집은 배산임수로 참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 뒤는 산이고 마을 앞은 조그만 개울이 흐르고 조금 더 앞에는 냇가도 있다. 그러나 7, 8월 무렵이면, 겉모양만 전원풍경이지, 시골집 주변 환경은 도시보다 더 열악했다. 잘 닦여진 농로를 따라 냇가로 낭만적으로 산책하고 싶었지만, 농약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벼포기가 자랄수록 환경은 최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여름의 시골집 주변 환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성생명환경농업으로 농약을 치지 않으니, 내 어릴 때 마음껏 뛰놀던 그 시절의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다. 어릴 때 지천으로 보았던 여치 같은 생명체들이 어디서 왔는지, 시골집 마당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 고향집 앞 들녘 조그만 농수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붉고 건강한 논고동알도 흔하게 보인다 ⓒ 이상옥
지난 2월 22일에는 고성생명환경농업연구소가 고성읍 남해안로 일원에 건립되었다. 이 연구소는 지난 2010년~2013년까지 4년간 사업비 50억 원(국비 20억 원, 지방비 30억 원)이 투입돼 WTO 체제하의 무한경쟁, FTA 체결 등 어려운 대내외적 농업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고성생명환경농업의 심장부 역할을 하게 된다. '공룡의 나라' 경남 고성이 '생명환경농업의 메카'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고성생명환경농업은 2008년부터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로 인해 고성들녘의 생태계 복원을 체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농법은 미생물을 이용해 살아 숨 쉬는 흙과 땅심을 키운 뒤 한약 및 녹즙 발효액 등으로 농약과 비료를 대신해 안전성을 보장하는 바, 왕우렁이(논고동)로 제초제를 대신한다.
▲ 자세히 보면 벼포기 근처에는 작은 논고동들이 맑은 논물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잡풀을 갉아먹어 논바닥이 깨끗하다. ⓒ 이상옥
▲ 논물이 넘치자 논에 있던 논고동들이 경계를 넘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있다. ⓒ 이상옥
고성군에는 생명환경농업 도입 첫해인 2008년에는 163㏊이던 것이 이듬해인 2009년 559㏊로 급증했고, 2010년 570㏊, 2011년 612㏊, 2012년 617㏊, 2013년 620㏊로 꾸준히 늘어 농가수도 첫해 295농가이던 것이 지금은 1천 농가에 달한다는 전언이다.
고성군 생명환경농업은 벼농사가 주종이었지만 참다래를 비롯한 딸기 등의 타 작목반도 운영되고 있고 소와 돼지 등 축산분야도 지역 내 보급을 위해 군에서 시험 사육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고성생명환경농업이 수년 내에 이만큼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이학렬 고성군수의 확고한 신념과 리더십의 결실이 아닌가 한다. 기회가 닿는 대로 이학렬 군수는 대학, 공무원교육원 등에서 특강을 통하여 WTO 체제하의 무한경쟁, FTA 체결 등으로 위기를 맞은 한국농업의 미래가 '생명환경농업'에 있음을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공간에 빚어지고 있는 공해, 오염, 자연파괴의 문제는 우리의 일반적인 사회관계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적의와 긴장에 차있을 뿐더러 우리의 사회상황이 극심한 부패와 윤리적 타락으로 고통 당하고 우리 각자의 내면이 날로 피폐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 정확히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위 글은 김종철이 1991년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한 말이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읽어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오늘의 환경문제는 단순히 외부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환경의 오염과 대응한다. 오늘날 언론지면에서 대서특필되는 엽기적인 살인 같은 비인간적 폭력성은 날로 피폐해져 가는 도시나 농촌의 환경문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나는 고향 들녘을 산책하다가 벼포기에 붉게 피어 있는 논고동알을 보며, 또 마치 우물물처럼 맑은 논물을 보면서 내 마음의 무한한 정화를 느꼈다.
고성생명환경농업이 단순한 농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삶의 패러다임을 대 전환하게 하는 한 단초로 기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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