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현실적이라 현실감 없는 우리네 풍속도
[리뷰] 정아은 <모던 하트>
▲ <모던 하트> 표지 ⓒ 한겨레출판
이제는 대학을 넘어서 고등학교와 중학교, 심하면 초등학교까지 이런 현실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에 자식을 보내려 안달하는 부모들, 최근까지 불거졌던 국제중 사건까지. 남들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현 세태가 이런 현상을 조장하고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당신에게 줄 돈은 없다'고 속삭이면서 말이다. 이렇게 돈에 노예가 되기 시작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애도, 사랑도, 내 인생도.
누구나 현 세태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해 속시원히 꼬집어준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한겨레문학상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소설 한 편이 당선됐다. 바로 정아은의 <모던 하트>(한겨레출판 펴냄)다. 출판사에서는 "익숙하면서도 쿨한 대도시, 연인과 직장의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려낸 세태소설"이라고 소설을 소개하고 있지만, 필자는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너무 현실적이라 현실감이 없는 우리네 풍속도"라고 말이다.
헤드헌터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 본 학벌지상주의
출신대학을 왜 그렇게 따져요? 일만 잘하면 되지. 희한한 사람들이네. (중략) 미연씨가 아직 대한민국을 모르는구나. 대한민국에서 출신대학은 낙인이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 경력 좋고 대학원 좋은 데 나와봐야 아무 소용없어. 대학을 좋은 데 나와야지. 학부를 좋은 데 안 나온 사람은 절대 A급이 못 돼. 외국계 회사도 정말 인지도 높은 회사는 사람 뽑을 때 출신대학 다 따져. Z사 봐. SKY 출신 아니면 아예 이력서도 보내지 말라고 하잖아? 서울대 대학원, 아니 하버드 대학원 나와도 대학 좋은 데 안 나오면 다 꽝이라고. (본문 98~99쪽 중에서)
필자도 대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공부만 잘하면, 일만 잘하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그저 환상인 것임을 안다. '더 좋은 대학에 다니는 일 잘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보증이나 추천이 없다면 지방대에 다니는 학생이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보다 경쟁률이 떨어진다. 토익 점수가 낮다면,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경쟁률은 더 떨어질 것이다. 사람을 뽑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사람'을 보지 않고, 어떤 이가 더 나은 가를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대학 하나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세상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미연도 학벌에 대한 콤플랙스를 가지고 있다. 미연이 뇌까리는 말들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리라 생각한다. 학벌지상주의에 대한 분노.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야 하기에 학벌에 안달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수치. 지잡대라 천대받는 자괴감 등. 언어로 표현하기에도 복잡미묘한 감정들이다. 이 세상에 사는 누군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최종 이름값은 '전문대 졸업'이 아니라 '헤드 핸 코리아 재직'이라고 생각해왔다. (중략) 대체 이때까지 세상에서 무얼 배웠던 말인가. 수치심으로 얼굴이 홧홧거린다. 가짜 신분증을 들고 다니다가 들킨 기분이 이럴까. (모던하트 100쪽 중에서)
서울대 출신 의사와 Y대 출신 연구원 태환. 갑자기 그들이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고귀한 귀족처럼 느껴졌다. 나는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는 존귀한 계급에 속한. 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설령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면 나는 이미 비천한 존재이다. (모던하트 211쪽 중에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명절에 친척들은 서로 자식들 자랑하기 바쁘다. 누가 어느 대기업에 들어갔니, 누구는 어떤 대학에 들어갔더라 등. 대부분의 부모들이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좋은 감정부터 품는다. 그 사람이 어떤 인격과 성품을 가졌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를 후광효과라고 말하던가. 어떤 사람의 본 모습은 그 사람이 가진 후광(대학, 직위 등)에 가려 은폐되고 오로지 그 후광으로만 평가된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들을 겪었거나 보통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필자 또한 여기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엄마에게 제부는 일종의 로망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 자리를 내주지 않던 세연이 서울대에 못 가고 K대에 가게 되었을 때부터, 엄마는 사위라도 서울대 나온 사람을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모던하트 144쪽 중에서)
작가는 이런 세태를 꼬집기 위해 제부(동생의 남편)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작가는 이 세상에서 사란을 판단하는 잣대가 학벌만이 '다'가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제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그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대 로펌이라는 K법무법인을 다니고 있었다. (중략) 제부는 3년 동안 K법무법인의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매해 고시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 후로 아예 사무장을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고시 준비'에 들어가 지금에 이르렀다. (모던하트 53~54쪽 중에서)
제부란 인물은 서울대 법학과라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대학과 최고의 학과에 진학했지만 사법고시에는 번번히 낙마한다. 그런 현실에 낙심했는지 언젠가부터는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집에서 밥만 축내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서울대라는 대단한 곳을 졸업한 그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런 제부를 보고도 세상 사람들은 학벌을 좇고, 대기업을 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결혼하길 원한다.
학벌이 좋아서, 다니는 직장이 좋아서, 돈을 많이 가져서.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인연을 맺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살아보면 그런 것들은 딱히 중요하지도 없는데 말이다. '성격 차이' 때문에 헤어지는 부부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직장을 구하는데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이력서에나 한 줄 써내는 것 외에는 그다지 쓸모도 없는 대학 졸업장이 인생의 대부분을 결정한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슬픈 일이다.
부동산에 목매는 사람들을 통해 본 물질만능주의
20억. 여자는 선영과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녹물이 나오는 30년 된 아파트에 전 재산과 미래 기회비용을 올인하고 궁핍하게 살면서 은마가 타워팰리스로 변신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선영과 만나고 온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부동산 사이트에 접속해서 은마 아파트의 시세를 조회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은마 아파트를 스무 번도 넘게 사고팔았다. (모던하트 180쪽 중에서)
소설은 학벌뿐만 아니라 부동산 대박을 기대하는 이들도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서민들의 재산이 부동산에 쏠려 있는 특이한 나라다. 더군다나 외국에서는 주택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아파트를 수억의 빚을 끼고 사는 이상한 나라다. 하우스푸어라는 신조어도 여기서 등장했다. 집을 가지고는 있지만 대출이자 때문에 일상생활조차 허덕이는 사람들.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물론 수많은 이유가 있다. 자신의 집을 가지고 싶다는 일념, 부동산으로 대박을 치고 싶다는 헛된 기대 등 아주 다양하다. 그런데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소망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집이란 주거공간이라는 개념보다는 사면 높은 값에 되팔 수 있는 것, 더 크게는 투기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크다. 사람들은 집을 살 때 자신만의 집을 가졌다는 생각보다는 집 값이 오르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이다. 이것이 다 이들만의 잘못일까.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기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다. 현재의 삶을 즐기기보다는 집을 사기 위해 악착같이 절약하고 돈을 모은다. 그리고 아파트에 자신의 "전 재산과 미래의 기회비용을 올인"하고 또 다시 궁핍하게 살아간다. 인생의 대부분을 아파트에 바친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지 않는가. 지금도 자신의 집을 사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과연 지금의 생활이 행복한가. 아파트를 산 이후에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성역이라 여겼던 사랑도 학벌과 물질에 물들다
태환은 그날 참가했던 50여 명 가운데 가장 돋보였다. 일단 눈에 띄게 키가 컸고, 길고 가는 얼굴에 날렵하고 높은 콧대, 살짝 긴 듯한 머리가 순정 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프로필도 착했다. 국내 제일의 사립대학이라 불리는 Y대를 졸업한 뒤 미국계 유명 핸드폰 제조업체인 H사에 다니고 있었다. (모던하트 75쪽 중에서)
<모던 하트>의 절반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순수, 열정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에서 순수와 열정은 멀어지고 능력과 재산을 떠올리게 된다. 뭐 외모까지 좋다면 금상첨화일지도. 소설 속에서 미연은 태환에 대한 호감을 "국내 제일의 사립대학인 Y대"와 "미국계 유명 핸드폰 제조업체인 H사"에서 찾는다. 물론 외모도 포함이다.
태환은 채식주의자에 클래식을 좋아한다. 미연은 채식과 클래식에는 젬병이지만 태환과의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것 쯤은 참아주기로 한다. 외모와 학벌, 준수한 직장까지 갖추고 있는 완벽남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상도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만나려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비하를 하면서도 머리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을 빛내줄 것이라 믿고 만다.
이런 미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흐물이란 인물이다. 흐물은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연봉이 높은 전문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연을 위해 "돈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미연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흐물에게 일말의 호감도 없다. 흐물은 미연에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지방대를 나와 겨우 공사에 들어간 놈"일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만나는 것은 흐물이 자신이 들어놓은 보험이기 때문이다. 흐물이 자신에게 보낸 꽃바구니조차 "태환에게서 온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하니 더이상 말은 필요없다.
흐물이 좋은 게 아니라 보험에 들어놓고 싶은 거 아닐까? 나이는 드는데 옆구리는 허전하니 비상용 남자나 하나 구비해놓자, 뭐 그런 거." (중략) 나는 화가 치밀었다.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말하는 민선의 경솔함에, 은근히 인화 언니를 좋게 생각하는 흐물의 속물스러움에, 흐물 같은 남자에게 관심을 표함으로써 스스로 품격을 낮춰버리는 인화 언니의 바보 같음에. (모던하트 117~118쪽 중에서)
흐물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학벌과 외모를 메우기 위해 미연에게 돈을 쏟아붇는다. 필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외모에는 딱히 경쟁력이 없어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영화를 보여주기도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대체로 통하지 않았다. 필자를 미연처럼 보험으로 여기거나, 부담스러워 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외모나 학벌은 넘어서기 힘든 것이었다. 미연 역시 끝내 흐물을 선택하기보다는 태환에게 마음을 준다. 성역인줄만 알았던 사랑에도 이제 학벌과 물질이 들어와 버렸다.
그냥 읽어넘기기보다는 한 번쯤 돌이켜보기를
<모던 하트>는 "너무 현실적이라 현실감 없는" 소설이다. 그래서 쉽게 읽고 넘겨버리기 쉬운 소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현실적이기에, 현실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어떤 세계에 속해 있으면 그 바운더리 안에서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세계의 전체를 보게 되면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모던 하트>는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땅에 있을 때 크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하늘에서 보면 작아보이는 것처럼. <모던 하트>가 현재 살고 있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냥 읽어 넘기기보다는 한 번쯤 돌이켜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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