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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대한민국엔 '불온'이 필요하다

[서평] 정병욱 <식민지 불온열전>

등록|2013.08.21 10:46 수정|2013.08.21 14:26

▲ 식민지 불온열전 ⓒ 역사비평사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

어떤 단어에 대한 뜻 풀이일까? 그럼 이렇게 접근해 보자. 지난해 3월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이 정부 허가 없이 방북했다. 그러자 7월 5일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공안당국은 북한을 추종하거나 대선을 틈타 혼란을 부채질하는 'OO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달라"고 했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인가. 그럼 며칠 전 있었던 발언을 예로 들겠다.

지난 10일 서울 광장 5만 명 등 전국 각지에서 10만명의 시민이(주최측 추산) 모인 6번째 촛불집회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새누리당은 민주주의 사이에서 'OO이니 과격이니 딱지 붙여놓고 민주주의 세력을 분열시켜 왔다"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이 사용한 단어는 '불온'이다.

권력은 비판세력을 '불온세력'으로 낙인찍어

정 최고위원과 이 대표 발언을 통해 확인했듯이 보수와 진보를 떠나 '불온'으로 낙인 찍히는 순간,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이나 세력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진보세력조차 자신들이 불온세력으로 규정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

하지만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라는 뜻풀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자신의 신념과 사상에 근거해 기존권력에 저항하다가 불온세력으로 낙인 찍혀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온세력이라며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더 문제다.

대한민국 독재권력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을 불온세력으로 몰아 처벌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부는 '불온서적 목록'을 만들어 군인들 사상까지 통제했다. 불온서적에 저항했던 법무관은 법정에 섰다. 대한민국 헌법재판관들은 사상을 통제하는 불온서적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MB정권 국방부 '불온서적'이란
지난 2008년 7월 당시 국방부는 '북한 찬양' 도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지상에 숟가락 하나> '반정부·반미' 도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한민국 史> <소금꽃 나무> '반자본주의' 도서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따위 23권이 군장병 정신전력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불온서적'으로 선정했다.

군법부관들은 "불온서적 지정은 군인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침해하고, 행복추구권,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병역의무 이행으로 일반인이 누리는 기본권을 군인만 누리지 못해 결과적으로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지난 2010년 10월 "군대 내 불온도서의 반입·소지 등을 금지하고 있는 군인복무규율 16조의 2(불온표현물 소지·전파 등의 금지)는 위헌"이라며 군법무관들이 낸 헌법소원을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재는 또 "해당 조항은 국군의 이념 및 사명을 해칠 우려가 있는 도서로 인해 '정신전력'이 저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무엇이 금지·허용되는지 예측할 수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갑자가 불온과 불온서적이 생각난 이유는 일제 강점기 불온한 사람들의 삶과 저항을 그린 책 한 권을 만났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부교수인 정병욱이 지은 <식민지 불온열전: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역사비평)이다. '식민지 불온열전'이란 제목을 읽고 이름 있는 독립투사를 떠올리겠지만, 책 주인공들은 독립투쟁사에 길이 빛날 큰 사건을 일으킨 이른바 독립투사가 아니다. '경성 유학생', '자소작농', '도시 하층민 깡패' '산간벽지 소학생' 등이다.

일제시대 '불온세력'은 경성유학생, 자소작농?

일제에 저항한 불온세력(일제가 보기에)으로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김좌진 장군, 홍범보 장군만 떠올렸던 난 책에 언급된 이들이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개인들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일제는 이들까지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통제했다는 사실이다. 사상 통제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전북 옥구(지금의 군산) 부농 아들인 경성유학생 강상규는 '불온학생'이다. 손기정, 남성룡 선수가 우승했지만 "일장기가 올라가는 순간 비애를 느끼면서, 목숨을 바쳐 반드시 나라를 독립시켜 다음 올림픽은 조선에서 개최하겠다"고 생각한 그를 일제 경찰은 '조선 독립을 열망하는 불량학생'으로 검거한다. 강상규는 경찰 첫 심문에서 아홉 번이나 일본·일본인을 '적(適), 적(賊)'이라고 했다.

강상규는 두 종류의 일기를 썼다. 학교에 제출하는 '학생 일기'와 자신만 보는 '개인 일기'. 먼저 '개인 일기'를 쓰고, 그중 군데군데를 골라 일본어로 '학생 일기'를 적어 제출하는 식이었다. 그가 1937년 쓴 일기 곳곳에서 불온이 눈에 띈다.

"아아, 가련하도다. 무궁화 동산이요. 금잔디에 개똥과 말똥만 수북이 쌓여있다. 이 오물을 누가 청소해줄 것인가." - 4월 22일(목) 창경원 벚꼴놀이
"가장 슬픈 것은 아무런 분별도 없는 나의 친구들이 이 도적의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잘한다고 감탄한다는 점이다." - 6월 11일(금) 일본 육군 중장 강연(33~35쪽)

이런 강상규를 일제 경찰은 감시했다. 권력이 인민을 길들이는 방법은 '규율'이다. 규율로 동원되는 것이 "관찰(감시), 제재, 시험"이다. 정병욱은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관찰"이라며 "권력의 시선이 개인에 다다를 때 지배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자소작농 김영배, 독립은 내가 부자 되고 싶어서

대한민국 독재자들이 참 많이 써 먹었던 방법이다. 감시.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 특정 후보를 비방하거나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들은 "대북심리전"이라고 강변하지만, SNS를 통해 교묘하게 여론조작을 한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이들을 국정원은 명예훼손 운운하며 고소고발했다. 그들이 인민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권력의 시선이 개인에 다다를 때 지배가 시작된다는 정병욱의 주장이 강상규가 살았던 일제식민지 때만 아니라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더 교묘하게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요, 아픔이다.

'자소작농' 김영배는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야학이나 생활개선과 관련된 농촌진흥운동에는 적극적이었지만 곡식과 힘을 축내는 공출과 동원을 싫어"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경찰은 '시국인식'을 보급하기 위해 '소부락' 단위 시국좌담회를 자주 개최했다. 김영배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도 좌담회가 5번 열렸다. 김영배는 "늘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있었으므로" 한 번만 참석했다. 김영배는 1939년 1월 13일 자신의 집 사랑방에서 사람들과 함께 새끼를 꼬면서 "요즘은 신문에 일본이 점령했다는 보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일본이 중국에 지고 있는 게 아닌가, 중국은 로서아가 도와주고 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일본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소작농 입에서 일본이 질 것이라는 '불온사상'이 튀어나온 것이다. 중국이 일본에 지고 있다는 김영배의 생각은 결과론적으로 틀렸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일본이 질 것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런 그를 일제 경찰은 잡아 "당신이 반감을 가진 나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라며 심문한다. 그러자 김영배는 "쇼와천황을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쇼와천황 이하 나라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나 일을 하는 곳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답한다.

이에 경찰이 "어떤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가?"라고 되묻자, "생활 안정의 바탕이 되는 돈과 조선의 독립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늘 반감을 가져왔다"고 답했다. 우리는 여기서 김영배가 '대한독립'을 바라는 이유가 민족을 일제 압제에서 구하고, 나라를 부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 부자로 넉넉하게 살고 싶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왕(천황)이라면 마땅히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불만이다. 이런 간명한 생각은 독립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그가 독립을 바라는 데는 다른 이유 없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다. 임금이 되고 싶은 것도 돈을 많이 쓸 수 있기 때문이다.(중략) 맨 위에 지식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그나마 돈을 잘 벌 수 있는 회사나 공장에 다니는 도시인이 있으며, 맨 밑바닥에 농민이 있다. 한마디로 식량생산은 중요하지만 농민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결국 돈이고, 지식도 돈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111-113쪽)

조국 독립을 바라는 이유가 "부자되기" 위함이라는 김영배 말에 '대의'를 모르는 사람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김영배가 이런 생각한 이유를 안다면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작농과 자소작농이 권력가문과 지주들이 던져주는 작은 것으로 연명함에도 "다른 마을에 비해 더 잘사는 편"이라며 저항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태도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오는" 불온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학교 학생 '불온낙서'는 '일본폐지', '조선 독립'

1938년 4월 어느 날 강원도 산골 소학교 담임교사 홍순창은 <초등국사>에 실린 "황후는 수군을 이끌고 쓰시마로 건너갔고, 이어서 신라를 향하여 진군했다"는 내용을 읽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신라는 강국이었다. 일본군에 항복하고 공물을 바쳤다는 것은 전부 거짓이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 김창환이란 학생이 있었다. 2년 후 그는 동무들과 함께 "'일본폐지', '조선 독립'"이란 글자를 칠판에 썼다.

낙서를 발견한 학교장은 학생들이 이런 글을 썼을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배후'를 찾았고, 앞에서 언급한 홍순창을 찾아냈다. 결국 홍순창에게 "'국체 변혁'을 목적으로 선동한 죄로 징역 2년, 김창환과 동무들은 보안법 제7조 '정치에 관한 불온한 언동'을 한 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형벌만 아니라 가혹한 폭력까지 행사했다. 이게 일제였다. 그런데 왠지 낯설지 않다.

"폭력은 당하는 자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안긴다. 게다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끊임없이 열등감을 조장한다. 역사 교과서에 간혹 나오는 조선(인) 얘기라곤 '옛날부터 조선은 못났다'는 식이다. 이런 식민지적 교육 상황에서 학생들의 자기 존중심은 약화되기 마련이다."(202쪽)

일제는 단순히 폭력을 통해서만 우리 민족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자아존중을 무력화시켰다. 홍순창은 아이들에게 이를 극복하도록 했고, 김창환은 '불온 낙서'로 화답했다. 우리 시대 학교 교육은 공부가 모든 것의 잣대다. 체벌을 통해 아이들은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일제가 남긴 자아존중을 무력화시키는 악폐다. 학생들이 '불온한 낙서'를 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국방부 '불온서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권력을 비판하면 '불온세력'으로 낙인 찍는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막걸리 보안법'으로 감시하고 제재했다. 이명박 정권은 '쥐그림'을 그렸다고 처벌했다. 다른 사유로 말하는 자유를 빼앗은 사례는 많다. 박근혜정권도 마찬가지다. 촛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자, 지난 광복절에 '물대포'를 사용했다. 검찰은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배후 세력까지 철저하게 밝혀내 책임을 묻는 등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칠판에 '일본폐지', '조선독립'라는 불온낙서를 쓴 김창환 학생 배후를 찾아낸 일제경찰과 별 다르지 않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불온이 없는 사회에선 독재가 시작된단다. 그렇다, 불온은 기득권세력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단어지만, 민주시민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불온할 필요가 있다. 2013년 8월, 민주주의가 위협당하는 대한민국에 불온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어떤 사회에서나 지배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불온의 영역이란 있고, 이 해결은 미래의 과제다. 불온은 미래를 위한 자산인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광범위한 '불온'의 영역 없이는 항일운동이나 독립은 불가능했을 거다. 물과 물고기의 관계다. 그러한 '불온'이 없었다면 해방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온열전이 주인공들은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해방 이후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 분단과 전쟁은 우리 사회-남이든 북이든-의 불온, 미래를 저게하는 과정이었었다. 불온이 없는 사회에서 독재는 시작된다."(242쪽)
덧붙이는 글 <식민지 불온열전> 정병욱 지음 ㅣ 역사비평사 펴냄 | 304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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