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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헉, 토루 완전정복이 사람 잡네...

[복건성 문화유산 이야기 ③] 영정 토루 2

등록|2013.08.23 09:40 수정|2013.08.23 09:40

▲ 토루공주 진복루의 내부 ⓒ 이상기


고북 토루군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교복루(僑福樓)를 지나간다. 그리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남계(南溪) 토루군으로 향한다. 고북에서 남계까지는 10㎞ 정도 된다. 그런데 남계 토루군 초입에서 인솔자인 이광국 선생이 우리를 토루 공주로 안내한다. 토루의 왕자인 진성루와 왕인 승계루를 보면서 누가 농담 삼아 '토루의 공주도 있겠네?'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토루 공주의 이름은 진복루(振福樓)다. 이곳이 토루 공주로 불리게 된 것은 건물이 수려단장(秀麗端裝)하기 때문이다.

진복루는 1913년 건축되어 토루 건축의 전통성과 서양 건축의 편리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건축을 세운 소진태(蘇振泰)의 후손이 문화혁명으로 인해 이곳을 떠나면서 국가에 귀속되었다. 그래서 진복루는 현재 토루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진복루에는 토루와 관련된 서적과 유물 그리고 사진 등이 각 방에 일목요연하게 전시되고 있다. 진복루 역시 산과 내가 잘 어우러진 산골 작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고 물길을 따라간 다음 진복루 안으로 들어간다.

▲ 토루박물관 진복루 입구 ⓒ 이상기


대문에 보니 상단에 미산(眉山)이라 쓰고, 좌우로 붉은색 각자를 해 놓았다. 그 글이 '봉기단산수(鳳起丹山秀) 교등벽수환(蛟騰碧水環)'이다. 빼어난 붉은 산에 봉황새 날아오르고, 굽이치는 푸른 물에 이무기가 승천한다. 문자 그대로라면 환상적인 풍경이다. 그런데 그런 수준은 안 된다. 과장이 심한 편이다. 토루의 문을 들어서려니 진복루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진복의 진은 진의천인(振衣千仞)에서 나왔고, 복은 복리만년(福履萬年)에서 나왔다. 천길 벼랑에서 날개를 펴고 만년 복록을 누린다는 뜻이다.  

토루 박물관을 통해 알게 된 토루 이야기

진복루는 3층의 원형 토루로 96개의 방이 있다. 그런데 이 방들이 현재는 박물관 전시실로 사용된다. 토루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사당이 보이는데,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제단이 텅 비었다. 나는 1층 전시실을 돌며 객가인들이 사용하던 유물을 살펴본다. 먼저 도자기와 철로 만들어진 생활용기가 있다. 다른 방에는 도자기로 만든 목침과 등잔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도자기 제품이 많다. 그리고 문서와 가훈도 있다. 주인이 선덕(善德), 정직, 청렴 등을 강조하고 있다.

▲ 진복루의 생활용품 ⓒ 이상기


나는 2층으로 올라가 토루를 조망해 본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여유를 가지고 한 바퀴 돌 수 있지만 집에 생명력이 없어 보인다. 또 생각보다 재미도 없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1층의 생활공간도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쓸쓸하다. 그렇지만 건너편에 서 있는 동료 여행객들을 사진 찍기는 좋다.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좋아진다. 음영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토루 건축방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토루 건축은 4단계 과정을 거친다. 첫째가 터를 잡는 선지(選址)다. 두 번째가 토루의 설계다. 세 번째가 사전에 준비하는 주비(籌備)다. 그리고 네 번째가 시공이다. 터를 잡을 때는 세 가지를 중시한다. 첫째가 산세고, 둘째가 지세고, 셋째가 수세다. 쉽게 말해 풍수에 대한 고려다. 배산과 임수라는 큰 틀을 따르면서, 생활과 생산을 고려해 땅을 선택한다. 집이 농토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도로와의 연계성도 중시된다. 

▲ 원형과 사각형 토루가 공존하고 있는 전라갱 토르 ⓒ 이상기


토루의 설계에서는 형상과 규모를 고려하게 된다. 형상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사각형이냐 원형이냐다. 일반적으로 토루는 사각형에서 시작, 원형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자연현상과 인간의 관계를 고려해 좌향(坐向)을 결정한다. 그리고 나서 세부적인 설계에 들어가는데 석축과 배수구, 토장(土墻), 층수와 방수, 공동생활 공간 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한다. 세 번째 주비는 토공과 목공 그리고 석공 등 작업할 사람을 결정하고 건축에 드는 비용을 산정하는 것이다.

▲ 토루의 기와를 덮는 모습 ⓒ 이상기


마지막 시공은 대개 6단계를 거친다. 첫째가 기초를 하고 배수구를 파는 일이다. 둘째가 석축을 쌓는 일이다. 셋째가 땅을 다지고 흙벽(土墻)을 쌓는 일이다. 넷째가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는 일이다. 다섯째가 내부 구조를 완성하고 기와를 덮는 일이다. 여섯째가 내부를 장식하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토루가 영정현에는 약 2만3000여 채 있다. 그 중 특색이 있는 토루가 2840채며, 그 중 방형 토루가 2480채, 원형 토루가 360채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앞에 언급한 승계루, 진성루, 진복루다.

▲ 토루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진성루 ⓒ 이상기


  
토루는 기이하고 웅장하며 아름답다. 그리고 원형과 방형 외에도 오각형, 팔각형 등 다양한 모양이 있다. 이 토루는 주변 산천과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이룬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토루를 장사(壯士)나 빼어난 여자(秀女)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토루를 왕이 사는 궁전과 신선이 사는 선각(仙閣)에 비유하기도 한다

저 높은 곳에서 토루 장성 내려다보기

진복루를 보고 나서 우리는 남계토루군의 토루 장성으로 향한다. 이곳이 토루 장성이라 불리게 된 것은 계곡을 따라 토루가 길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행원로(杏苑路)에 있는 남강촌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마치 토루가 계곡을 따라 긴 뱀처럼 이어진다. 그런데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우리 일행은 다들 녹초가 되었다. 그동안 토루를 보느라 강행군을 한 데다 더위에 지쳐 기력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함께 온 사람 중 1/3은 힘이 들어 아예 올라오질 않았다.

▲ 토루 장성 남계 토루군 ⓒ 이상기


그렇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색다르다. 양쪽으로 높은 산이 우뚝하고 그 사이로 좁은 계곡이 길게 펼쳐진다. 그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마을마다 원형과 방형의 토루가 이어진다. 토루 장성이라는 표현이 과장이기는 하지만 길게 이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이곳 토루 장성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연향루(衍香樓)와 환극루(環極樓)다. 그러나 그들은 멀어서 보이질 않는다.

나는 마을 한 가운데로 흐르는 계류, 그 주변에 자리 잡은 토루, 산비탈을 따라 만든 계단식 논에 주목한다. 중국 복건성은 남부지방이어서 논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 이곳 농민들은 다른 어떤 농사보다 벼농사를 중시한다. 그래서 한 뙈기의 땅이라도 놀리지 않고 벼를 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벼의 자라는 모습도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줄지어 빽빽하게 심고 또 잡초를 뽑아 벼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이곳에서 먹은 밥은 안남미와는 달리 찰기가 있는 편이다. 그렇다면 벼의 품종도 유사한 점이 있는 모양이다.

▲ 남계 토루군 ⓒ 이상기


이제 영정 토루 구경이 모두 끝났다. 우리는 차를 타고 남정으로 향한다. 우리가 묵을 호텔이 남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가보지 못한 영정 토루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가 본 것은 영정현 동남쪽 호갱진 주변에 있는 세 개 토루군이다. 우리가 이곳 홍갱, 고북, 남계 토루군을 집중적으로 본 이유는 이곳이 영정 토루의 핵심 클러스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건 토루의 또 한 축인 남정 토루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지 못한 영정 토루는 영정현 북쪽 고피진(高陂鎭), 감시진(坎市鎭), 무시진(抚市鎭)에 있다. 이곳에는 특색 있는 원형토루가 별로 없다. 특이한 토루로는 고피진의 천후궁(天后宮)이 있는데, 토루에 탑이 함께 있다. 영정현 북서쪽에는 호뢰진(湖雷鎭)이 있으며, 그곳에 화소루(火燒樓)와 복형루(馥馨樓)가 유명하다. 영정현 남서쪽 하양진(下洋鎭)에도 토루가 있는데, 그곳 중천고촌락(中川古村落)에 있는 호표별서(虎豹別墅)가 유명하다. 호표는 호랑이와 표범을 말하고, 별서는 별장을 말한다. 이들 토루는 대부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물 맑은 산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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