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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법 쓴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됐다고?

'채화칠 인간문화재' 지정 관련... 평가기간 10일 추가해 공정성 시비

등록|2013.08.27 09:15 수정|2013.08.27 09:15

▲ 채화칠기장 보유자로 인정예고된 이의식씨와 그의 '구절판 채화칠기' 완성품. ⓒ 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은 지난 7월 22일 '채화칠장 중요무형문화재 종목 지정 및 보유자 인정 예고'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채화칠장'을 신규종목으로 지정하고, 이의식(60)씨를 '채화칠장 보유자'로 인정한다고 예고한 것이다. 특히 채화칠장 보유자로 인정예고한 이의식씨를 두고 "채화칠장으로서 전승능력과 전승환경의 탁월함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지정예고기간이 끝나면 이씨는 '채화칠 인간문화재 1호'라는 영예를 안게 된다.

하지만 채화칠장을 지정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처음 합의한 기량평가기간(6일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10일의 평가기간을 추가했고, 특히 심사위원들 다수가 특정 대학의 사제지간으로 밝혀지면서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게다가 이의식씨가 기량평가에서 '다카마키에'라는 일본기법을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채화칠은 옻칠과 천연안료를 배합한 물감으로 다양한 색을 만들어 칠기 표면에 색과 문양을 그려 넣는 전통기법으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성행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9년부터 채화칠장 기능보유자 지정을 추진해 왔다.

6일 평가 끝나고 10일 추가... 문화재청 "최종 완성품 평가 위해 추가"  

지난 1월 14일부터 19일까지 충남 부여에 위치한 한국전통문화대에서는 채화칠장 기량평가(실기평가)가 진행됐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도가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채화칠장 보유자를 지정하기 위한 평가였다. 이날 평가에는 박경옥·양유전·이의식·최종관씨가 참여했다. 이들은 6일 동안 채화칠기 구절판을 완성해 평가받아야 했다. 앞서 문화재청은 서면조사와 공방조사를 벌였다. 채화칠장 보유자를 지정하는 데에는 기량평가점수 비중이 제일 높다.

박경옥씨는 "4명 가운데 1명(이의식씨)은 출퇴근하고, 나머지 3명은 6일간 합숙하면서 기량평가를 받았다"며 "오전 9시에 평가가 시작하면 (실기시험장의) 문이 잠기고, 오후 6시 정각에 붓을 놓아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평가(집합심사)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문화재청은 지난 3월 8일 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분과 제2차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채화칠장 보유자 지정 예고를 보류했다. 즉 박경옥씨를 제외한 양유전·이의식·최종관씨 3명의 완성작품을 확인한 뒤 보유자 인정 예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10일의 평가기간을 추가했다. 이는 공정성 시비의 출발점이었다. 

이렇게 평가기간을 추가한 이유와 관련, 문화재청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의 전승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제한된 기간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최종 완성된 공예품의 작품성과 예술성도 같이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량평가(1차)에 참여했던 최종관씨는 "6일 동안 진행된 기량평가에서 박경옥·양유전·이의식씨는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고, 저만 유일하게 작품을 완성해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형철 심사위원은 "한 사람(양유전)은 30% 정도, 나머지 세 사람(박경옥·이의식·최종관)은 60~70%만 완성한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의 조사·심의에 관한 규정 제12조(조사결과의 제출)는 "조사자는 조사를 완료한 후 30일 이내에 조사결과를 작성하여 문화재청장에 제출하고 조사대상자의 기량평가에 관한 계량평가 결과는 조사완료 즉시 현장에서 작성 제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가 10일의 기량평가에는 양유전·이의식씨만 참여했다. 문화재청의 '평가기간 10일 추가'에 반발한 최종관씨는 "6일간 진행된 1차 기량평가에서 이미 작품을 완성해 제출했다"며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문화재청은 지난 6월 26일 목공예·칠공예 등 전문가 7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열었다. 소위원회에서는 각각 6일과 16일에 걸쳐 완성한 최종관씨와 양유전·이의식씨의 채화칠기 구절판을 심사했다. 심사한 결과, 기량심사 1위는 이의식씨에게 돌아갔고, 양유전씨와 최종관씨는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심사결과에 근거해 소위원회는 이의식씨를 채화칠장 보유자로 인정예고할 것을 권고했고, 문화재청은 약 한달 뒤인 7월 22일 이씨를 채화칠장 보유자로 인정예고했다.

▲ 6일간 작업한 작품들. 윗쪽 시계방향으로 이의식·최종관·양유전·박경옥씨 작품. ⓒ 오마이뉴스


최종관씨 "답안지를 다 작성하지 못했으니 시간을 더 주겠다?"

하지만 이의식씨가 채화칠장 보유자로 인정예고된 전후부터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주요내용은 ▲ 기량평가기간을 10일 추가한 점 ▲ 기량평가 심사위원 4명 중 3명이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출신이라는 점 ▲ 이의식씨가 '다카마키에'라는 일본기법을 사용했다는 의혹 등이었다.

먼저 기량평가기간를 10일 추가한 점이 공정성 시비의 핵심이다. 박경옥씨는 "평가기간을 10일 추가한 것은 특정인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6일이란 기간에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무리였으나 조건이 다 같았기 때문에 6일평가를 받아들였다"며 "하지만 이해할 만한 설명도 없이 10일을 추가해 그것을 심사한 점수를 가지고 문화재를 지정했다는 것은 비전문가가 들어도 납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단기간에 작품을 제작·완성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공정을 생각하고 디자인해서 완성해야 한다. 애초에 16일이라는 시간을 주었으면 제작방법과 디자인도 전부 다 바뀌게 되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평가기간에 관한 사항을 심사대상자에게 아무런 설명이나 합의도 없이 시간을 늘리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에 해당되며, 심사결과에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의미한다."

30년의 채화칠 경력을 가지고 있는 최종관씨도 "제가 완성된 작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기간을 10일이나 연장해 미완작품을 완성하도록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어떤 시험에서도 완성하지 못한 작품에 따로 시간을 제공해 완성하도록 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과정들은 불법이며 공정함을 결여하고 있다. 조사대상자는 합법적으로 주어진 2013년 1월 14일부터 19일까지 완성할 것을 생각하면서 그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려고 시험받는 것이다. 이것이 기량이고 실력이다. 그런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중요무형문화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험기간을 다시 10일이나 연장한다는 것은 절차성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답안지를 다 작성하지 못했으니 마음껏 시간을 더 줄 테니 해보라고 하는 것은 연습이지 시험이 아니다. 특정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불합리한 과정을 통해 선정된 장인이 과연 이 분야를 대표하는 장인으로서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화재청은 22일 <오마이뉴스>에 보낸 공식 답변서에서 "문화재위원회에서 6일간 제작한 작품을 심의한 결과 작품이 100% 완성되지 않았으며, 보유자 기량평가는 제한된 기간의 작업속도 외에 최종 완성품의 작품성 및 예술성을 추가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사보고서 점수가 높은 상위 3인의 작품을 최종 완성해 검토하도록 의결했다"며 "이에 따라 조사대상자 3인과 협의하여 10일의 기간을 추가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양유전·이의식·최종관씨와 협의해서 10일의 평가기간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관씨는 "평가기간 추가와 관련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었다"며 "3인과 협의했다면 제가 왜 참여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박했다. 

심사위원 4명 중 3명이 홍대 사제지간... 문화재청 "제척사항 아니다"

또한 기량평가를 심사한 4명의 위원들 가운데 3명이 특정대학 사제지간이라는 점도 공정성 시비를 낳았다. 이번 기량평가에서는 박형철 홍익대 명예교수, 임승택 전주대 교수, 곽우섭 전남대 교수, 이종헌 동방대 교수 등 4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박형철·임승택·곽우섭 심사위원은 모두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출신들이다.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선후배 사이인 임승택·곽우섭 위원은 박형철 위원의 제자들이다.

이러한 관계가 '심사위원 제척사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종관씨는 "심사위원의 구성은 다양하고 공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심사위원 4명 중 3명이 홍대 목조형가구학과 출신의 교수와 수제자 사이"라며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의 친분으로 인해 공정성이 무시되고 편향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 경우 2009년 채화칠기장 심사에서 심사위원이 같은 모임의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정성 문제가 제기돼 채화칠장 선정이 보류된 선례가 있었던 것과 비교해도 심각한 차별적 조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3인의 출신대학은 같지만 현재 재직중인 대학이 각각 달라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의 조사·심의에 관한 규정' 제7조의 제척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공정한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조사 전에 조사위원들로부터 위촉동의서와 서약서를 제출받았다"고 해명했다. 박형철 심사위원도 "목칠 계통은 홍익대 졸업생들이 많아서 어딜 가나 동창들이 많고, 교수도 많다"며 "그래서 심사위원들이 사제기간인 경우가 많은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채화칠장 보유자로 인정예고된 이의식씨가 기량평가에서 일본기법을 사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씨가 일본기법인 '다카마키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마키에기법은 칠기 표면에 금·은가루를 뿌려서 무늬를 넣는 일본기법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다카마키에는 달걀 흰자, 호분(굴껍질 등으로 만는 가루), 숯가루 등을 칠과 섞어 칠기 표면을 두텁고 높게 하는 기법이다. 특히 지난 6월 28일자 <금강신문>은 "그는 5년간 1년에 6개월씩 일본에 머무르면서 도쿄 도모다 칠예학원에서 일본의 칠기공법을 배우기도 했다"며 "일본에서 요구하는 물건을 만들어 주려면 칠기에 금이나 은가루를 입히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고 보도했다(관련기사 : 24 이의식 옻칠장).

박경옥씨는 "마키에는 '그림을 그려서 뿌린다'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그리지(채화) (금·은가루를) 뿌리지 않는다"라며 "마키에 중에서 '높이 올려서 뿌린다'는 '다카마키에'가 있는데 이의식 작품에는 그런 기법이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재청에 보낸 이의신청에서도 이렇게 지적했다.

"2009년 조사 때에도 3개월간 국비로 일본연수를 갔다온 것이 문제됐다. 최아무개 교수가 인터뷰 때 '일본에서 배워온 사람이 왜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려고 하느냐?'고 저에게 직접 얘기했다. 이씨도 5년간 일본에서 배웠고, 기량평가에서 일본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왜 이번에는 문제가 되지 않고 (채화칠장 보유자로) 지정예고되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박씨는 "저도 이 기술을 알고 있지만 일본에서만 사용되는 전통기법이기 때문에 이번 기량평가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며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기법으로 중요무형문화재를 뽑는 자리에서 이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옳지 않는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최종관씨도 "이씨는 기량평가에서 달걀 흰자에 색칠을 타서 채화했는데 이는 우리 전통 옻칠기법에서 찾아볼 수 없고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라며 "옻칠에 계란 흰자를 섞어 만드는 교칠기법 중 하나로 칠면을 두껍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이씨는 이러한 교칠기법을 다카마키에 기법으로 적용시켜서 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의식씨는 "점성력을 높이기 위해 달걀 흰자를 부분적으로 쓰긴 했지만 이것은 다카마키에 기법과는 상관 없다"고 부인했다. 박형철 심사위원도 "이씨가 일본에서 수학한 적은 있지만 기량평가에서 마키에 기법을 쓰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인터뷰할 때 이씨가 칠기 표면을 높이는 데 계란 흰자를 썼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의신청자료, 본인소명자료, 관계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화재청은 30일 이상의 인정예고기간을 거친 뒤 문화재위원회를 다시 열어 채화칠장 중요무형문화재를 최종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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