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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출연 그 후..."싸가지 없다는 말에 울컥"

[우리는 무도 동창생①] 김지호 조정 코치 "연예인하고 싶어? 절대 아닌데요."

등록|2013.08.24 08:42 수정|2013.08.24 08:42
어떻게 보면 <무한도전>은 '꿈같은 도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적지 않은 각계의 전문가가 그 도전에 함께 했다. 비록 방송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각자 자신만의 도전을 계속 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인생과 꿈을 '무도 동창생'이란 기획으로 묶어봤다. (편집자 말)

▲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조정코치로 잘 알려진 김지호씨 ⓒ 이정환


"사실, 방송은 많이 짜고 한다고 생각했어요. '왜 울어? 왜 눈물이 나?', 그런데 저도 그때 울었잖아요. 배가 선착장에 들어왔을 때, 하하씨가 '코치님, 미안해요'하면서 막 우는 거예요. 참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6개월 여가 주마등처럼 확 지나가면서 눈물이 저절로 났었죠."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MBC <무한도전> 조정특집 '그랜드 파이널' 이야기다. 2011년 8월 3일 방송했으니,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김지호 코치는 딱 한 번 울었다고 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너무 기뻐서,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이렇게 눈물이 짠 김 코치를 울렸으니 아무래도 <무한도전>은 그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우연의 일치도 한몫 했다. 조정특집에 참여하면서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그랜드 파이널' 즈음에 또 둘째 아이가 생겼다고 한다. 둘 다 '무도 베이비'인 셈이다.

"'방송 한 번 나왔다고 재수 없네' 이러실 때는 좀..."

지난 19일 김 코치를 그때 그 장소,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만났다. 아무래도 '동창'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은 요즘 어떻게 지내?

요일별로 근황을 물어봤더니, 무척이나 바쁜 모양이었다. 대안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체육수업 봉사 활동, 토요일마다는 태릉으로 '출근'한단다. 체육과학연구원 1급 경기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가르침의 내공도 높아진다나?

▲ 2011년 MBC <무한도전> 조정특집 '그랜드 파이널' 당시 모습. 2011 <무한도전 the Records> 스캔 ⓒ 무한도전


여기에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잠시 휴학하면서까지 벌린 '일'도 있다. '로잉 유(Rowing you)'라는 일종의 스포츠클럽을 만들었다. 조정 등 수상 레포츠의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고, 강연을 통해 팀워크나 리더십 등 '미덕'을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 작년 런던올림픽 장애인 국가대표 조정팀 코치 일을 마치고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벌인 엄연한 '사업'이다. 이것도 다 <무한도전> 덕분 아닐까? 돌려 물었다.

- <무한도전> 출연, 잘 한 것 같아요?
"아...모르겠어요(웃음). 잘 한 것 같은데, 행동의 제약도 많이 받아서요. 가족이랑 함께 있을 때, 무조건 오셔서 사진 찍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다 응해드리면 좋은데, 가족이랑 함께 있으니 아무래도 불편할 때도 있거든요. 나중에 찍어드린다고 하면, 뒤에서 '싸가지 없다', '방송 한 번 나왔다고 재수 없네', 이러실 때는 좀...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셔서 너무 너무 고맙고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하나, 편견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한 번은 지인 결혼식에 갔을 때였어요. 한 분이 촬영을 요청하셨는데, 먼저 부탁하신 분과 촬영하고 그 다음 해드리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네가 연예인이냐?' 막 이러시면서 뒤에서 욕하셔서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당신, 연예인인가요, 조정인인가요?

그 사람, 누군지 몰라도 내 마음과 '통'했다. '그랜드 파이널' 그 후, 언론보도에 나타난 김 코치 모습은 연예인 혹은 연예계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 보일 만 하다. 정준하, 하하의 결혼식에 잇따라 모습을 나타냈고, 그때마다 그는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작년 <무한도전> 폐지설이 나돌 때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남기면서 역시 언론의 주목을 '자초'했다.

- 말 나온 김에 여쭤볼게요. 연예인인가요, 조정인인가요?
"평범한 가장이죠. 어딜 가면 '방송은 안 하냐'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사실 섭외도 많이 들어왔었어요. 그런데 제가 방송을 되도록 안 나가는 이유가 있거든요. 스포츠 스타 중 방송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좋게 끝나는 분들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연예인하고 싶어서 <무한도전> 출연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있을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조정을 대표해서 나갔었던 만큼, 조정에 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심증을 쉽게 거둘 수 없다. 그는 세종대 체육학과 재학 시절 연극영화과를 복수 전공했다. 김 코치는 "고교 시절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대학교 가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고, 연기자를 하면 여러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했던 것"이라며 "덕분에 역시 나는 '끼가 없구나'란 걸 철저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 연기자를 할 정도까지 끼가 없다는 것, 이미 오래 전 스스로 검증을 마쳤다?
"네, 네(웃음). 연예인이 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무한도전> 출연 이후 저를 대하는 게 갑자기 변하신 분들이 가끔 있더라고요. 저는 그저 원래대로, 안 변하는 게 가장 좋다, 변하지 말자는 생각인데요. 제가 뭐 잘 나서 방송에 나간 것도 아니었잖아요. 저보다 훌륭한 코치도 많고 나오실 분도 많은데, 운이 좋았던 것뿐이죠. 무엇보다 제 꿈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김지호 코치의 꿈은 스포츠NGO 설립

▲ 2011년 MBC <무한도전> 조정특집 '그랜드 파이널' 당시 모습 ⓒ MBC


그의 꿈, 앞서 다른 인터뷰를 통해 접하긴 했다. 2011년 한 신문을 통해서는 로잉 소사이어티 조정 클럽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고, 또 다른 매체를 통해서는 "IOC 위원장이 되고 싶다"며 통 크게 자신의 꿈을 밝히기도 했었다.

다시 물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스포츠NGO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김지호 코치, 변덕쟁이인가?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현재 그가 벌인 사업 '로잉 유'나 스포츠NGO 또는 IOC 위원장, 모두를 관통하는 단어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봉사다.

"그 전에는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돈 많이 벌어서 외제차 굴리고,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죠. 그러다 노숙자를 대상으로 하는 봉사단체에 가게 됐어요. 아주 교만한 생각으로 갔죠. 사지 멀쩡한데 왜 저러고 사냐는 생각도 분명 있었어요. 그렇게 내가 뭔가 도와주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더 많은 걸 배워오게 되더라고요. 더불어 다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소외당하는 사람 없이."

-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니에요? 어떻게 다 잘 살아요?
"아닌데...당연히 부자도 있어야 하고 그렇긴 하지만,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그는 달란트란 표현을 자주 썼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아주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재능을 봉사로 나눈다면, 조금 더 조화로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비 효과'란 말도 있잖아요. 작은 힘들이 모여서 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내가 높아지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같이 갈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걸 생각하게 됐어요. 봉사를 통해서."

<무도> 출연은 분명 의미 있는 '로잉'이었지만...

▲ 김지호 코치 ⓒ 이정환

그리고 김 코치는 자신의 꿈을 구체화시키는 계기를 2008년 만났다고 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의 봉사 활동. 그는 콸레 지역 최초의 체육선생님으로 1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계기, <무한도전> 출연보다도 훨씬 중요한 계기였다"며 "그곳에서 두 가지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컸던 충격이 운동이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곳의 삶에 비하면 새 발의 피더라고요.

요즘 덥다고 하잖아요. 거기 아침 최저 온도가 32도 막 그래요. 처음에는 더워서 아무것도 못했을 정도예요. 게다가 전기도 없고, 물도 부족하고, 말도 안 통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자연스럽게 그는 대한민국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 고마움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은 알아도 한국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현지 주민들의 반응에 받은 충격은 더욱 컸던 모양이다. 그들이 아는 한국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그리고 축구선수 박지성 뿐이더라고 했다.

"그곳 아이들 첫 번째 꿈이 파일럿이에요. 중국에 가보고 싶다면서요. 돈도 많고 제일 좋은 나라로들 알고 있어요. 알고 봤더니 우리나라의 경부고속도로 같은 동맥에 해당하는 도로가 거기 있는데 그 이름이 차이나웨이더라고요. 중국이 돈을 써서 길을 만들고 엄청난 숫자의 중국인을 정착시켰다고 합니다. 차이나프리카란 말을 정말 실감했죠. 일본 역시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훌륭한 나라라고 인식들을 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한국은 모른다는 거예요."

스포츠 외교에 '엄청' 관심이 많다는 그 말의 의미가 비로소 쉽게 다가왔다. 스포츠를 통한 국제 봉사 활동, 그것을 위한 조직이 스포츠NGO, 그리고 스포츠NGO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물적 토대가 '로잉 유'란 것이었다. 그래서 <무한도전> 출연은 그에게 분명 의미 있는 '로잉(노 젓기)'에는 분명했지만, 그 자체로 배 방향이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을 스스로 갖고 있는 듯 했다.

체리필터 손스타, 오중석 작가와 친한 '동창'

▲ 김지호 코치 ⓒ 이정환

- 그럼 <무한도전> 출연 의미는?
"<무한도전> 출연으로 대학생 시절부터 갖고 있던 내 꿈에 한 걸음 더 빨리 갈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갖게 됐어요. 큰 로잉이 된 거죠. 출연을 계기로 자신감도 분명 갖게 됐어요. 그런 점에서 좋았다는 거고요. 다만 연예인이 되고 싶다든지 하는 '그 이상'은 또한 분명 아니라는 겁니다."

인터뷰를 하며 '무도 동창'의 정의가 좀 더 명확해졌다. <무한도전> 출연은 출연, 나의 길은 나의 길. 곁눈 주기보다는 그래도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 말이다. 어찌 보면 또 그래야 '무한도전'이란 이름에 걸맞는 동창생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또 서로 자연스레 통하는 건가? 김 코치는 오중석 사진작가 그리고 체리필터 손스타와 함께 모 카드사의 재능기부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무한도전> 멤버나 제작진들과도 방송 끝났다고 바로 '빠이빠이 안녕'이 아니더라고요. 한 번 써먹고 버리는 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고 그런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방송 끝나면 다시는 볼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은 <무한도전> 출연 이후 처음으로 강연에 나선 적이 있어요. 작가님이 연락하셨더라고요. 왜 미리 얘기 안 했냐고, 그랬으면 꽃이라도 보내주지 않았겠냐고요."

- 그래서 요즘 <무한도전>은 잘 챙겨보는 편이에요?
"솔직히 본방 사수는 잘 못해요. 나중에라도 챙겨보려고 하는데...사실 바빠서요. 어? 그런데 이 말 안 나가면 안 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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